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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by 곰곰곰곰 2022. 9. 12.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의 책.

이번에 읽으면서 이 작가는 평범한 생의 장면을 특별하게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소중한 순간을 꼭꼭 접어 잘 개켜두었다가 필요한만큼 꺼내 다듬어 보여준다.

읽다보면 '나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지...'하고 회상하게 된다.

그 솜씨가 더도 덜도 말고 딱 알맞게 산뜻해서 기분이 좋다.

 

책은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로, 그림이 곁들여져 있다.

어머니 '복희씨'와 함께 성장하면서 느끼고 배운 삶의 결이 잘 드러나있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어떤 모녀가 함께 자라도록 도운 풍경을 묘사한 책이다. 한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의 역사, 혹은 한몸에 있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우정.

 

작가가 모성애나 가족 간의 사랑이라고 묘사했다면, 나는 좀 주춤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와 나 사이에 흐르는 것이 사랑보다는 기대와 인내에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모녀가 알 수 없이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정과 독립이라는 말이, 두 여성이 함께 성장해간다는 말이 참 좋았다.

 

그들이 자랐던 시대는 달랐고, 그들이 성장한 환경도 달랐지만 둘은 닮은 구석이 있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전국을 돌며 누드모델 일을 했던 슬아와 가족을 위해 먼지와 서러움을 마시며 온갖 일을 열심히 했던 복희는 닮았다.

타인을 진실하게 쓰기 위해 계속 질문하고 메모하는 슬아의 성실함과 살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자꾸 궁금해하는 복희의 삶의 자세 또한 닮았다.

 

그러나 둘은 다르기도 하다.

충남 이인면 잣골 논밭 한복판의 원두막에서 자연 속에 혼자 누워 자아가 다 흩어지는 충만함을 느꼈던 복희와 SNS에 끊임없이 연결되지 못하면 하루도 못 견디게 불안해지는 슬아는.

원했던 꿈을 내려놓은 복희와 계속 그걸 쫓아가는 슬아는.

오늘이 운동회라는 걸 그녀가 까먹었을지도 몰라서, 모든 애들이 부모랑 밥을 먹는데 나는 아무랑도 먹을 사람이 없을까봐 울먹거리며 복희를 기다렸다. 만약 그녀가 정말 오지 않는다면 난 수돗가에 가서 수도꼭지를 틀고 오열할 것이었다.
(중략)
복희는 압도적으로, 정말이지 압도적으로 빨랐다. 초등학생이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럴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정작 복희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수월하게 1등을 하고 숨을 후 내맽은 뒤 내가 앉은 돗자리로 와서 도시락을 치웠다. 그리고 집에 가서 설거지를 하고 다시 여러 끼의 밥을 차리며 십몇 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자주 그런 질문을 했다. 사는 게 뭘가, 슬아야.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복희는 가끔 생각할까. 그녀가 될 뻔한 자신의 모습을. 놓쳐서 날려버린 기회와 가능성들을. 그게 아쉬울까. 혹은 아무렇지도 않을까.

 

나도 엄마를 보면서 가끔씩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한다.

'방구석 1열'을 자주 보고, 영화 채널을 뒤적거리는 걸 보며 그녀가 영화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 쓸쓸해진다.

엄마는 자기 인생이 못났다고 슬퍼한다. 자기가 너무 멍청했고 겁이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빠랑 덜컥 한 결혼으로 엄마 인생의 많은 부분이 뒤집혔다. 결혼은 아마 엄마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가 아니었을까?

그래도 결혼해서 우리를 낳은 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한다. 나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뭐라 덧붙이는 걸 그만둔다.

그냥 엄마가 내 앞에서 울었으면 좋겠다.

 

엄마와 나는 눈물샘의 어딘가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험난한 세월을 지나고 내가 엄마 없이 성장하는 동안 그와 나를 이어주던 눈물샘의 연결이 끊어진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앞에서 울지 않는다.

대신 아무도 없는 방에서 수첩에 복잡한 마음을 옮겨놓아 글을 쓴다. 혼자만 아는 슬픔의 창고같은 셈이다.

 

 남을 쓰고 그리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나는 나만 아니까. 남은 모르니까. 타인에 관해서 쓰는 건 자주 실패로 끝났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 시도하고 썼던 대사와 문장들은 꼭 어설펐다. 어설프지 않으려면 아주 주의깊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했으나 나는 남에 대해 쓰는 일에 성급하고 게을렀다.
두렵기 때문에 우선 나에 관해 쓰곤 했다. 그것 역시 어려웠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의 구성은 가족과 사회와 정치와 국가와 환경과 과학과 시대의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했다. 세상 속 나의 좌표를 알려면 우선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건 평생 계속해야 하는 공부였다. 

나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면 자동으로 하품만 나오기 시작할 때쯤부터 남에 대해 겨우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들에게서 발견한 나만 알기 아까운 이야기들을 잘 전하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우선 잘 묻고 잘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풍성한 질문을 가진 사람이었다. 타인에게서 들은 대답을 언젠가 잘 옮기기 위해 아주 많은 메모를 했다.
하지만 진실들은 질문만으로 알아지는 게 아니었다.
내 필터링을 거친 이야기들이 지겹고 미울 때마다 나는 말을 참고 사람들 사이에 알몸으로 서 있던 때를 생각한다. 
다시 옷을 입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나를 둘러싼 그림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나를 그려놓은 그림들이었는데 어쩐지 모두 그들 자신을 조금씩 닮아있었다.
누구나 남을 자기로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엄마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올 때를 물어보고 도착할 시간에 맞춰 따뜻한 밥을 차려내는 엄마.

맛있었다는 말을 기억하고 쪽파 하나하나를 손질해 김치를 담그고, 고기를 재우며 삼시세끼를 고심하는 엄마. 

머릿속에 계획이 있어서 느적대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

자식들한테는 퉁명스러워도 강아지들 앞에서는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엄마.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입술을 한껏 벌리고 치아를 드러내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엄마. 

그는 너무 어렵고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자주 엄마 때문에 마음을 다치지만 그의 말랑말랑한 속을 목격하면 상처를 덮어버릴 수밖에 없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미안해하고 나는 엄마를 아까워 한다. 그녀의 젊은 날과 이룰 것이라 믿었던 꿈과 조마조마하게 반짝이던 어떤 것들이 못내 아쉽다.

때로는 엄마가 나 없이도 너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밉기도 하다.

사랑보다 멀고 우정보다는 가까운 사이.

 

내가 아는 어른들은 모두 엄마를 미인이라고 말했는데 나의 이목구비는 아빠를 쏙 닮았고 여배우의 표정 같은 건 따라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엄마가 울 때면 나는 곧바로 엄마와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엄마가 닭갈빗집에서 하루종일 서빙일을 하고 돌아온 10년 전 어느 날 밤에도 그랬다. 부엌 식탁에 앉아 빨간 코를 하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내 목젖이 시큰거렸다. 이유도 모르는 채 따라 울면서 엄마 몸을 보았다. 엄마는 예전보다 덜 날씬했다. 통통해도 예뻤지만 고단해서 찌게 된 살 같아서 나는 서글펐다.
나는 돈을 많이 벌면 엄마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지 생각했다. 가장 주고 싶은 것은 시간이었다. 쉴 시간이 조금 더 생긴다면 엄마는 산책을 자주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천천히 늙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가 소피 마르소 사진을 자주 바라보던 때가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그때 엄마는 최대한의 자신을 꿈꿀 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될 수 있었던 어떤 자신, 그 무수한 가능성들이 다 아까워서 서글펐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를 빼닮았다고 느꼈다.

엄마는 살집이 있는 통통한 체형이고 아빠는 큰 키에 비쩍 마른 허수아비인데 나도 말라깽이여서 그랬다. 

앞니가 크고 입이 튀어나와있는 것은 친할머니로부터 이어진 나의 컴플렉스였다. 

엄마를 닮은 데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남동생과 엄마와 셋이 놀러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보니, 내가 넙대대한 엄마 얼굴을 하고 똑같이 입술을 내려 웃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남들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름의 고집이나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중요시하는 성향도 닮았다.

무엇보다도 가까운 사람에게 불퉁하게 내뱉는 말투가 닮았다. 고쳐보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는 것도.

 

나는 엄마와 있는 걸 좋아한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함께 자고 일어나 강아지들을 쓰다듬으며 낄낄 대는 걸 좋아한다.

엄마가 내 팔이며 손을 만져보는 걸 좋아한다.

예쁘게 하고 다니라며 내 머리를 말아준다고 할 때 못 이기는 척 엄마의 미용손님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함께 산책을 하고 친구나 동료, 학교 일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웃을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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