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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은 집중력

by 곰곰곰곰 2024. 10. 20.

★ 나의 한줄평: 집중력의 위기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선민의 영상을 봤다. 그녀는 이 책을 추천하며 감상을 이야기했는데 그걸 보고 나니 나도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졌다. 퇴근하고 지쳐서 아무 생각없이 휴대폰을 붙잡고 영상을 시청하는 날들이 많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현실로 돌아오면 왠지모를 씁쓸함에 기분이 다운되는 걸 여러 번 겪었다. 궁금했다. 정말 집중력이 부족한 건 내 문제가 아닐까?

 

우리 시대의 모토가 '나는 살고자 했으나 산만해졌다'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의 대자와 함께 간 여행을 서두로 꺼내면서 모두가 눈앞의 현실보다는 손 안의 전자기기에 집중하고, 연결되지 못할까봐 불안하며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채 분열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의지력에 관해 연구하고 저명한 책을 저술한 학자조차도 캔디크러시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그는 자신의 집중력이 훼손되었다고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같은 개인은 어떤가? 우리는 집중력을 위협하는 파도 앞에 서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자원을 개발하고,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희생했는지를 말이다.

 

나와 이 여정을 함께 해야 하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개인적 차원에서 산만함을 가득 찬 삶은 훼손된 삶이라는 것이다. 
집중력과 관련해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인 제임스 윌리엄스를 인터뷰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영역에서든, 인생의 어떤 맥락에서는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면 적절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무언가를 해내기란 몹시 어려워요." 
우리는 장기적인 목표를 성취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집중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주제를 숙고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집중력의 분열이 개인에게만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사람이 장기간에 걸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한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온전히 기능하는 사회를 만들 능력을 잃게 된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면 그것을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 이 위기는 인간이 만든 것이며, 우리의 힘으로 다시 없앨 수 있다.

 

저자 요한 하리는 집중력의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우리 세대의 집중력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이야기한다.

속도는 빨라졌고, 정보량은 증가했다. 우리가 자료를 접하며 어려운 구절이나 난해한 부분에 파고들어 깊이 분석하는 시간은 짧아졌다. 1986년에 인간에게 쏟아지는 정보를 모두 합치면 대략 85쪽 분량의 신문을 매일 40종 읽는 것과 같았다. 2007년에는 하루 174종으로 늘어났다. 말 그대로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러한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점점 진이 빠지게 됩니다." 수네가 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차원에서 깊이를 희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모든 것을 다 따라잡아야 하고 늘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면 깊이를 가질 시간이 없어져요. 관계에서의 깊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너지가 필요해요. 거기에 전념해야 해요. 주의력도 필요하고요. 깊이를 요구하는 모든 것이 악화되고 있어요."
"보통 우리는 쉬운 길로 가고 싶어 해요. 하지만 우리가 행복할 때는 약간 어려운 일을 할 때거든요. 핸드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늘 중요한 것보다는 쉬운 것을 제안하는 물건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 거예요."

 

우리가 삶을 속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난이도 있는 과제에 도전하고 낯선 일에 집중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나의 경우는 일을 처리할 때 전환이 빠른 편이다. 문항을 개발하다가 휴대폰으로 온 문자를 확인하고, 메신저 쪽지창이 깜빡이면 그걸 클릭해서 답을 하는 식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허겁지겁 건너뛰는 삶.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삶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환은 세 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방해한다. 첫째는 전환 비용 효과라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의 업무에서 다른 업무로 일을 전환할 때마다 뇌는 재설정을 하기 위해 값을 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집중하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둘째는 폭망 효과이다. 여러 업무 사이를 오가면 그러지 않았을 때는 없었을 실수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생각은 더 피상적으로 변해간다. 셋째는 창의력의 유출이다. 창의력은 관련 없다고 믿는 서로 다른 생각을 새롭게 연결하는 사고이다. 작업을 전환하고 실수를 바로잡으며 정보 처리에 시간을 쓴다면 뇌에는 창의적인 사고를 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멀티태스킹은 인간의 뇌로 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한 작업니다. 우리는 기계와 다르게 작동한다. 또한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도시에서 불필요한 소음과 방해 요소를 걸러내는 우리 뇌의 전전두엽은 매우 피로해진다. 멀티태스킹은 한번에 하나의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뇌를 혹사하는 일이다.

 

저자 요한 하리는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섬으로 들어갔지만 다시 핸드폰을 찾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SNS의 좋아요는 이렇게 말하는듯하다. 우리는 네가 필요해. 너는 중요해. 우리는 네가 좋아. 우리는 그렇게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사람을 나르시스트라고 부른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나르시즘의 문제를 겪고 있는듯하다. 다른 형태의 집중은 없을까? 요한 하리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를 만나 '몰입'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이 말했다. "암벽 등반의 신비는 암벽을 오르는 데 있어요. 정상에 도착하면 다 끝나서 기분이 좋지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영원히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암벽 등반을 하는 이유는 암벽을 오르는 행동에 있어요. 시를 쓰는 이유가 쓰는 행위에 있듯이요. 정복해야 할 존재는 자기 안에 있는 것뿐이에요... 글 쓰는 행위가 시의 이유예요. 등반도 마찬가지죠. 내가 흐름 속에 있음을 인식하는 거예요. 흐르는 것의 목표는 계속 흐르는 거예요. 정상이나 유토피아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 안에 머무는 거예요.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흐르는 거예요. 그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 위로 오르는 거죠."

 

이 말이 몰입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시간이 사라지는 것 같은 깊은 상태의 집중. 나에게 의미 있는 목표를 정하고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과제에 도전할 때 나타나는 영속적인 경험과 행복감. 등반가의 말은 테니스에 빠져 산다는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 몰입하고 싶은지, 그 행위에 몰입하며 정말 행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했다.

글 쓰는 행위는 오랫동안 나의 관심 분야였고 나는 꽤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어떤 날에는 글을 써서 보상을 받고 싶고 인정을 얻고 싶다. 글 쓰는 게 몹시 고통스럽기도 하다. 불안하고 고민스러워서 책상에 앉고 싶지 않은 날도 많다. 그래서 내가 글 쓰는 걸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아를 잊고 시간이 빨리가는 경험은 글 쓰는 동안에만 가능하다. 어쩌면 글을 써서 어떤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게 스키너가 말하는 인간 심리의 매커니즘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보상으로 동물을 훈련시키는 것처럼, 나는 어떤 달콤함을 기대하면서 글을 써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글 쓰는 행위는 행복하기보단 고통스러울 거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짜증이 날 거고.

그동안 해왔던 프로젝트 중 내가 진짜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들과 그렇지 않았던 것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제 알겠다.

내가 그걸 진정으로 즐기고, 그 과제의 흐름을 타고 경험과 물아일체 됐다면 다른 보상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원히 이 속에 있고 싶고 그걸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지. 그렇지 않고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면 부담감과 보상 심리로 행위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잘 보이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은 마음에 오히려 몰입이 안됐을 수도 있다. 

행위의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내가 진짜 몰입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아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서는 글쓰기가 제일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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