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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종말2

by 곰곰곰곰 2021. 8. 22.

개인은 장소와 시간을 거치며 진화하는 고차원 시스템이다. 책의 2부, 개개인성의 원칙을 여는 이 말이 무겁게 마음을 파고 든다. 1부에서 평균의 함정에서 기어나와 땅 위에 선 우리에게는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다. 아니, 그래, 평균이 잘못됐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럼 뭘 보고 사람을 판단해?

 

저자는 천천히, 끈질기게 개개인성의 원칙을 설명한다.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맹탕인 학생을 앉혀놓고 천천히 설명해주는 노교수가 떠올랐다.

 

"자, 개개인은 원칙은 다음과 같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네. 첫 번째는 들쭉날쭉의 원칙, 다음은 맥락의 원칙, 마지막으로 살펴볼 건 경로의 원칙이지. 들쭉날쭉이란 건 말 그대로 인간의 성질이 일관적이지 않고 어떤 능력들 사이에 상호연관성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이네. 수영을 잘하면 수학도 잘하고, 사회성도 좋고, 아이디어도 잘 낼거라고 판단하는 건 굉장한 오류라는 거지."

 

우리 인간의 머리는 천성적 경향에 따라 체격, 지능, 성격, 재능 등 인간의 복잡한 특성을 일차원적 단위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체격에 대해 평가해보라고 하면 본능적으로 한 개개인을 체격이 큰지, 작은지, 아니면 보통인지로 따진다. 어떤 남자가 체격이 크다는 얘기를 들으면 팔과 다리가 굵직하고 덩치 큰 사람을 떠올린다. 몸 전체가 다 크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떤 여자가 똑똑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여러 방면에서 두루두루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데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들쭉날쭉하다는 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다음의 2가지 기준에 부합돼야 한다. 첫 번째, 반드시 다차원으로 이뤄져 있을 것, 두 번째, 반드시 이 여러 차원들 사이에 관련성이 낮을 것. 들쭉날쭉성은 단지 인간의 체격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재능, 지능, 성격, 창의성 등등 우리가 관심을 갖는 인간의 거의 모든 특성이 들쭉날쭉하다. 인간의 중요한 특성은 거의 모두가 다차원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재능이 특히 더 그렇다.

우리가 간과된 재능을 알아본 것이라 해도 그 재능은 특이하거나 숨겨져 있던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재능이라고. 그동안 쭉 있어왔고, 들쭉날쭉한 특성을 가진 인간에게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재능이라고. 따라서 진짜 난제는 재능을 구별할 새로운 방법 찾기가 아니라, 알아보지 못하게 시야를 방해하는 일차원적 눈가리개를 제거하는 일이다.

 

골턴의 등급 개념의 열렬한 싱봉자였던 커텔은 지능검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는데, 컬럼비아대 대학생 수백 명을 대상으로 지능 검사를 했으나 여러 능력 사이에 상호 연관성이 전혀 없었다. 학부 성적과 지능검사 성적도 마찬가지였다. 손다이크가 학교 성적, 표준화 시험 성적, 직업생활의 성적을 검사해 상호연관성을 살폈으나 그 역시도 마찬가지로 연관성이 약했다. 인간은 일차원적 값, IQ 점수나 평균 학점으로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상황맥락과 관련되어 있지. 자네는 어떤 성격인가? 이기적이고 까칠한가? 인내심이 많고 섬세한가? 외향적인가, 아니면 내향적인가? 사실인간은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이고, 까칠하면서도 마음이 넓고, 외향적이면서 동시에 내향적일 수 있네. 모든 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발휘하는 일관적인 행동양식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실 쇼다는 우리 인간의 정체성에는 어느 정도의 일관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다만, 그것이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그런 일관성이 아닌 특정 맥락 내에서의 일관성일 뿐이다. 쇼다의 연구는 개개인성의 두 번째 원칙인 맥락의 원책을 구체적으로 밝혀준 것이었다. 맥락의 원칙에 따르면 개개인의 행동은 특정 상황과 따로 떼어서는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으며 어떤 상황의 영향은 그 상황에 대한 개개인의 체험과 따로 떼어서는 규명될 수 없다. 다시 말해 행동은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독자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표출된다.

당연하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우리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영속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뿌리 깊이 박힌 확신을 떨쳐내기 힘들어할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를 신경과민이라거나 공격적이라거나 쌀쌀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마다 그것이 하나의 특정한 맥락에서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따지는 대신 맥락의 관점에 따라 '저런 맥락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또한 자신이 판단할 때 좋지 않게 생각되는 행동을 보면 잠시 반응을 보류하며 먼저 그 사람의 행동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를 찾아볼 수도 있다. 키드는 무지각하거나 분별없게 여겨지는 행동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게 될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며 그 행동이 지각있고 분별 있게 느껴질만한 상황들을 상상해보려 애쓴다. 그러면 대체로 상대편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맥락을 그 상대편에게 투영하려고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1920년 대 심리학자이자 사제였던 하트숀의 유명한 연구 결과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납득됐다. '왜 집에서는 안 그러면서 학교에서는 소리를 지를까? 어른들한테는 예의 바른데 친구들하고는 왜 저렇게 싸워댈까? 발표도 잘하고 이야기도 잘하는데 독서장에는 왜 거짓말로 쪽수를 적었을까?' 사람의 특성이 일관적이고 본질적이라면 절대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교실 곳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건 환경이 나쁘거나 아이가 타고나길 그런 성격으로 태어나서가 아니었다. 하트숀은 연구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덕적 행동이 외부 상황에 따라 크게 특정되고 좌우된다는 학설에 대해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유례가 없을 정도의 당혹감을 보이고 있다. 조니가 집에서는 성실한 아이인데 아이 어머니에게 그런 조니가 학교 시험에서 커닝을 한다고 얘기하면 그 어머니는 믿지 않으려 들 것이다. 성실성, 자비심, 협동심, 억제력, 끈기는 일반적 특성이라기보다는 특별한 습성이다." 셀레스트 키드가 변형해 수행한 마시멜로 실험에서 아이들이 보여주었듯, 신뢰할 만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자제력을 발휘하고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다리지 않고 마시멜로를 먹어버린다.

 

모두가 자신은 복잡하게 착한 사람으로,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으로 판단하기 쉽다. 왜냐면 우리의 뇌는 맥락에 민감하며 환경에 알아서 적응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타인과는 대부분 고정된 맥락에서만 교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타인을 제한된 정보로만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스타트 연수에서 강의해주신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활동가의 말이 떠올랐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물어보세요. 장애인에 대해 이해하자던가 도와주자던가 하는 말은 의미없어요. 어차피 우리는 장애인들의 입장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그 사람들은 공적으로 발화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아는 맥락에서는 소리 치거나 기어다니거나 화를 내는 게 최선의 방법일 수 있죠."

 

그러니까 상대가 무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언행을 했을 때, 그걸 상대방의 천성이나 본질로 확대하지 않고 잠시 멈춰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그 사람에게는 그게 최선이었을 수도 있고,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런 잘못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할 때, 의견이 충돌할 때, 친구나 가족, 연인 때문에 화날 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미워질 때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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