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깨어져 열린 마음으로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산만하다.
교실 안에서 자꾸만 싸움이 벌어지고, 날선 비난과 폭력이 반복되고, 짜증이 치솟는 날이면 마음은 절망적이다.
때로는 내 존재가 지나다니다 발에 채이는 동네 개가 아니었나 의심하게 될만큼 말이다.
혼자면 외롭고, 함께면 괴롭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함께 있는 게 괴로워지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미워하거나 도망치거나 열리거나 의심하거나...
갈등이 계속 되고, 신뢰가 낮아지면 이런 일이 생긴다.
'에휴, 나나 챙겨야지.'
시민권의 거창한 형식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대신, 우리는 사적 영역으로 숨어들어 오로지 자신의 개인 생활을 개선하는 데 집중합니다.
노력을 포기하고 그저 각자의 삶을 유지하는 것에 온통 몰두한다. '함께 해결한다'는 믿음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각자도생만이 목표가 되기 쉽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와 공동체생활로 괴로울 때 부서져 열린 마음을 갖고 나아가자고 주장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영광스러운 작품뿐만 아니라 충돌과 상처를 동반할 수밖에 없으므로, 괴롭지만 그 모든 것을 안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the brokenhearted의 정치"다.
다른 사람들의 온전함을 짓밟을 때 폭력은 자행된다. 따라서 정치에서 상대방을 악마화하거나,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정치적으로 편리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이를 회피하는 다양한 전략을 개발해왔다. 같은 부류끼리만 어울리기, 낯선 자를 내쫓거나 주변화하거나 악마화하거나 검증된 방법으로 제거하기 등이 그것인데, 이는 두려움을 심화시킬 뿐이다.
존중, 인내, 개방성, 희망을 갖고 차이를 끌어안을 때에만 다양성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깊은 차원으로 내려가면 기술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 대신 자신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양함, 긴장, 갈등의 경험에서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자아와 세계에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그때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의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는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그것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안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파커 파머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핵심이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충동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동력 또한 마음이다.
왜 그러한가? 마음에는 긴장과 모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그것을 파괴하고픈 욕구와 역설을 끌어안아 화합하려는 힘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위기를 수용하고 그것을 안고 성찰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과 같은 인식이 필요하다.
1.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시민권은 내가 세계 속에 존재하는 방식이며, 나는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는 광대한 커뮤니티의 일원이다.
2. 차이는 우리를 부술 수 없다.
공공선은 우리 안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공동체를 해체하지 않도록 끌어안는 것이다. 비판과 의견충돌, 상처는 민주주의의 밑걸음이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자질이 필요하다.
1. 뻔뻔스러움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할 권리가 있다.
2. 겸손함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내 의견을 분명하고 자신 있게 발언하는 것만큼 특별히 타인에게 열린 마음과 존중하는 태도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 속으로 "경계를 넘어 들어가야" 한다.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충동은-그리고 그것을 위협하는 충동은-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은 무심한 자기 이익 추구와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뒤섞인 복합체다.
우리는 공적 혹은 사적 생활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무장한다." 감정, 자아, 가치, 궁극적인 믿음 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직면할 때, 우리는 자신의 방어를 깨부술지 모르는 것에 대항해 자신을 차단해버린다. 우리 자신을 갈등을 향해 열어놓으면 자신과 세계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새로운 삶이 가능해진다.
정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핵심 요소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동안이라도 한 걸음 나서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작고 비영웅적인 행동들이 불쏘시개로 쌓여나가다가 어떤 놀라운 상황에서 격렬한 변화로 점화될 수 있다.
살다보면 매일이 투쟁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 멍청한 보호자들, 이기적인 동료들, 오만한 관리자들, 그 속에서 나의 가치는 작아지고 존재는 절망의 파도에 휩쓸린다.
옆 반 선생님이 아이들로부터 교권침해를 당했다. 린치당했다고 보는 게 맞다.
몇 명을 단도리하기 위해 전체에게 화를 내고, 지쳐 예민해지면 수업은 엉망이 되고, 관계가 망가진다. 그리고 애들은 모여서 선생님을 비웃고 욕하고 산만하게 구는 방식으로 대항했다.
저번주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동료가 그런 일을 겪고 있을 때 무엇을 했나 싶고, 힘들었을 선생님의 입장이 상상됐다. 우리반도 비슷했다. 지적을 계속 하다보면 지적할 거리만 눈에 들어온다. 심신이 지치니 일상은 쉽게 균형을 잃는다. 그러면 또 사건이 터지고, 마음이 엉망이 되고, 애들을 가혹하게 대하게 되고 그러는 쳇바퀴.
그러면 삶이 비통해진다. 마음이 부서져버린다.
그럼에도 도망치거나 회피하거나 전쟁을 하지 않고 먼저 자기 안으로 들어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게 우리 안의 선한 천사를 깨우는 시작이라고.
해결을 위한 충분한 동의를 확보하지 못해 커다란 문제들이 풀리지 않은 채로 계속 흘러갈 때, 또한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다시 불거질 때, 그 시스템은 우리를 짜증나게 하고 미치게 하며 지치게 하고 무섭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가장 중대한 교훈 중 하나로서 위기에 처할 때마다 상기해야 한다. 즉 긴장은 삶의 징표이고 긴장의 종식은 죽음의 징표라는 것이다. "최종적 해결"은 독일인들이 우리가 홀로코스트라고 알고 있는 죽음의 통치에 붙인 이름이다. ... 만일 당신이 원하는 것이 긴장의 종식이라면 파시즘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에 최종적 해결책을 결정하는 날은 많은 존재가 죽기 시작하는 날이라는 것을 이해하라.
민주주의 제도는 제대로 작동한다면 "두드러진 질문들"의 긴장을 끌어안고 다음, 그다음, 그다음의 해법을 향해 스스로를 열어놓도록 강권한다. 물론 그다음 해법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더 나쁜 것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끝없이 새로운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의 약속은 살아 움직인다.
우리는 싸우거나 도주하려는 본능에서 벗어나 언어를 통해, 예술을 통해, 종교와 교육을 통해 문명화될 수 있다.
물론 문명화가 늘 더 나은 결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최고의 해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냥 최고의 해법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길을 닦아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들과 마주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상처를 감수하고, 이런 저런 방법을 쓰며 자신을 믿고 타인을 믿어야 한다.
아이들은 편지에서 내가 자신들을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했다. 그것 하나는 올 한 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을 사랑하는 게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혼불 1부. 흔들리는 바람 (0) | 2022.01.27 |
|---|---|
|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0) | 2021.12.26 |
| 날마다 만우절 (0) | 2021.12.06 |
| 나의 비거니즘 만화 (0) | 2021.11.26 |
| 달러구트 꿈 백화점 (0) | 2021.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