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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부. 흔들리는 바람

by 곰곰곰곰 2022. 1. 27.

★ 나의 한줄평: 어쩔끄나, 이 일을 어쩔끄나 

 

혼불의 서문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대숲에서는 제법 바람 소리까지 일었다.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 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굳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었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책을 펴자 나는 효원과 강모의 혼례날 아침으로 초대된다. 기름진 음식냄새와 두런거리는 말소리, 수선한 댓잎 소리들이 가득하고 어쩐지 긴장되면서도 묘하게 설레는 그곳으로. 

대실의 대숲 소리를 아름답게 묘사한 첫 부분이 참 인상깊었다. 작가가 정말 섬세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억울하고 치욕스러운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효원의 성정과 대실, 아지랑이처럼 형태없이 부유하는 강모의 성정과 매안이라는 장소의 연결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혼불의 매력은 이야기를 읽어내려갈수록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이해된다는 점 아닐까.

효원의 한스럽고 꼿꼿한 마음, 강모의 방랑하는 마음, 청암부인의 애절하고 강직한 마음, 강태의 야심가득한 마음, 이기태의 불안하고 못마땅한 마음, 율촌댁의 짓눌리고 유세스러운 마음, 오류골댁의 걱정스럽고 애타는 마음, 거멍굴 사람들(평순네, 옹구네, 공배네, 인월댁, 춘복 등)의 배부르고 등따숩게 새끼들 먹이고 몸뚱이 건사하고자 하는 마음.

완벽한 악도 완벽한 선도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닮았고 우리를 닮아서 그 마음들이 야속하고 답답하다가도 일견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나는 작가의 서술을 따라가며 여기에도 들어갔다가 저기에도 들어갔다 하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부딪히며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물들은 얼마나 힘들고 고될까 싶다.

 

시대는 일제강점기. 한일합방이 시작되며 조선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이다. 인물과 사건 만으로도 모자라 시대적 환경까지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면서 갈등은 깊어진다.

 

삶은 투쟁일까. 생존일까. 도리일까. 열정일까. 인내일까. 애정일까.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의 짧고 긴 터널을 통과해 삶을 일궈나가는 인물을 보며 나 또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대관절 나에게 삶은 무엇인가.

 

청암부인
"한 섬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자기 가솔을 굶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열 섬지기 짓는 사람은 이웃에 배 곯는 자 있으면 거두어 먹여야 하느니라. 백 섬지기 짓는 사람은 고을을 염려하고, 그보다 다른 또 어떤 몫이 있겠지. 우리 집은 집이라도 그냥 집이 아니라 종가다. 장자로 내려온 핏줄만 가지고 종가라고 한다면, 그게 무에 그리 대단하겠느냐? 그 핏줄이 지닌 책임이 있는 게야. 어른 노릇처럼 어려운 게 어디 있겠느냐. 제대로 할라치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어른 노릇이니라."
"사람들은 나라가 망했다, 망했다 하지만, 내가 망하지 않는 한 결코 나라는 망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비유하자면 나라와 백성의 관계는 콩꼬투리와 콩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콩껍질이 말라서 비틀어져 시든다 해도, 그 속에 콩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콩은 잠시 어둠 속에 떨어져 새 숨을 기르다가, 다시 싹터 무수한 열매를 조롱조롱 콩밭 가득 맺게 하나니."

효원 "마음인들 그러지 않으리. 손에 만져지고 눈에 뵈는 것이 아니니 어디 표가 나지야 않겠지만, 어느 한 곳에다 노심초사 마음을 기울이면, 그 몸이 어찌 성할 수 있겠느냐? 과중하게 기울어진 마음은 애, 증 간에 몸을 망치고 말 것이야." 그 마지막 말은 효원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기표 "화살이 어떻게 바위를 뚫을 수 있는가요? 설령 바위를 뚫었다 한들, 뭉개져 버린 그 화살촉을 무엇에다 씁니까? 곧이 곧대로 일편단심은 지켰을망정 본질을 망치고서야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태산 같은 바위가 앞에 있으면 돌아서 가야 합니다. 그것은 변절이 아니라 뒷날을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한평생이란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어. 기회와 수단, 이것이 서로 잘 맞어 주면 뜻을 한 번 이루어 볼 만도 하지."

기응 "분복대로 살지요."  

 

뼈가 삭아져라 살이 닳아라 온종일 밭 일구고 녹아나게 일을 해도 손에 쥐는 것이 없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세상의 아픔도 그러하다. 못 가진 자는 새끼가 얼어죽고 배곯아죽고 평생 귀하게 키운 황소를 뺏기고 집안 숟가락까지 공출해가는 세상에 한이 없을 수 없다. 

 

종가의 여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놈의 종손이 무엇이고, 장자며 아들이 무엇이길래. 평생 자아 없이 집안일하고 어른들 모시고 남편 뒷바라지, 자식들 키우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효원이 그토록 보고싶었던 아버지를 보고도 반가워하지 못하는 것이나 친정에서 온 편지를 보고 몰래 눈물짓는 장면이 안타까웠다. 청암부인과 인월댁의 대화에서는 남편을 잃으면 따라 죽는 것이 미덕이고 살아도 살지 않는 것처럼 숨죽여야 했던 여인들의 구슬픔이 배어난다. 강수의 망혼제 날, 강모에게 욕을 당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강실이와 따라다니는 소문과 구박으로 결국 정신을 놓아버린 진예까지...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남자의 부속품 쯤으로 존재했던 사회에서 곱절의 고통을 겪었을 분들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다스리면 성현 군자도 되고 재세 영웅도 되지만, 자칫 고삐를 놓친다면 사나운 말 한가지라. 내 속에서 우러나온 마음이 결국은 나를 발길질하고 짓밟게 되지. 미처 피하지 못하면 그대로 밟혀 죽는 게야.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은 허수로이 알기 쉽지만, 사실은 눈에 뵈는 것의 주인은 눈에 안 보이는 데 있거든...... 심정이야 어디 손에 잡히는가? 허나, 이 심정이 상하면 밥을 먹어도 체하고, 심정이 슬프면 마른 눈에도 눈물이 고여 흐르는 이치를 생각해보게. 형체 없는 마음이 능히 목숨조차도 삼키는 것이 놀랍고 두려울 뿐이네." 
"사람들의 마음이란 헤아리기 어렵네. 여기 모여서들 분분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겉으로 보면 인간의 도리와 행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한번 뒤집어 보면 묘한 구석이 숨겨져 있거든. 무주고혼 거리 중천에 떠도는 그 어린 것이 가련하기 짝이 없건만, 이승에 남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이리저리 헤집고 되엎으며 남모르게 재미도 있어 한단 말일세. 내 말이 너무나 야속한가? 이미 세상이 싫어서 떠나 버린 혼백의 일을,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공론하면서 뒷자리를 시끄럽게 어지럽히는 것도 망자한테 미안하고, 덕있는 일은 못 되는 것, 그만들 이야기하세."
그러면서 청암부인은 눈을 내리감아 버렸다.
목숨. 
세상에서 이보다 값진 것이 어디 있으랴. 목숨이 있으므로 만물이 비롯되고, 목숨이 지면서 만물 도한 따라서 지고 만다. 

효원은, 자신이 시집도 오기 전에 세상을 버린 한 총각의 혼백을 두고 혀를 찼다.
(애초에 세상살이 견디기 쉬운 것이었다면, 부처님은 무엇 하러 왕궁을 버리고 얼음 골짜기에서 뼈를 깎었으리. 오죽하면 인생은 고해라 하지 않던가. 사람마다 남 보기는 호강스러워도 저 혼자 않어 있을 때의 근심 고초란 짐작도 못하는 법. 어떻게든지 그것을 이겨내고 버티면서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그저 타고난 본능만은 아니지. 그것은 일이다. 일이고말고. 살아도 그만 안 살아도 그만일 수는 없지. 뜻한 것이 이루어지고 재미있고 좋아서만 사는 것이랴. 고비고비 이렇게 산 넘고 물 건너며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자살한 강수를 두고 하는 청암부인과 효원의 생각도 마음에 남는다.

청암부인은 시집올 적 신랑을 떠나보내고 평생 혼자 종가를 일구며 살았으나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해 세상을 버린 강수의 처지를 이해한다. 효원은 심성이 좀 더 강직한 사람 같다. 자신을 다잡기 위해선지 몰라도 고통을 견디며 살아나가야 한다고 다짐하는 걸 보면. 종가를 답답하게 여기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보며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공금을 횡령하고, 오유끼라는 불쌍한 여자를 첩으로 삼아 또 애꿎은 죄를 만드는 강모의 심정은 이러하다.

 

나는 왜 살고 있는가. 누군가는 한 사람이 능히 열 가지 일을 하건만, 나는 한 가지도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바는, 백 가지 천 가지가 넘는다. 이 무슨 고달픈 운명인가. 

강모가 때린 것은 오유끼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실의 혼행에서 맞닥뜨린 태산 같은 효원의 그림자였다. 집어삼킬 듯 우뚝하던 효원의 어깨였다. 어찌 보면 그것은 강실이이기도 했다. 무너지며 괭괭거리는 징소리가 귀에 울려, 그 소리를 몰아내려고 길길이 뛰어오를 때, 텃밭에 낭자하던 꽃대 부러지는 소리와 강실이의 등뼈가 내려앉던 소리. 그런가 하면 강실이가 아니라 청암부인이기도 했다. 서리 맺힌 눈매를 서늘하게 뜨고 있는 할머니의 허이연 머릿결이 가슴에 얹힌다. 암키와 수키와가 서로 이를 맞물고 그물코같이 단단하게 얽혀 단번에 덮어 씌울 듯 거대한 날개를 펼치던 지붕. 

 

강모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화가 난다. 편하게 살고 싶은데 사람들이 자꾸만 자신에게 바라고, 요청하고, 묻고, 사정을 이야기하며 매달리는 게 짜증스러울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절절매는 사람들이 자기 발 아래 있는 것 같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자신이 한심스럽고, 삶이 지겹고 재미없어 어디로든 훌쩍 떠나 벗어나버리고픈 마음.

그러고 공금 횡령해서 기생을 첩실로 들인 강모를 애타게 찾는 할머니 청암부인. 아픈 와중에도 그녀가 손자에게 쥐어준 것은 꼬깃하게 고이 접어둔 삼백원... 거기서 눈물이 날 뻔했다. 속이 미어졌다. 청암부인을 향한 안쓰러움과 슬픔, 애잔함과 그의 사랑이 주는 감동, 강모의 입장에 공감가면서도 못된 놈이라고 욕하고픈 마음 때문에.

강실이는 소문을 걱정하며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자신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효원은 겁간당해 아들을 낳고 매일 구박 당하며 욕 보고, 청암부인과 율촌댁은 자나깨나 아들손자 걱정... 그런데 강모 이자식은 제 처지를 한탄하며 갈팡질팡 방황할 생각하고 있고... 이런 인물들 때문에 이야기는 굽이굽이 꼬여간다. 대하소설의 맛이 이런 것일까...? 나는 발을 들여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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