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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by 곰곰곰곰 2021. 12. 6.

★ 나의 한줄평: 나는 풍경처럼 네 안에 있어

 

이 책은 EBS 라디오를 듣고 관심이 생겨 찾아본 윤성희 작가의 책이다. 작가님이 책 설명을 재밌게 해서 어쩐지 끌렸다.

그런데 뭔가 의외였다. 심윤경의 소설을 읽고 읽어서 그런지, 정말 맹숭맹숭한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클라이막스도 없고 결말도 없는 직선 같은 이야기였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한번 먹어선 맛을 모르는 평양냉면 같을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 단편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주인공들은 우리 주변의 사람이다.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대단한 재능이나 부를 소유한 것도 아니다. 그냥저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은 각자 저마다의 아픔을 겪는다. 교통사고를 겪기도 하고, 일하던 곳을 그만두기도 하고, 가족이 죽거나 감옥에 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읽으며 나를 보기도 하고, 가족을 보기도 하고, 주변의 이웃들을 보기도 했다.

그들의 일기를 훔쳐 읽고, 속마음을 함께 듣는 기분이다. 조금은 쓸쓸하고 어쩐지 외롭고, 그러다 가끔은 옅게 행복이 스며드는 글이다.

 

누구에게나 있고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이 작가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쓰는 재주가 있다.

첫번째 단편 '여름방학'은 아무에게도 축하받지 못한 은퇴를 하고 이름을 바꾸는 여자 이야기다.

만약 누군가 왜 이름을 바꾸냐고 물어본다면 오빠들과 돌림자를 쓰는 게 평생 짐이었다고 대답하리라.

그의 어머니는 내게 살인자의 동생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내게 자살한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막내며느리는 발랄하고 구김 없는 사람으로 얻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그의 집을 나오면서 기도했다. 그가 나를 따라 나오길. 따라 나와 내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그날, 나는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열 개의 이름후보 중 바꿀만한 이름을 고른다. 여름방학을 떠올리며 계획을 짜려고 해본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물총놀이를 한 그녀는 물에 젖은 옷을 창피해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주인공은 평생 짐을 지고 살아왔다. 가족들이 그녀의 짐이었다. 은퇴는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주어진 굴레를 벗어던지고 스스로 이름을 찾아 새롭게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 세상 앞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설 기회.

 

여섯 번의 깁스에는 치매에 걸린 엄마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감이 많이 갔다.

처음에는 사소한 정보를 잘 기억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너무 익숙했다.

 

"엄마,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왜 구두 선물을 받았어?"
내가 묻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예뻐서." 어머니가 허공을 보고는 다시 한번 말했다. "예뻐서." 예뻐서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이 예뻤다.
간병인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오후가 되면 심술 궂은 할머니가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어머니가 잠에서 깨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뜻한 신발을 신고 동화 속 주인공을 상상하던 나는 뭐가 되었을까?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적절한 단어를 떠올려보았다.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음, 나는, 그냥 어른이 되었지." 나는 그렇게 말해보았다. 그리고 차에서 펜을 꺼내와 '내 자리'라고 쓰인 낙서 옆에 새 낙서를 했다. '그래, 니 자리.' 그러고 나자 그냥 어른이 된 나 자신이 그다지 실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네 번의 절교와 한 번의 파혼을 당했다. 네 번의 절교와 한 번의 왕따를 당한 뒤 선물처럼 찾아온 단짝 친구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다. 두 번이나 이직을 했고, 스트레스로 탈모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섯번째로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애를 써서 나는 그냥 어른이 되었다.

 

이야기를 끝까지 다시 읽고 보니 모두 이렇게 애를 써서 그냥 어른이 되는 건가 싶다.

뭐가 더 되려고 하지도 않고, 대단하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금가고 깨진 자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붙고 나아 우리는 한살 한살을 더 먹는다. 그렇게 애를 써서 어른이 됐으니 나쁠 것 없다. 어른이 된 것만으로도 참 잘한 일이다. 이만하면 참 괜찮다.

 

작가는 계속해서 평범하고 단조롭고 때로눈 위태롭고 어설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말해준다.

마음에 구멍이 뚫리는 날, 나와 같은 결의 이야기들이 솜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아 상처를 덮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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