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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by 곰곰곰곰 2026. 5. 10.

★ 나의 한줄평: 천천히 사랑하고 아프게 이별하고 위로로 회귀하는 한 사람의 인생

 

어디서 제목만 들어본 책.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흠뻑 빠져들어 읽었다. 

이야기는 습지와 늪에 관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든 생애가 펼쳐지는 서사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습지 속 여기저기서 진짜 늪이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하고 낮게 포복한 수렁으로 꾸불꾸불 기어든다.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빛을 다 삼켜버려 물은 잔잔하고 시커멓다. 소리가 없진 않으나 습지보다는 늪이 더 고요하다. 부패는 세포 단위의 작업인 탓이다. 삶이 부패하고 악취를 풍기며 썩은 분토로 변한다. 죽음이 쓰라리게 뒹구는 자리에 또 삶의 씨앗이 싹튼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평론 중에서 읽다가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멈추지 않으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는 문장을 봤는데 이 소설은 아름답고 정밀하게 쓴 문장이 많아서 눈이 즐거웠다. 특히 자연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 정말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동물행동학을 전공하고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연구한 저자의 이력을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간다. 힘 있고 생생한 묘사는 그만큼의 관찰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구나. 껴안고 싶은 문장이 많았고, 한 줄 읽고 나오는 그 다음 줄의 문장도 너무 소중해서 연달아 밑줄 긋고 싶어졌다.

 

시간을 넘나들면서 시점의 간격이 좁아지다가 결국 하나로 만나는 구성도 좋았다. 이야기는 시체의 발견부터 누가 범인인지를 찾아나가는 추리물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 펼쳐지는 건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자연 속에서 기어코 살아내는 '카야'라는 작은 소녀의 성장과 사랑, 삶이다. 

 

카야는 오빠의 매트리스에 털썩 주저앉아 하루의 끝이 벽을 타고 스르르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해가 저문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빛이 머물다 방 안에 고였다. 

평생 처음 혼자 맞는 밤이었다. 한참 침도 못 삼키고 뻣뻣하게 굳어 있는데 때마침 청개구리와 여치가 친숙한 노랫소리로 밤을 채워주었다. 어둠은 달콤한 향내를 간직하고 있었다. 더럽게 뜨거운 낮을 하루 더 견뎌낸 개구리와 도마뱀들의 텁텁한 숨결, 습지가 낮게 깔린 안개로 바짝 다가왔고 카야는 그 품에서 잠이 들었다.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주었다.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깊은 데로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집 나간 형제들, 하이힐을 신고 길을 따라 가족을 떠난 엄마, 전쟁에서 상처 입고 음주와 폭력으로 가족을 괴롭히다 결국 죽어버린 아빠. 카야의 삶이 고달프고 외로운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 곁에서 위안이 되어주는 건 습지의 소금물과 독수리 울음소리, 몸단장하는 갈매기들이었다. 

 

카야는 습지에서 튼튼하고 강인하게 성장했고, 혼자서 홍합을 캐고 배를 몰면서 스스로를 먹이는 법을 깨달았다. 생명들과 교류하며 자연에 대해 세상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이해했다. 그러나 이웃들은 그녀를 꺼림직하게 여기며 무시한다. 학교에 갔다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마음대로 집에 찾아와 겁을 주며 괴롭히고, '마시 걸'이라고 부르며 더럽고 병이 옮는다고 말한 부분이 실감 났고 마음 아팠다. 카야가 폭력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로부터 '아가'라는 말을 듣고 엄마가 돌아오면 다시 새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는 장면은 왠지 이해가 가서 더 슬프고 안타까웠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어도 그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있다면 일말의 애정과 희망을 걸어보는 게 사람이니까. 

카야를 이해해주는 건 비슷하게 무시당하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점핑과 메이블 부부, 테이트뿐이다.

 

그리고 여자가 되는 카야에게 두 명의 남자가 다가오는데 한 명은 카야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테이트와 카야에게서 이득을 바라고 착취하려 하는 체이스다. 카야가 생존본능과 순리로 가득찬 자연을 상징한다면 두 남자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상반된 태도를 드러내는 것 같다. 우리는 테이트처럼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체이스처럼 욕구를 채우려 자연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카야의 오랜 연인으로 등장하는 테이트조차 카야를 떠나 카야에게 큰 상처를 주는 걸 보면 아무리 애쓴다 해도 어찌됐든 인간은 자연에 해가 되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테이트가 자기처럼 가난한 백인 쓰레기한테 왜 글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왜 어여쁜 깃털을 들고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카야는 묻지 않았다. 괜히 물어봤다 테이트가 생각이 많아져서 떠나버릴까봐서.

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 후로 카야는 시를 쓰는 단계에까지 들어갔다. "가지에서 날아오르는 엄마 어치가 있네. 기회를 찾으면 나도 날아오를 거야." 그러면 절로 웃음이 났다.
카야는 말들이 손아귀로 강렬한 의미를 움켜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손을 활짝 펼쳐 의미를 풀어낼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시인이 된다면 카야는 메시지를 명료하게 쓰고 싶었다.

카야는 생물학의 세계를 샅샅이 뒤지며 어미가 새끼를 떠나는 이유에 답이 될만한 설명을 참아 헤맸다.

갈매기들을 못 본 척하느라 아픈 마음으로 심장이 흘리는 눈물을 덮고 싶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카야는 힘없이 자기가 무슨 짓을 했기에 모두가 떠나버리는 걸까 생각했다. 친엄마, 언니들, 온 가족, 조디 그리고 이제 테이트까지. 카야에게 가장 아린 기억은 오솔길을 따라 하나씩 사라지는 가족들이었다. 테이트와 삶과 사랑은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 테이트가 없다.

 

카야가 테이트에게서 글을 배우고 난 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길고 외로운 하루에 친구가 되어주는 존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니. 카야가 글에 담긴 충만한 의미를 이해하고 책의 바다로 헤엄쳐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흐뭇했다. 

테이트와 카야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공유하고, 어린애에서 청년이 되는 순간을 나누며 서로 사랑에 빠진다. 카야와 테이트가 가을 낙엽이 비처럼 내리는 날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이 참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카야의 심장을 평생 처음 모자람없이 가득 채울 정도로 깊은 테이트의 사랑. 테이트가 대학에 가면서 얼마 간 찾아오지 않은 탓에 카야는 심장크기만한 아픔을 그대로 경험해야 했다. 여기에서 1부가 끝난다.

 

2부 늪은 열아홉 살이 된 카야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카야에게도 따뜻하고 터프한 여자친구들이 필요하다는 메이블의 말이 감동적이었고, 늪처럼 카야를 빨아들이는 체이스와 그런 체이스에게 조용히 복수하는 카야의 서사가 펼쳐져 재미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카야는자기 역시 체이스에게 해변의 예술작품 같은 게 아닐까 두려움이 앞섰다. 손으로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모래밭에 휙 던져버릴 신기한 조개껍데기 같은 존재. 사랑에는 이미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지금은 그저 텅 빈 심장을 채우고 싶을 뿐이었다. 

비논리적 행위로 공허를 채우려 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고독을 좇는 대가로 얼마나 큰 값을 치러야 할까?

카야는 체이스에게 웃어 주었다. 살면서 해본 적 없는 일인데도 곁에 누군가를 두기 위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했다.

곤충 암컷은 짝짓기 상대인 수컷을 잡아먹고,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포유류 어미는 새끼를 버리며, 많은 수컷이 경쟁자보다 더 잘 파정하기 위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방법을 고안해낸다. 생명의 시계가 똑딱똑딱 돌아가는 한, 천박하건 무례하건 아무 상관 없다. 카야는 이것이 자연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그저 모든 위험요소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창의적인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을까. 얼마나 비싼 레스토랑에 데리고 다녔을까.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자 자신의 진짜 영역으로, 늪지의 판잣집으로 데리고 와버렸다.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인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찰나 자연이 모래의 각도를 정확하게 비춰 스치는 미소를 빚어냈다. 다음번 조수가 빠지면, 다음번 급류가 닥치면 또 다른 모래톱을 조각하고 또 다른 모래톱을 빚어내겠지만, 이 모래톱은 또다시 생겨나지 않는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카야가 체이스의 본성을 눈치챘음에도 또 희망을 걸어보는 장면이 이어져서 슬펐다. 상대가 진심이 아니란 걸 알지만 나는 그 없는 진심을 뒤적여 믿어보고 싶을 때, 자신의 한 조각을 내려놓고 그저 웃어줄 때가 공감갔다. 체이스는 결국 카야를 농락하고 카야는 배신감으로 상처 받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배움으로 책을 내 귀중한 돈을 벌기도 한다. 

카야가 자신을 떠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체이스에게서 폭력을 당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 그를 담가버리기로 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암컷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컷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책의 마지막까지 범인이 카야인지 아닌지 헷갈렸지만 작가는 이런 부분부분에 힌트를 심어두고 있었다.

 

카야를 변호하는 톰의 대사가 인상 깊다. 재판장에 모인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까지 선언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의 괴롭힘 때문에 평생 단 하루밖에 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캐서린 클라크는 독학으로 유명한 자연과학자이자 작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습지 소녀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과학연구소들은 습지 전문가라고 인정합니다.
여러분이 뜬소문과 황당한 이야기들을 모두 내려놓으실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수년간 들어온 거짓된 풍문이 아니라 이 법정에서 들은 사실에 근거해 평결을 내리실 거라 믿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마시 걸을 공정하게 대우할 때가 온 것입니다."

 

후기를 찾다가 결말이 별로라는 레딧 글을 읽기도 했다. 실컷 독자들에게 설득해놓고 사실은 카야가 체이스를 죽인 진범이었다는 결말이 뜬금없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었다. 황당하긴 하지만 나는 읽으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카야가 한 대담한 행동이 어쩌면 당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사람들이 카야에게 저질렀던 수많은 죄는 법정에서 카야를 놓아줌으로써 용서 받은 거나 마찬가지고, 순수하고 외로운 소녀를 함부로 속인 체이스는 없어져 마땅한 인간이니까. 

 

사랑을 믿고 따르고, 사랑에 속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에 희망을 걸고 믿어보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읽혀서 재미있었다. 자연에서 살아남기에 사랑과 연대만큼 좋은 생존법은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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