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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부. 아소, 님하

by 곰곰곰곰 2022. 2. 7.

★ 나의 한줄평: 님아 내 님아

 

혼불 1부는 흔들리는 바람 같이 격동하던 시절을 그린다. 2부 평토제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연처럼 나부끼는 인물들의 서사가 드러난다. 그들은 속시끄러운 심경과 불길한 예감을 모른척 땅에 묻어두려하지만 그는 결코 쉽지 않다. 그리하여 3부까지 왔다.

 

'아소, 님하'가 무슨 뜻일까. 궁금해 검색해봤더니, 뜻밖에도 고려가요 '정과정곡'이 등장한다. 고려 의종 때, 유배를 간 신하 정서가 자신의 무고함과 충절을 노래한 시가라고 한다. '아소'는 '~하지 말아요, 마십시오'를 뜻한다.

이런 배경을 알게 되니 3부의 부제가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 것 같다. 인물들(강모와 춘복이, 옹구네, 강실이, 백단이네 등)에게 "그만 하소 제에발~ 이제 좀 그만하소, 이사람아!!"윽박지르고 싶게끔 서사가 최악을 향해 치닫기 때문이다. 어쩌면 최명희 작가님은 이야기를 읽을 독자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해서 이런 제목을 붙인 게 아닌지ㅎㅎ....

 

3부에서 매안 이씨 양반가와 고리배미, 거멍굴 상민, 천민으로 대표되는 신분갈등은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2부까지 슬금슬금 빌드업하다가 3부에서 비로소 더 숨길 수 없을만큼 속속들이 들어나는 느낌이다.

드디어 춘복이는 강실이를 잡아채기 위해 눈이 뒤집혀 있고, 옹구네는 온 마을을 싸돌아댕기며 씨근씨근 사람들 옆구리를 찔러대 강실이와 강모가 상피붙어 강모가 망신을 피하려고 만주로 도망한 것이라는 소문을 낸다. 또 수천샌님 기표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노비 우례에게 양반 핏줄 타고나 종으로 사는 법이 어디있냐며 아들을 양반대접 받게 해야 한다고 부추기기도 한다.

백단과 만동 부부는 투장해 달라는 홍술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이씨 선산에 숨어들어 청암부인 묘소를 파내는 미친짓을 감행한다. 동짓날 모두가 정신없는 와중에 강실이를 향해 가던 춘복이는 넋 놓은 강실이를 보고 눈깔이 돌아 그녀를 안고 눈물을 흘린다. 옹구네는 바쁘게 움직이며 강실이가 빠져나가지 못할 덫을 놓고, 춘복이의 안주인 흉내를 내며 강실이에게 천것으로서의 설움을 앙갚으려 한다.

 

 "물론 자시가 지났다고 한순간에 해가 뜨지는 않으며, 그믐이 지났다고 초하루부터 달이 둥글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동지가 지난 다음에도 여전히 오랫동안 밤은 낮보다 길지만, 이미 어둠의 기운은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가고, 새로 태동하는 광명의 기운은 아직 비록 발아에 불과할지라도 점점 자라나는 것이니.
얼마 가지 않아 수가 차면 이윽고 가장 길었던 어둠을 가장 짧게 만드는 날에 이르게 되리라.
그런 날을 보자면, 어둠을 지그시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다가오는 광명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기다릴 줄은 모르면서 오직 참기만 한다면 터지기 쉬운 것이요, 또 참기는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없다면 그 합벽을 하게 암담한 나날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느냐.
우주 천리가 이럴진대, 한 나라의 운명이나 사람의 일생도 이에서 다를 것이 없을 게다."

 

어둠이 끝없을 것 같은 자시의 하늘, 그러나 가장 깊은 어둠도 영영 계속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시의 하늘이 시나브로 걷혀 푸른 새벽으로 물들듯 삶도 그러하다. 극렬한 고통의 정점은 곧 찬란한 희망의 시작점이나 마찬가지.

이기채가 효원에게 하는 5권 첫머리의 말은 꼬장꼬장한 시아비가 무던한듯 건네는 위로처럼 보인다. 

효원은 여전히 청암부인의 사당에 정성스레 정화수를 올리고, 살림을 챙기며 단단하게 살아나간다. 속이 허물어져도 꿋꿋한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 멋지지만 나였다면...? 정말 그렇게까지는 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남편은 즈이 사촌이랑 바람이 나질 않나, 횡령까지 해 첩질을 하질 않나, 상을 당해도 집에는 오지도 않고 밖으로 떠돌고, 종갓집 어른들 층층히 모시며 살림 챙기고, 혼자 애 키우면서도 내색 한번 못하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강실의 처지도 끈 떨어진 연이나 마찬가지. 오지않는 강모의 발걸음이라도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일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처량하고 답답하다. 

남원골에서는 정월 대보름 명절맞이가 한창이다. 짐승같은 춘복이가 달이 강실인것마냥 "달 봤다"하며 정신없이 흡월하는 장면, 불타오르는 달집을 보며 소문이 불 번지듯 번져 원뜸을 뒤집어 태우기를 바라는 옹구네의 모습, 연을 날리는 사람들과 넋 나가 껍데기만 있는 강실이를 제웅에 비유한 장면이 참 인상 깊었다.

 

한 생애를 두고 그 무슨 못 견딜 일 당하여서, 순결한 눈밭처럼 희고 깨끗한 백지의 인생을, 무참하게 달려들어 반으로 꺾은 허리, 다시 한 번 접어서 또 반으로 꺾은 종이, 이제는 도려내어 구멍 뚫는데. 죄도 없이 운명에게 폭행당하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폐장이 다 썩어내려 텅 비어버린 가슴, 혹은 삶의 고비 막다른 곳에서 피할 길 없는 비수를 들이댄 누구인가에게 난자당한 가슴, 그 비수같이 꽂힌 어느 이름이, 밤마다 흘리는 눈물에 녹아서 이제는 흔적마저 희미한데, 그 이름에 함께 녹아 썩은 물이 되어버린 애.
그 애 녹은 자리의 쓰라린 공동. 이 상실과 상처와 상심이 버린 가슴은 오히려, 해 같고 달 같은 꼭지로 물들어서, 한숨과 눈물의 풀로 한 생애의 이마에 곱게 붙여질 것인가.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비어버린 것의 힘으로 가벼이 되며, 또 그 비어버린 것의 힘으로 강하게 되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인가.
옴시레기 도려내어 가시만 남은 가슴이 없었더라면, 무엇으로 저 연의 오채 찬란한 꼭지를 장식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모양 없고 무미 건조한 종잇장 하나, 그저 날고 싶은 욕망으로 떠다니고 있을 뿐이리라.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그 허새비 인형이 실제 강실이고 보고 섰는 강실이가 오히려 허옇게 껍데기만 남아 사람 시늉하고 있는 허새비인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이름을 가슴에 품은 지푸라기 허새비 제웅이 자신의 액을 안고, 연에 매달리어 홀로 아득한 허공을 흘러흘러 가듯이, 그네는 독하고 서러운 이름 하나를 가슴에 에이게 꽂은 채로, 허새비처럼, 이미 무게도 부피도 없이 자욱하게 한숨을 타고 떠오르고 있었다.
강실이는 달빛 속에 서서, 멀어지는 연꼬리의 제웅이, 그 엄지손톱만하던 창호지 낯바닥에 그린 고리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 흰 소름이 등을 훑어내리는 한기에 몸을 후르르 떨었다.

  

연이 그렇듯 삶 또한 꽉 채우고 하나도 놓지 않으려 하면 오히려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물과 고통으로 가운데를 뻥 뚫어 상처가 썩고 녹아서 드디어는 그 안으로 바람이 오가도 아무렇지 않게 되기까지 비어진 자리가 있어야만 인생이 더 훨훨 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핏줄로 타고나 죽을 때까지 바꿀 수 없고 심지어는 자식에게까지 똑같은 처지를 물려줘야 하는 고리배미 거멍굴 사람들의 한은 청암부인의 무덤을 헤집는 백단이와 만동이의 떨리는 손에서 드러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설움을 새끼들은 안 당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춘복이를 움직이고, 또 당골네를 움직였던 것이겠지.

 

그는 살아 생전 자신의 천한 육신 서러운 머리를 아늑하게 기대어 의지 삼을 무릎이 없었으니, 죽어서 혼백이라도 그렇게 포한을 풀 수 있는 명당의 무릎에 몸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 자신이 아들 만동이와 그 아들 귀남이의 무릎이 되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벌족한 가문의, 솟을대문 기둥 같은 무릎 아래 한세상을 살아가는 양반의 무덤 속, 그 좌청룡 우백호의 산수 무릎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다시 태어나려고.
다시 태어나 쉬흔둥이 만동이와 손자 귀남이와 그의 아들, 그리고 또 그의 아들이 받고 태어날 운명 속으로 은밀히 스며드려고.
그 심중을 알 것만 같은 만동이는, 제 이야기를 듣다 말고 잠이 든 귀남이의 이마와 눈썹과 뺨이며 귓밥, 콧망울 들을 가만히 어루어 쓰다듬어 보았다. 마치 아비 홍술의 잡초 우거진 봉분의 풀들을 하염없이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듯이.

 

사람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양반집의 장손으로 태어나 귀한 몸으로 온갖 대우를 받은 강모는 정작 그 지리멸렬한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게 참 아이러니다. 효원 또한 그 집 아래에서 고통받고. 생각해보면 이씨 가문에서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기채, 이기표, 율촌댁, 강모, 효원, 심지어 청암부인과 그의 시아버지, 부인들 마저도.

 

대나무는 꽃이 피면 죽는다고 하였다.
대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변고였다.
이 세상의 모든 씨앗과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자 수액을 빨아올리고 햇빛을 빨아들여, 온 생명을 다 한 정점에서 꽃으로 휘황하게 터지건만, 대나무는 꽃이피면 안된다. 죽는다. 황록색 대나무꽃 피게 되면, 그 대나무는 영락없이 누렇게 죽고 만다.
그 피어서는 안되는 대나무꽃은 어쩌면 강모였는지도 모른다.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지. 껍데기만 살었다고 목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살어 있으면서도 죽은 것은 제가 저를 속이는 것이야. 살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죽어버린 것이 세상에는 또한 부지기수니라. 어쩌든지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서 목숨을 죽이지 말고 불씨같이 잘 보존허고 있노라면, 그것은 저절로 창성허느니"
목숨이 혼이다.
혼이 있어야 목숨이야.
"어쩌든지 마음을 지켜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곧 목숨이니라."

그네의 눈에는 모두가 떳떳해 보였다. 그것이 비록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이요, 설움일망정 드러내어 울 수 있을 때, 그 눈물은 양명하다.
그러나 강실이는 달랐다.
가시 박힌 가슴을 오그리고 엎드린 영연 앞에서 그네와 맞부딪친 효원의 눈빛은 얼음장 같았다.

이 앞으로 내가 세상을 살아갈 때 오직 나를 지탱하고 의지해야 할 곳은 나의 속, 나의 가슴, 나의 머리, 나의 중심뿐일 것이어늘, 지금 다 써 버리고, 지금 다 내주어 썩여 버린다면 내 어찌 살아가리.
남의 것 맡아 할 일은 그만두고 오직 내 한 몸 유지하여 살아가려도 그 유지할만큼은 남겨두어야 하리니.
내 가슴이 내 양식이라.
내 마음이 나의 시량인즉.
뼛속에 끼치는 추위로 이 세상이 고적하여 그 어디에도 몸 비비어 온기를 얻을 곳 없다 하여도, 내 심중이 든든하다면 스스로 땔나무를 구하러 헤매지 않을 것이요, 어느 한 사람 나한테 마음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 하여도, 내 속에 내 먹을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비루하고 누추하고 남의 문전에서 동정을 얻으려고 서성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강실이에게는 청암부인의 상을 치르러 큰집에 가는 것조차 고되다.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리라. 나는 처음에 강모가 강실이를 혼자 좋아하고 지멋대로 겁탈한 건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강실이도 강모를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것은 그냥 사랑이라고 착각한 한탄이 아니었는지 헷갈린다.

 

와중에 춘복이가 강실이를 범해 강실이는 아이를 갖게 되고(이 부분도 헷갈림. 춘복이는 강실이를 안고 울었다, 언 몸을 녹이려 주물렀다고 쓰여있기만 해서), 쓰러져 진맥을 받다가 온 집안 식구들에게 들킬 위기에서 효원은 강실을 빼낸다. 

그리고 안개 같은 저들에게 지지 않으리라고 결심한다. '그리고 나를 들어올리겠으니'라고 되새기며.

 

장막 한 겹에 불과한 이 운무에 생애를 걸지 마라.
내 힘으로 찢을 수 없는 것이라면, 놓아 버리라.
그 안개의 구덩이에 나를 던져 무익하게 익몰하는 어리석음 대신에 나는 내 마음을 끌어올려, 벗어나리라.

 

왜 그렇게 여성에게만 가혹하고 엄격했는지 그것도 참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처녀인데 애를 뱄다고 죽도록 몰매를 맞고 망신을 당하고 쫓겨나고, 남편이 첩을 들여도 질투하면 안되고, 아녀자 단속시키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싶다. 강실이도 어찌보면 피해자인데 손가락질 당하고, 몸을 버린 것처럼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죽고자 하는 것도 안타깝다.

효원의 꿋꿋한 모습에 감탄하지만 그 또한 정말 속이 말이 아니겠다 싶고. 온몸을 붙잡고 휘감는 구렁텅이 속에 흔들려 침몰하지 않고 자신을 끌어올리겠다, 흔들리지 않겠다며 살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

한마디로 청암부인이 말했던 그 마음, 혼이 빛나는 사람이다.

 

누구나 위기를 겪는다. 그럼에도 지지않고 목숨을 버리지 말고 살아가자, 그러다보면 그렇게 견디고 버텨냈던 혼이 우리를 또 살게하고 높은 곳으로 날게 할 것이라고 작가는 여러 인물의 입과 생애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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