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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곰곰 2026. 5. 25.

★ 나의 한줄평: 내 인생에 네가 있어 다행이야

 

중간에는 약간 안 읽혔지만 감동적이었던 책. 표지가 잠수하고 있는 여자 얼굴이었는데 되게 눈에 띄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다.

이 책의 주인공은 린다라는 여자아이이고, 폴란드에서 온 간병인 에바와 함께 윗층의 치매 노인을 돌보는 서사가 주로 나온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읽었는데 나도 할머니의 치매를 겪어본 적 있어서 그런지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나를 차에 뛰어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두 명 있다. 케빈과 후베르트다. 가까운 곳에 사는 케빈은 아주 똑똑하고, 나랑 같은 건물 4층에 사는 후베르트는 중증 치매 환자다.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후베르트가 죽어가는 중이라는 걸 볼 수 있다. 그는 퇴각하는 중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하는지도 모른다. 

 

린다는 선생님이나 엄마보다 후베르트와 에바가 자신을 더 잘 이해한다고 믿는다. 그녀는 차에 뛰어들어 죽고 싶어한다. 후베르트는 느리게 죽어가는 중이고, 에바는 사람들이 편히 죽을 수 있도록 돌봐왔다. 어쩌면 셋의 공통점은 죽음에 가깝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에 에바와 나방은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것 같다.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후베르트를 판단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각 하나의 우주다. 

 

린다에게서 배울 점은 그를 그의 방식대로 대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나방이라고 불리는 후베르트의 딸이나 능숙한 간병인 에바조차도 린다처럼 후베르트를 살뜰히 챙기지는 못한다. 카디건의 단추를 채워 그의 기분이 나아지게 만들고, 후베르트의 아내인 로잘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다시 알 필요 없게 이야기를 지어내고, 수영장 안전관리 요원으로 일하던 시절에 익사한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고 그에게 이야기해준다. 관찰하고, 그가 필요한 것을 내밀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게끔 두는 것. 린다가 보여주는 후베르트에 대한 사랑이다.

 

이 책에 나오는 린다도 '인간실격'의 요조처럼 죽고 싶어하지만 그녀가 죽고싶어하는 이유는 자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집에 가서 자기 아이를 포옹하고, 아내를 덜 때리고, 빌어먹을 직장에 사표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자살은 메시지다. 생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그래서 요조의 자살보다 거부감이 덜했나보다.

 

인간은 신생아로 이곳에 온다. 오기를 원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 옆에 앉거나 서 있으면서도, 마음속에서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또는 처음부터 거기 참가하지 않고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나 자신을 지켜본다. 후베르트도 비슷하다. 출구를 찾지만 발견하지 못한다. 
엄마도, 선생님들도 내가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른지 묻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내가 기계처럼 작동하기만을 원한다. 사실 엄마도 나방과 같다. 나를 위한 플랜A도 있다. 나는 뭔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삶은 맹렬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거기 부응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항상 뭔가 증명해야 하고, 자기 자체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슬프다. 정말 슬프다.

 

이런 생각 때문에 린다에게는 죽음이 평화처럼 느껴지나보다. 나는 아직 죽음이 두렵다. 사는 것보다 더. 대부분의 어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후베르트의 말은 그녀에게 위로를 준다.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기는 건 정말로 중요하지 않아. 내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떠든다. 이 문장이 왜 이렇게 긴장을 완전히 누그러뜨리게 하는지 알 수 없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누군가 나에게 한 말 중에 최고예요.
"난 할아버지가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현명하다는 걸 늘 알고 있었어요." 

나는 또 아무것도 맞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어떤 닻을 던져야 할까 고민한다. 날짜, 요일, 계절, 그의 이름, 잠깐의 낮잠. 그에게 낮잠을 권하는 게 점점 더 현명한 일이 된다. 후베르트는 빨리 지친다. 방향감각이 없으면 피곤하다. 그걸 나보다 더 잘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행복 한 조각 드실래요?" 내가 묻고 그에게 초콜릿을 내민다. 그가 행복을 건네받고 자리에 앉는다.
"크리스마스에 뭘 받고 싶은지 결정하셨어요?" 내가 묻는다. 
"바닐라 소라빵. 엄마가 만든 것."
"소박한 소망이군요." 내가 대답한다. "나한테도 좀 나눠주실거죠? 그렇죠?"

 

서로 행복을 나누는 존재. 방향을 잃었을 때 닻을 던져주는 존재.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도 낮잠에 빠져들곤 했는데. 티비를 켜놓고 전국노래자랑에서 참가자들이 나와 떠들석하게 노래를 부르고, 송해 아저씨가 그들과 수다를 떨 때에도. 서로 작은 행복을 나누는 사이.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베르트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에바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삶이 우리를 뒤섞어 모아주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할머니가 헤어질 때마다 내 귀에 속삭였던 후고 폰 호프만슈탈의 문장이 불현듯 떠오른다. 할머니는 다섯 살 때 내가 직접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문장을 나에게 말했고, 그 후로는 역할이 바뀌어 만났다 헤어질 때마다 언제나 내가 할머니의 귀에 그 문장을 속삭였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신비로운 의미를 지닌 존재다.'

그런 오후에는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의미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런 게 좋다. 사람들은 언제나 결과를 보려고 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할아버지는 의미 있는 일을 충분히 했잖아요." 내가 후베르트에게 말한다. "그런데 지금 남은 게 뭐예요?"

 

나도 의미에 집착하는데, 예전에는 심했고 지금은 덜하다. 무의미한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케빈은 린다의 유일한 단짝으로 환경에 관심없는 인류를 씹는다. 린다는 차에 뛰어들고 운이 좋게도 다리를 다치고 살아난다. 린다가 그토록 뛰어들고 싶어했는데 실제로 뛰어들었다니 놀라웠다. 케빈과 린다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후베르트는 일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단골 방문객들이 할아버지에게 친근하게 인사하고 손을 흔들어요. 저기! 저기 그 여자가 있네요! 할아버지 지갑 사진 속 여자 말이에요. 저 사람이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걸까요? 할아버지를 어떤 눈으로 쳐다보는지 좀 보세요. 할아버지, 저 사람이 할아버지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 같아요."
"우리 모두는 우리가 온 곳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거기는 이곳보다 훨씬, 훨씬 더 좋을 거예요. 죽음에서 가장 좋은 점이 뭔지 아세요? 아무도 미래로 할아버지를 협박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에바가 나가자 나는 2분 동안 후베르트와 둘만 남아 그의 목소리를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그가 이제 더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분명히 그에게 날개를 달아줄 통증 패치를 얼른 떠올리고 그의 귀에 속삭인다. "할아버지, 이제 출발하세요. 할아버지 앞에 긴 여정이 놓여 있어요."

그는 이제 육체가 필요하지 않다. 전혀 필요 없다. '낡은 뼈는 던져 버려요.' 내가 생각한다. 그의 손을 바라보지만, 잡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드디어 자유롭게 됐군요." 나는 이렇게 속삭이며, 후베르트가 파란 하늘을 따라 산책하며 작업화를 신고 느긋하게 별을 밟는 모습을 상상한다. 

 

작별인사를 하지 않으면 좀 더 내 곁에 머무를 것 같아서 인사를 망설이는 부분이나, 망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의 모습으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걸 상상하며 우는 모습이 너무 실감나서 마음이 아팠다. 더이상 움직이거나 말하거나 숨쉬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어떤 심장이 잘 뛰다가 천천히 느려지고 결국 완전히 멈춘다는 게 이상하다. 이상하지만 글로 쓰여 있으니까 그냥 읽게 된다. 좋아하는 이야기가 끝나가는 걸 알면서도 계속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

 

후베르트에게 계속 말을 걸고 사랑을 내 보이는 린다가 대단하다. 나의 모습이 반성되기도 한다. 그가 가장 좋았던 시절의 기억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만 그에게 최고의 추억을 선물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자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베르트와 케빈이 떠난 시점부터 내 삶은 갑자기 의미가 생겼다. 그저 내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많은 것이 무너질수록 모든 것을 지키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의 온갖 목소리 가운데 후베르트의 목소리가 가장 좋다. 나는 야외 수영장의 소음을, 이야기를 사랑한다. 

나는 케빈이 뛰어내린 절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려고 일요일마다 켄첼레로 간다.
"너에게 화내는 거 아니야." 내가 속삭인다. 나는 그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검치호에 손을 올린 다음, 눈을 감고 심장 박동을 느끼며 우리가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삶에서는 한 가지가 다른 것으로 이어지고, 모든 것이 서로 얽혀서 움직인다고 나 자신에게 대답한다. 우연이 계획을 좌절시키고, 계획이 우연을 방해한다. "자책은 도움이 안 돼요." 케빈의 방에서 버섯 피자를 나눠 먹으며 나는 자라 아줌마에게 말한다.

"린다, 사과케이크야!"
"보여줘요. 보여줘요." 내가 재촉한다.
에바가 용기를 열고 코밑에 케이크를 들이민다. 내 눈이 감긴다. 케이크 향기가 내 머릿속에서, 그리고 에바가 내 마음속에서 춤을 춘다.

 

후베르트와 케빈을 잃고 린다에게는 삶이 생겼다.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고,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은 지속되고, 또 누군가의 위로나 애도나 사과케이크 향기 같은 것으로 우리는 살아가게 된다고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있는듯하다.

 

근데 왜 제목이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일까? 감동적이고 재미있게 읽은, 곱씹었을 때 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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