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너는 긴긴밤을 밝혀주는 나의 등불
감동적인 책이다.
나는 새드엔딩이 참 잘 쓰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신파가 되어버리고, 또 눈물을 짜내기 위해 억지스럽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어둡게 만들었는데도 마음에 별다른 감흥이 남지 않을바에야 차라리 해피엔딩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 쓴 새드엔딩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 때문에 그런 결말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슬플 것을 알면서도 달려나가야 할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전개가 숨 가쁘거나 극단적이지 않은데도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 이 이야기는 아프게 끝날 수밖에 없구나'라고 깨닫는다. 그래도 놓을 수가 없다.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는 책이고, 등장하는 인물에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책이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버지들이었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나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름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이다.
첫 머리에 '이름'이 나와서 좀 놀랐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재였기 때문에. 그리고 이름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이름이 없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등장은 매우 신선했다.
실제로 이야기의 끝까지 가도 마지막 남은 이 펭귄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다.)
이름을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이야기 속에 담겨있구나, 곱씹을수록 멋진 책이다.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코뿔소이다. 현명한 코끼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노든은, 코뿔소 아닌 코끼리로 머물고 싶었지만 결국 현명한 코뿔소가 되기 위해 세상으로 나온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후회가 많은 나에게는 위의 구절이 따뜻한 위로로 다가왔다.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면서 자책하느라 밤을 새고, 또 그렇게 하는 내가 싫어서 화가 났던 시간들이 그리 쓸모없지는 않았겠구나 싶은 느낌이다.
안락한 코끼리 고아원에서의 삶을 떨쳐내고 코뿔소의 세상을 찾아갈 수 있도록 노든을 격려하는 코끼리들의 말도 너무나 따뜻했다. 앞으로 만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흰바위코뿔소는 그렇게 넓은 초원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른 코뿔소들을 만나 비로소 코뿔소가 되었다.
행복한 밤은 인간들에 의해 잘려나가고, 동물원으로 온 코뿔소는 '노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언젠가 나는 사람들이 연인을 왜 '자기'라고 부르는지 궁금해하게 되었다. 자기는 당사자 자신을 나타내는 말인데, 남이지만 나만큼 소중히 한다는 건가?
혼자였던 노든은 코뿔소가 될 수 없었다. 노든이 코뿔소일 수 있었던 까닭은 '다른 코뿔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인가? 혼자서는 인간일 수 없나. 왜 그렇지? 의문이 든다. 만약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생물 종이 있다면 그것에 이름을 붙여 **이라고 부르면 걔가 **이 될텐데.
쓰다보니 알 것 같다. 진짜 사람이 되려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고 사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에서 다른 코끼리들을 보며 코끼리가 되었듯이 다른 코뿔소들과 함께 살며 진짜 코뿔소가 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실제로 노든은 초원에 사는 아내에게서 코뿔소로서 사는 법을 배웠고, 그제서야 흰바위코뿔소가 되었으니까.
노든은 아내와 딸을 잃고 동물원에 들어와 '앙가부'라는 다른 코뿔소를 만난다. 둘은 함께 탈출을 계획하지만 시도는 좌절되고, 어느 밤 인간들에 의해 뿔을 잘린 앙가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노든 또한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뿔을 잘린다.
이렇게 보면 총을 들고 뿔을 얻기 위해 사냥을 하는 인간들이나 보호한다며 동물원에 가두고 구경거리가 되게 하는 인간들이나 코뿔소 입장에서는 전부 자신을 괴롭히는 폭력배들로 느껴질 것 같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뿔을 잘린 채 이름을 얻은 게 다 무슨 소용일까. 노든의 모습이 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터진다. 노든은 우리 밖으로 탈출하고, 가는 길에 양동이에 든 알을 물고 오는 펭귄 치쿠와 만난다. 그 때부터 둘은 긴긴밤을 견디며 '우리'가 된다. 치쿠는 알을 돌보는 것에 여념이 없다.
아내와 딸을 떠올리며 불행하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둘은 여정을 계속한다.
살아남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도 내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치쿠와 윔보 때문이라고 했다.
"네가 어떤 기분일지 알아. 내가 그렇게 살아왔거든. 나는 항상 남겨지는 쪽이었지. 내가 바보 같지만 않았어도, 용감하게 가족을 지킨 아내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다리를 절지만 않았어도, 마음씨 고운 앙가부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으면, 유쾌한 치쿠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들이 항상 나를 괴롭게 해. 차라리 살아남은 게 내가 아니었으면 하고 말이야."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노든이 펭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치쿠에게 들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노든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다.
슬픔을 안고 남겨져 정성껏 펭귄을 돌보는 노든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악몽 때문에 잠들지 못하면서도 항상 "이리 와, 안아 줄게"하며 따뜻하게 펭귄을 안고 치쿠와 윔보의 얘기를 들려주는 노든의 모습.
그리고 쑥쑥 자라 자신을 걱정하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펭귄에게 어린 시절 자신이 들었던 격려를 똑같이 전하는 장면.
"그러면 나도 여기에 있을게요."
"아니야, 너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치쿠가 얘기한 파란색 지평선을 찾아서."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나를 혼자 보내지 말아요."
"이리 와. 안아 줄게. 그리고 이야기를 해 줄게. 오늘 밤 내내 말이야. 오늘 밤은 길거든. 네 아빠들의 이야기를 해 줄게. 너는 파란 지평선을 찾아서, 바다를 찾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이야기를 전해 줘."
그리고 작별인사를 나눈 펭귄은 끝까지 절벽을 기어올라 결국 바다를 만난다.
모험을 앞둔 펭귄은 그제서야 노든과 노든의 아내, 앙가부, 치쿠와 윔보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리고 모험을 떠나 긴긴밤을 항해할 것을 다짐한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아껴도 내가 타인의 세상을 대신 살 수는 없다. 또 그의 존재를 대신 찾아줄 수는 없다.
다만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길을 걸어가며 긴긴밤을 함께할 수는 있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알려줄 수는 있다. 주저앉지 말 것을,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갈 것을 격려할 수는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서 힘을 얻는다.
매력적이고 위로가 되는 가슴 찡한 이야기. 긴긴밤을 보낼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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