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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남자

by 곰곰곰곰 2026. 2. 21.

나의 한줄평: 어떤 틈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자기고백

 

도서관 신간도서에 있길래 골라보았다. 그 중에서 파란색 테두리에 붉은 톤으로 초상화가 점묘된 표지가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베트남인의 이름을 하고 있었고 그동안 동남아시아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집어들었는데 작가 소개를 보니 베트남계 미국인이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큼직하게 등장하는 옛날 사진들이 신기했고, 왼쪽 또는 오른쪽 아니면 가운데 정렬되어있는 글도 새로웠다. 폰트를 엄청 키운 어구도 나오고, 영화나 드라마, 뉴스 인터뷰나 보도자료의 어구가 그대로 인용되기도 하고, 글자 배경색을 채워 처리하거나 여백을 변주하여 주는 등 일반적인 에세이나 수필에서 볼 수 없는 느낌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지은이가 펼치는 서사는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모부의 역사로부터 시작해 어린 소년이었던 저자가 성장하면서 목격한 부모님의 모습이나 정체성의 혼란, 아메리칸드림의 모순으로 이어진다. 나는 난민이었던 적이 없기에 그가 겪는 정체성의 위기가 마음에 확 와닿는 것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읽다보니 이런 이야기도 정말 기록으로써의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돼지띠로, 응우옌타인비엣으로 태어나 아메리카에서 비엣 타인 응우옌으로 다시 태어났다. 역사는 제왕절개술로 너를 기억상실증에 걸린, 뿌리 없는, 새로운 인조 미국인으로 탄생시킨다. 모든 아메리카 난민에게 그랬듯이.

잠깐의 나쁜 기억이 평생의 좋은 기억이나 그저 그런 기억보다 더 깊이 새겨질 수 있다. 우리 눈에 띄는 건 피부가 아니라 흉터다. 부모를 빼앗긴 아픔은 척추 한가운데 낙인처럼 남아서 글쓰기라는 거울 속의 너 자신을 바라볼 때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작가의 딜레마: 좋은 작가가 될 만큼 상처를 받되 완전히 망가질 정도로 상처 받지는 말아야 한다.

하지만 베트남인의 정체성을 깨닫기도 전에 고국에서 잘려나와 아메리카에 이식된 너는 혼종이다.

네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게 뭐가 중요한가? 부모님이 어린 시절 네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는 게 뭐가 중요한가? 두 분이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이 없었다는 게 뭐가 중요한가? 네 가족은 전형적인 이민자와 난민의 딜레마에 빠졌던 것뿐이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더 많이 희생할수록 아이와 더 멀어진다는 것.

 

저자의 부모인 바와 마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 난민 캠프에 있었고, 후견인에게 아들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세탁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열심히 일해 사이공머이라는 가게를 열고, 아들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기도 한다. 그들의 자녀로 성장하면서 저자는 모범적이고 성실하라는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얌전하고 착한 어린이가 되었다가 미국 대중문화 속 동남아시아인의 묘사에 둘로 쪼개지는듯한 충격을 느끼는 청소년이 되었다가 혼란에 직면하는 대학생으로 큰다.

 

아메리카는 항상 새로운 타자를 필요로 한다. 최저가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인종차별을 흡수하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거나 미국이라는 합창단에서 열심히 노래하지 않는 기존의 타자를 욕해 줄 존재를.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항상 타자의 죽음과 그 기억을 떠나 보내야 한다.

자기네 국가의 위대함과 너그러움에 감사를 기대하는 시민 중 일부는 그 국가의 악행에 대해서도 모종의 무지 또는 망각을 기대할 것이다. 배은망덕한 아이인 너는 집단 학살에 관해 전혀 모른다.

한국군의 잔혹성은 한국전쟁에서 입증된 바 있다. 그들은 실제 적군뿐 아니라 적군으로 의심되는 동포도 학살했다. 이 학살을 주도한 이승만을 시인 최돈미는 "미국이 뒷배를 봐준 집단 학살의 천사"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광주에서 자국 민간인 학살을 명령한 군부 독재자는 누구였을까?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였다. 자기혐오는 피지배자를 지배자보다 더 비열하고 잔인하게 만든다. 

 

작가가 아시안계라 그런지 다양한 아시아계 난민이나 이주자들의 이야기, 식민지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학살이나 전쟁, 범죄 사건들이 중간중간 많이 나온다. 이렇게 인용이 많은 글도 처음 읽는다. 작가는 아주 또렷하게 서방세계 속에서 난민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과정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 아시안계 여성, 전쟁범죄 피해자, 전쟁 포로 등으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도 드러낸다. 

특히 미국 대중매체가 어떤 식으로 피식민지 나라의 여성을 묘사하는지를 참 섬세하고 예리하게 밝힌다. '하지만- 네가 떠내려간 타자인 것처럼 너 역시 타자를 떠내려 보낸다.'고 쓴 부분이 좋다. 자신을 아무 죄가 없는 선의 위치에 안전하게 숨겨두지 않겠다는 저자의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타자로서 (어린이나 여성, 초짜, 며느리) 받은 상처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타자라는 (장애인, 병자, 노인, 불법체류자, 흑인) 이유로 상처를 줬을 것이라는 점도 동시에 깨닫는다. 

 

이 책에서 3부가 가장 좋았다. 1부는 혼란스러운 성장기와 난민으로서 미국에 온 가족의 역사를 말하고, 2부는 바와 마, 저자의 모부의 성장배경과 그들을 대하는 저자의 시선, 성장기가 드러난다면 3부는 저자의 어머니가 기억을 잃어가면서부터 돌아가시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인 역사로 기록하고자하는 의지가 가장 잘 드러나 있어서 좋다. 

 

너무도 많은 전쟁 피해자가 집계되지 않는다. 기념비도 세워지지 않았고 벽에 이름도 새겨지지 않았으며, 소설이나 희곡이나 영화에 등장한 적도 없다. 난민, 자살자, 장애인, 집 잃은 사람들, 정신이 망가진 사람들, 이 현실을 떠나버린 사람들. 끝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어머니가 겪은 일은 그저 개인의 운명일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와 전쟁은 번갈아 가며 어머니를 괴롭혔다. 어머니를 갉아먹고 결국에는 무너뜨렸다.
어머니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자식이다. 나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손주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직접 총을 겨눈 적은 없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같은 미국인이나 국경 너머의 타자를 겨냥하는 미국이라는 죽음의 기계에 연루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어머니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내 어머니)이자 타자(역시 내 어머니)인 누군가를 회상하고 그분을 통해 암묵적으로 모든 베트남 난민의 고난을 대변하며, 그분이, 그들이, 우리가 아메리카의, 나아가 베트남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아메리카는 위대한 백인 미국 남성 소설가들의 것이다. 그들은 제국의 환한 중심부에서 그곳에 관해 쓰지만 결코 제국을 제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그늘지고 외진 구석에서 글을 쓴다. 우리의 힘은 죽음과 고통을, 우리의 부모가 겪은 트라우마를 목격한 데서 나온다. 우리는 이 고통에 관해 증언할 것은 요청받았지만, 소송을 제기하고 최종 의견서를 작성하고 판결을 내리는 검사, 변호인, 판사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슬픔을 보여줄 뿐, 이 슬픔이 존재하는 이유를 말해서는 안된다.

힘 있는 자들이 더욱 강해지기 위해 그들의 비밀을 공유하듯, 힘없는 자들은 그들의 고통이 독이 되지 않도록 슬픔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는 타자의 공백을 두려워하기보다도, 그 공백 속에서 난민을 생산할수밖에 없는 국경과 전쟁 기계, 국민 국가에 기초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가진 것 없고 미미한 존재인 난민을 경멸하는 대신 그들의 무에 동조할 수 있다. 무에서 출발하여 착취와 폭력, 공포와 테러, 탐욕과 이기심 등 우리 모두를 부정하는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조모부와 모부에 관해 쓴 이슬아 작가의 책들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작가는 모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타자로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바라보고, 그들의 삶을 편집하여 기록하고, 그들의 심정을 짐작하고, 그들의 기억을 전한다. 그것은 앨범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삶이라는 연속체에서 어떤 순간을 골라 촬영하고 인화해 앨범에 끼워넣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가 구성된다. 그것은 아무개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곧 국가의 역사, 공동체의 역사, 세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작가의 분투가 느껴져 힘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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