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린이라는 세계

by 곰곰곰곰 2022. 8. 13.

 

어린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른을 말하는 책.

 

작가는 1부에서 자신의 곁에 있는 어린이들을 그린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린이들의 매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만나봐야 알 수 있는 단면이기에 교사로서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다.

 

책에 나오는 어린이들을 보고 나도 오늘 내가 만난 어린이들을 좀 되짚어볼까 한다.

연극 캠프 후 소감을 말하라고 하니 주아는 "재미있었던 거나 그런 거 말하는 거죠?"하면서 좋았던 점을 술술 말했다. 화룡점정으로 "오늘이 끝이라니 너무 아쉬워요."하고 덧붙였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감동하는 나(팬)를 보며 시상식에서 소감을 말하는 배우처럼. 주은이는 막대기를 사용해 표현할 때 약간 쑥스러워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차례를 건너뛰지는 않았다. 그건 예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솔이는... 그리는 게 분명했다. 같이 흉내를 내는데 '고양이 장난감'이라고 하니 정답이 아니란다. 반드시 '긁는' 고양이 장난감이어야 했다. 그냥 자동차도 답이 안된다. '범퍼카'여야 한다. 

 

책의 저자는 어린이를 어린이라고 얕잡아보거나 어른들 마음대로 다루려고 하는 관성을 매우 경계한다. 기특하다거나 귀엽다는 말로 함부로 평가하지도 않는다.

오늘 나도 주아가 하는 말을 듣고 '얘가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이러나?' 의심했다. 때로 영악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은이도 어떤 날에는 '못 하는데 고집만 부리는 아이'가 될 것이고, 이솔이는 아마 자주 '자기 세계에 빠진 답답한 아이, 융통성 없는 외곬수'라 불릴 것이다. 

고생한 선생님의 기분을 살펴 정성껏 대답해주는 배려와 부끄럽지만 시도해보고 싶은 용기,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자신감을 목격했는데도 그렇다. 나는 얼마든지 아이들에게서 돌아설 수 있고, 부끄럽지만 자주 그래왔다. '어른의 관성'에 빠지면 이렇게 되고 만다. 어린이의 우주에서 아주아주 멀리 비껴가버린다.

 

어린이의 입장에서 그들의 고유성을 존중하며, '착하고 멋진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하자고 저자는 우리에게 당부한다. 어린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진심 어린 부탁에 뾰족뾰족 찔리는 것이 많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특징을 가지고 싶었다. 눈에 띄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김소영'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다.
나는 '개성'이라고 하면 유별난 점,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 남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독보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장점이나 장점으로 봐 줄 만한 무언가여야 개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없으면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학년이나 성별 같은 것을 지우고 보면 어린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느낌이다. 하나하나의 정보는 색다른 점이 없지만, 그런 것이 모이면 어린이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누구랑 비교할 필요가 없는, 어린이의 고유한 모습이다.

어린이의 개성은 그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이 그렇듯이.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 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활기차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함이야말로 사무적으로 보일 만큼 안정적인 질서다. 그런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나는 안심이 된다. 우주가 우리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는 사실도.

 

2부는 어린이와 나, 나와 어린이의 관계를 그린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통해 아이들을 비추어보고, 또 어린이의 모습에서 자신을 찾기도 한다.

 

나는 어떨까? 이제 충분히 어른이 되었을까?

본인 기준에 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쿨하게 놓아버리는 윤우에 비하면 나는 어른이 아니다. 나는 '해라!'하는 건 싫어도 꿍얼거리며 하는 편이다. 스스로 고통받으면서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우리반 여울이는 허례허식을 싫어한다. 억지로 꾸며내 답하지도 않는다. 예전에 전학을 와서 내가 전학 온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음.. 그런 건 딱히 없는데요."하고 답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미사여구로 지어내다가 현타가 올 때, 그럴 때는 우리반 아이들의 쿨함이 참 부럽다.

 

어렸을 때 나는 사소한 것에도 곧잘 불안해하는 어린이였다. 오랜 기간 방학을 하고 나서 학교에 언제 가야 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아무도 몰래 학교에 가 본 적도 있다. 걱정이 많지만 그걸 들키는 건 창피해서 들키고 싶지 않았다.

뭐든지 너무 잘하는데도 곧잘 "못해요, 못하겠어요"라고 하고, 완벽해지고 싶다는 세이에게서 가끔씩 나를 본다. 선생님의 심부름이라면 뭐든 좋아서 부탁하기도 전에 내 옆으로 와 있는 가람이에게서도 나를 본다.

그러고 보니 비슷하잖아?

나도 선생님이 열심히 수업하는 동안 책에 낙서를 하는 아이였고, 딴생각을 하다가 화들짝 놀란 적이 있었고, 너무 긴장해서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를 한 적도 있었다. 아는 것 같아서 손을 들었는데 틀린 답을 썼다는 걸 알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칠판 앞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해서 책상 밑에 책을 펼쳐놓고 몰래 보다 책을 뺏긴 적도 있었다. 선생님이 꾸중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운 적도, 따뜻한 한 마디를 곱씹으며 잠 못 이룬 적도 있었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아이가 너무 많다. 혼자 애쓰는데 아이들은 벽을 보고 있는 것 같을 때, 내가 불쌍하기도 하다. '나라면 안 그럴텐데, 나는 안 이랬는데'하는 생각이 들면 굉장히 미울 때도 있다. 

그런데 오늘 되짚어보니 어린이였을 때의 나와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은 참 닮았다. 어쩌면 우리는 닮아있는데 내가 먼저 등을 돌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되새겨야지. 그리고 어렸던 나를 기억해야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1) 2023.01.01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0) 2022.09.12
꽃들에게 희망을  (0) 2022.08.13
긴긴밤  (0) 2022.04.19
혼불 4부. 꽃심을 지닌 땅  (0) 2022.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