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엉켜버린 삶, 더러운 운명
방학맞이 고전 읽기 두 번째 작품 탁류.
요즘 군산에 자주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군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 하나가 채만식의 탁류다.
탁류는 혼탁한 물이라는 뜻이다. 문학사상사의 2판 표지에는 '예리한 풍자와 을씨년스러운 냉소, 풍자 문학의 진수'라고 적혀 있다.
작가는 식민지 현실을 황폐해져가는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여자의 인생이 망하는 이유는 남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첫 장 '인간 기념물'을 읽을 때에는 낯선 한자와 어휘에 역시나 좀 적응이 안됐다. 그렇지만 이미 혼불에서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것은 훌훌 넘기며 읽었다.
처음에는 미두장에서 노름을 하는 하바꾼 '정 주사'라는 인물이 나온다. 공부깨나 했다지만 내실이 없어서 그냥 한 방의 행운이나 바라는 한심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남편이면 어떻게 되느냐, 부인 유씨처럼 혼자서 끙끙대며 자식들을 먹이고 생계를 짊어져야 한다.
이지훈에 책에서 나왔던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밖에서 망신 당하고 그나마 집에서 거드름 피우면서 알량한 가장 대접을 받아야 겨우 자아를 충족하는 사람. 밑천도 없이 노름판에 낀 정 주사는 급기야 멱살을 잡히는 곤욕을 치르는데 이 때 고태수라는 사람이 나타나 도와준다.
입만 가졌지 손발이 없는 사람... 이것이 정 주사다.
진도라고 하는 섬에서 나는 개하며, 금강산의 만물상이며, 삼청동 숲속에서 울고 노는 새들이며, 이런 산수고 생물이고 간에 천연으로 묘하게 생긴 것이면 '천연 기념물'이라고 한다.
그럴 바이면 입만 가졌지 수족이 없는 사람, 정 주사도 기념물 속에 들기는 드는데,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니까 '천연 기념물'은 못 되고, 그러면 '인간 기념물'이겠다.
작가는 '정 주사'라는 인물을 이렇게 묘사한다.
천연 기념물은 보통 보존 가치가 있는 전통적인 물건이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뜻하는데(작가도 언급함) 왜 정 주사더러 인간 기념물이라고 했을까? 천연으로 묘하게 생겼다는 말이 무엇일까?
스스로를 발전시켜 생활을 꾸려나가지 않고 생긴 그대로 머물러 살기에 자연에 빗댄 것일 수도 있고, 박제해 두어야 할 정도로 시대를 잘 상징하는 인물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당장 살 길이 막막하고 곤궁하지만 별 도리 없이 손을 놓고 있고, 그러면서도 체면은 차리려 하는 정 주사. 일제 강점기 하의 조선의 궁핍한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그 다음 멍청한 인간은 '고태수'이다. 그는 과부인 어머니의 정성 아래 자라 은행원이 되었지만 주색과 횡령을 저질러 인생을 망친다. 전형적인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속은 썩어문드러진 범죄자 스타일.
그래서 그는 육장 입버릇같이, '죽어 버리면 고만이지.' 이 소리를 하고, 할라치면 순간순간은 아무것이고 무섭지도 않고 근심도 놓이고 하던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초봉이와 결혼이나 해서 단 하루나 이틀이라도 좋으니 재미를 보기가 마지막 소원이요, 그런 다음에는 세상 아무것에 대해서도 미련이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돈을 마음대로 쓰고 돌아다니면서 즐겁게 노는 그런 움직이는 생활이 아니고는 차라리 죽음만도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일이 탄로나는 마당에 이르러서도 자살로써 감옥 가기를 피하려는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앞날이 없는 이런 사람은 위험하다. 그리고 이 사람 옆에는 반드시 뱀 같은 공범이 있다.
이 책에서 제일 악한 인물로 그려지는 '장형보'이다. 형보는 곱추고, 불쾌한 외형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다. 피해의식이 심하며, 자존감이 낮아 겉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를 차리고 잘 맞춰주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흉계를 꾸미는 잔인한 사람이다.
태수는 불륜을 저지르던 김씨와 공모해 정 주사 부부를 속이고 초봉이와 혼인을 한다. 도박의 마지막인 셈이다. 초봉이는 자기 집에 세들어 사는 의사 승재를 마음에 두고 있고, 서울에 가서 약사 시험을 볼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부모의 등쌀에 떠밀리고 만다.
그들은 진실로 이러하다. 그들은 딸자식 하나를 희생을 시켜서 나머지 권솔이 목구멍을 도모하겠다는 계책을 적극적으로 세우고 행하고 할 담보는 없다. 비록 낡은 것이나마 교양이라는 것이 있어 타성적으로 그놈한테 압제를 받기 때문이다. 교양이 압제를 주니 동물적으로 솔직하지 못하고 인간답게 교활하다.
해서, 정 주사네는 시방 태수와 이 혼인을 함으로써 집안이 셈평을 펴게 된 이 끔찍한 행운을 당하여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이 혼인이 장차에 딸자식을 불행하게 하지나 않을 것인가 하는 의구를 일으켜 가지고 그 의구가 완전히 풀리기까지 두루 천착을 해 보기를 짐짓 그들은 피하려든다.
작가는 정 주사와 유씨의 인간성을 교활하다고 평한다. 굶다못해 이백 원을 주고 딸을 기생으로 판 명님이네와 비교하여 그들은 교양을 차리기는 한다. 그렇다고 두 집이 다르냐 물으면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어차피 딸을 팔아 입에 풀칠을 하려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고태수라는 굴러들어온 행운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부모라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않고 바보짓을 하는 모습이 답답했다.
형보는 쌀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태수와 쌀집 김씨가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까발린다. 그리고 태수가 비참한 꼴로 죽는 사이 초봉이를 강간한다. 초봉이는 군산을 떠나는 기차에서 부친의 친구이자 약국 주인이었던 박제호를 만나고, 박제호는 초봉이를 첩으로 삼으려 한다.
철든 이후로 무엇에고 나를 고집 못 하던 나!
고태수와 결혼한 것도 알고 보면 내 마음이 무른 탓이요, 장형보에게 욕을 본 것도 사람이 만만한 탓이 아니더냐. 그러한 보과로는 내 몸과 청춘을 잡친 것밖에는 무엇이 더 있느냐. 그러고서 시방 또다시 새로운 운명이 좌우되는 이 마당에 임해서도 다부친 소리 한마디를 못하는 것은 무슨 일이냐.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빠짐없이 초봉이를 성욕의 대상으로만 바라볼까.
이미 신세를 망쳤다고 한탄하며 자포자기하는 안타까운 초봉이의 모습과 하이에나처럼 약한 곳을 찾아 어떻게든 초봉이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는 등장인물들의 면모가 한탄스럽다.
박제호는 알뜰살뜰 잘 대해주겠다던 약속을 저버리고 결국 형보의 손에 초봉이를 넘겨주며, 초봉이는 딸 송희를 삶의 끈으로 여기며 하루하루 시들어간다. 딸을 인질로 삼아 협박하는 형보 때문에 억지로 형보와 살게 된 초봉이는 결국 형보를 죽이고, 자살하기로 마음 먹는다.
보고 섰는 동안에 생시가 꿈으로 바뀐다. 남자는 승재요, 여자는 초봉이 저요, 둘 사이에 매달려 배틀거리면서 간지게 걸음마를 하고 가는 아기는 송희요... 번연한 생시건만, 초봉이는 제가 남이 되고 남이 저인 양 넋을 잃고 서서 눈은 환영을 좇는다. 초봉이는 집에서도 늘 이러한 꿈 아닌 꿈을 먹고 산다. 송희를 사이에 두고 승재와 즐기는 단란한 가정.
물론 그것은 꿈이었지, 산 희망은 감히 없다.
초봉이는 이기적이지 못해 불행한 인물이다. 부모 때문에, 동생들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딸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초봉이가 답답하기는 해도 나는 초봉이를 비난하지는 못하겠다. 선한 사람을 행복하지 못하게 사는 세상이 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초봉이는 몸싸움 끝에 형보의 급소를 걷어차고, 널브러진 장형보에게 멧돌을 던져 죽인다. 초봉이의 앞날을 위해 상의하러 왔던 동생 계봉과 승재는 이 현장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초봉은 계봉과 승재에게 송희를 맡기고 자수하기로 마음 먹으며 이야기는 끝난다. 비극적이다.
이야기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인물 중 한 명인 승재는 스스로 궁핍하지만 다른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를 해주고, 가난해 기생집에 팔려간 동생 같은 명님이를 구하고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초봉이가 좋아했던 사람이며, 작중 유일하게 초봉이를 도와주려고 하는 남자이다.
만일 농촌의 여자의 생활이 사실로 그렇다면 미상불 명님이더러 그 길에서 이 길로 옮아가라고 한다는 것도 결국 새빨간 남으로 앉아서 나만 옳은 줄 여겨 그걸 주장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싶었다.
새삼스럽게 모두 한심했다. 작년 겨울부터서 그는 계몽이니 혹은 교육이니 한다지만, 어느 경우에는 절름발이를 만드는 짓이고, 보아야 사실상 이익보다 독을 끼쳐 주는 게 아니냐고, 지극히 좁은 현실에서 얻은 협착스런 결론으로다가 막연한 회의를 하기 시작했었고, 그러기 때문에 야학 맡아보아 주는 것도 신명이 떨어져서 도로 작파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또한 초봉이의 고결한 희생에 감복해 고태수와의 결혼을 막지 못한다. 그의 눈에 초봉이는 자신을 태워 가족을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는 천사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민지 시대 지식인을 상징하는 인물 남승재는 그 자체로 모순과 한계를 가진 인물이다. 가난과 궁핍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고 구할수록 회의감은 커진다. 승재를 보며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
어떨 때는 내가 가진 생각으로 도우려 했던 행위가 얄팍한 자만이 되기도 하고, 내쪽에서 선한 의도로 도우려고 해도 상대나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아 일이 잘 안 풀릴 때 맥이 탁 풀리기도 하는. 그런 순간이 생각나 승재의 입장에 공감도 갔다.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뿐이다.
내 인생은 내 힘으로. 그리고 누구보다 더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런 결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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