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로봇과 인간이 등장하는가?
이 책은 인간이 동물과 로봇을 비롯한 다른 존재와 어떻게 상생해야 하는지,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하는지 묻는다.
타자와 공존, 생명과 결함 같은 것들이 이야기의 주요 개념이다. 타자란 무엇인가? 나와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인간은, 로봇은, 동물들은 사는 동안 어떤 시간을 보내는가? 삶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함이란 무엇인가? 쓸모 없다는 건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건 무엇인가? 기계답다는 건, 동물의 본성이라는 건 무엇인가?
필요란 무엇인가? 산다는 건 무엇인가? 존재는 왜 태어나고 어떤 방식으로 죽는가? 결함이 있는 존재도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모든 한계는 뛰어넘을 수 있는가?
이를 위해 실수로 만들어진 로봇이 등장하고, 가족의 불행을 모른 척하는 로봇에 관심 많은 천재 연재가 등장하고, 장애를 가지고 말을 사랑하는 은혜가 등장하고, 인간들에 의해 무릎이 부서질 때까지 달리게 된 말 투데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저마다 결함을 안고 있다. 그러한 결함이 이들을 살아있게 하고, 고유하게 한다.
사건 1. 콜리는 투데이와 함께 경주에 나갔다가 스스로 바닥으로 떨어지기로 결심한다.
사건 2. 콜리는 부서졌고 수거될 위기에 처한다.
존재 자체가 말을 타기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낙마해 부서진 기수는 그대로 폐기처분 됐고 머지않아 새로운 기수가 등장할 거였다. 민주는 단지 콜리가 하는 말들이 다른 기수와는 조금 달라 기수방에서 콜리를 빼두었던 것뿐이었다. 아주 잠시 동안만, 하늘이 보고 싶다고 해서...
"왜 말을 타다가 하늘을 바라본 거야?"
"하늘이 그곳에서 그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사건 3. 로봇에 관심 많은 소녀 연재가 전재산을 들여 콜리를 산다. 지수는 연재와 함께 대회를 나가기로 하는 댓가로 콜리를 고칠 부품을 연재에게 준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그러니 연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혼 힘을 다해 뛰어가는 것.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각기 다른 몸값을 지니고 나왔다. 연재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연재와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탄생시켰다. 그제야 삶의 격차가 어느 틈을 비집고 생겼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연재의 균열이라기보다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보다 더 먼 부모님의 삶 어디에선가부터 천천히 시작된 균열일 것이다.
사건 4. 은혜는 휠체어를 탄다. 연재의 언니인 은혜의 행복은 마방에 있는 투데이를 보러가는 것이다.
은혜에게 집 밖 세상은 맵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주된 공격은 시선이었고, 들어가지 못하는 가게들이 배경으로 지나갔으며, 가방에는 HP회복을 위한 식량과 물이 구비되어 있었다.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을 남들처럼만 대해준다면 은혜는 사이보그 따위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은혜는 이럴 때마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 생각했다. 보경은 주어진 한계 따위는 없다고 살아오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지만 정말로 한계가 없다면 한계라는 것조차 모르지 않았을까.
"너도 나도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는 게 꼴보기가 싫다. 우리 엄마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가서 남들에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라고 하는데 나는 왜 굳이 그렇게 멋있게 살아서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사건 5. 투데이는 반복된 경주로 빨리 달리기 어려워진다. 경마장에서는 투데이를 처분하기로 한다.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히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짐슬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일임과 동시에 유일한 생존수단이기도 했지만 복희는 유독 마방에 갇힌 말들의 눈을 오래 쳐다볼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말은 지구에서 살아갈 이유를 얻지 못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 밖으로 나가면 어느 동물도 살아남지 못해요.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사건 6. 아이들은 투데이를 살리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투데이와 콜리를 다시 한번 주로에 세우기로 마음 먹고, 비리를 저지른 경마장 사장을 협박한다.
은혜의 생활에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혜가 모든 길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불가능이 없는 시대라지만, 은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였다.
가끔 세상은 은혜가 들어갈 틈 없이 맞물린 톱니바퀴 같았다. 애초에 은혜가 들어갈 수 없게 조립된 로봇 같았다. 그런 세상에 제대로 한 방을 날려줘야 한다고생각하면서도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때마다 분에 못 이겨 경마장을 찾았다. 투데이는 은혜만의 대나무 숲이었다. 그런 투데이가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울지 않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투데이를 찾은 은혜는 다짐하듯 그렇게 말했다.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어."
투데이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은혜는 지금이야말로 잠적을 끝낼 시기이며, 세상에 한 방 먹일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랜만에 일기장을 펼쳐 은혜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강하다. 나는, 지킬 수 있다.
사건 7. 보경은 배우를 꿈꾸었으나 지하 연습실 화재로 화상을 입는다. 그를 구한 소방관은 다른 이를 구하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식당 일을 하며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다. 로봇을 외면하던 그녀는 콜리에게서 묘한 위로를 받는다.
다르파의 계산은 정확했다. 하지만 소방관은 다르파의 조언을 뿌리치고 망설임 없이 내려가 보경을 안았다.
소방관이 놓지 않았던 보경의 3%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보경은 언젠가, 한강 노을을 바라보며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에게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고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소방관의 그날 생존율은 80%였다. 하지만 80%였던 수치가 0%로 떨어지는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기계가 고장난 것이라고 믿었던 보경은 곧 온몸이 작업복에 눌어붙은 채 질식해 죽은 소방관을 만났다. 오래된 소방복 탓이었다. 보경은 자신의 화상 입은 얼굴을 어루만졌던 소방관처럼 살점이 다 떨어진 소방관의 손을 자신의 볼에 가져갔다.
하지만 보경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로봇의 공격이나 반란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세상이다. 연재가 들어가려다 튕겨져 나온 그들만의 세상.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처럼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건 아름답다는 건데, 콜리 눈에 그 반짝거림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구나. 콜리에게도 그리워할 순간이 생겼다. 투데이와 주로를 달릴 때다. 투데이가 행복해하는 진동을 느끼면서.
사건 8. 수의사인 복희와 사촌 오빠인 서진, 경마장에서 일하는 민주와 다영의 도움을 얻어 투데이와 콜리는 주로를 달린다. 콜리는 떨어진다.
"그래도 우리가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상상보다 늘 나을 거예요. 예를 들면 동물이 사라지고 인공지능을 키우는 시대가 도래하는 대신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부재하는 시간 동안 동물을 돌봐주겠죠."
서진이 다급하게 물었다.
"출전권을 따내면 얻는 게 뭔데?"
"이틀에서 14일이 되는, 투데이의 남은 삶."
"고작 이틀에서 14일로 삶을 연장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하지만 연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 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여기서 만족했다면 나는 내 삶의 2막을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투데이의 바람을 모르는 척했더라면. 행복이 고통을 이겼다. 이 순간만큼은 예전처럼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실수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연재의 말을 빌리자면 기회였다. 나는 민주가 화낼 걸 알면서도 고삐를 놓는다. 투데이의 목을 끌어안는다. 투데이의 행복함이 떨림으로, 울림으로, 진동으로 전해진다.
투데이의 심장이 뛴다. 다시는 달리지 못할 줄 알았던 말이 비로소 느끼는, 제 2의 삶의 박동으로 전해진다.
나는 그때 투데이에게서 떨어졌다.
두 번째 낙마였다.
나의 최후다. 엉덩이부터 상체까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으나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맑은 하늘이 보였을 뿐이었다.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이후의 사건들
주로를 천천히 달리는 투데이의 모습은 경마장과 동물복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으며, 투데이는 제주도에 가서 살게 되었다. 연재는 대회를 준비하며 지수와 친구가 되고, 기술은 가까이 있는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연재가 고안한 휠체어는 몇 년 후 은혜를 자유롭게 한다.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했다. 경마장에서는 빠른 말이 1등을 하지만, 느리게 달린다고 경기 도중 주로에서 퇴출당하지는 않았으므로, 애초에 천천히 달리는 것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너를 그냥 데리고 왔다고 했잖아. 사실 그거 거짓말이야."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연재가 이것만은 콜리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이 다 망가진 채로 건초더미에 누워서 나한테 하늘이 예뻤다고 말하는 네가 불쌍했어. 그리고 순간 내가 너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도 들었어."
"자유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오르지 못하고 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바퀴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연재는 지수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보경은 남편을 잃은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연재는 꿈을 이루게 될까? 투데이는 다시 달릴 수 있을까? 투데이가 살아날 방법이 있을까? 은혜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질문하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 행복하게 닫힌 결말로 마무리됨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읽고 나서 많은 질문거리가 떠올랐다.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는 건 이야기의 힘이 엄청나다는 뜻이다. 멋지다. 소설을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알게된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끌어내는 게 소설가가 할 일이고, 그걸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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