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몸과 마음과 삶에 대한 느린 기록
이 책은 우리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 비정상이라고 느끼는 몸, 문제라고 느끼는 삶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가들이 지었는데, 장애여성공감은 1998년 장애여성의 권익을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 우리가 너무 쉽고 편협하게 몸을 구분하고 있었다는 것
- 그 기준이 아주 자의적이고 불합리하다는 것
- 몸에 고통이나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상태의 몸을 개선해야 하는 골칫거리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오류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는 것
-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가 내가 잘나서 주어진 것이 아니듯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들이 권익을 박탈당하는 것이 그들이 나쁘거나 모자라서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
-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누군가의 행동이 그 자신의 맥락에서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것
- 타자를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보다 그들의 의사를 묻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듣는 게 먼저라는 것
- 그런 소통의 과정이 설사 서로에게 상처가 될지라도 끝까지 의견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것
- 우리는 모두 늙고 다치고 죽을 것이며, 혼자 힘으로 움직이며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 인생에서 아주 짧을 것이라는 것
- 그래서 굽고 떨리고 약한 이들이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남일이 아니라 곧 내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 사실 아무도 정확한 방법을 모르니까 생각말고 일단 나와야 한다는 것, 나오면 길이 생긴다는 것
평소에 길거리를 다니면서 이들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책 속에서 춤추는 공감여성들의 목소리는 나에게 더욱 큰 부끄러움과 놀라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돌봄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돌봄의 역할이 특정 누군가에게만 요구되거나 가능한 것으로 얘기되지 않는다면 돌봄을 둘러싼 나의 감정은 또 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가족이나 개인적 관계 외에도 공적인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누구든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스스로 위축시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장애가 있고 아픈 몸'은 '비정상적인 몸'이 된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무런 장애나 아픔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장애가 없고,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인간의 몸에 대해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지 않을까.
장애가 있든 없든, 아픈 몸이든 아프지 않은 몸이든,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몸이 인정되고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닐까.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몸들의 진정한 해방은 안정된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불안정한 상태가 불안감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도 살아오면서 '아프면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치면 내가 부주의한 것이고, 아프면 몸 관리를 못한 것이니 아픔을 기회로 삼아 내 몸의 신호를 명민하게 인식하고 올바르게 대처하기보다는 몸의 고통과 더불어 자책과 박탈감을 더 크게 앓은 것 같다. 특히 교사라는 직업상 몸이 안 좋아도 쉴 수가 없으니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아프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유독 몸에 상처가 많기도 했다. 돌이 지나기도 전 심장수술을 해 아직도 가슴에는 길다란 흉터가 남아있고 목욕탕에 갈 때마다 그걸 가리려고 애썼다. 내 몸이 징그럽고 이상해 보였다. 왜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흉터가 나에게만 있는지 원망스럽고 부끄럽기도 했다. 청소년기에는 덜렁대는 성격 때문에 베이고 까지고 멍든 적이 많았다. 하도 다치다보니 자잘한 상처들은 달리 신경 쓰지 않을만큼.
몸이 아팠다가 나았다가 하는 것이라면, 다치고 늙고 아픈 건 잘못된 게 아니다. 우리가 미처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롭고 어려운 환경이라면 그걸 개선하면 되고, 순간의 부주의였다면 원인을 파악하고 조심하도록 하면 된다.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면 있는 그대로도 온전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도우면 된다. 이들은 담담하게 목소리를 낸다.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제한된 선택지와 부족한 자원의 기로에서 자존심을 버리도록 강요받는 삶을 산다.
전형화는 소수자의 삶읠 차별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치료, 극복, 불행, 불편 등의 부정적 서사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로 구성된다. 많은 장애인들은 자신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물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비장애인과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산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생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 관계의 역동, 실패와 성공, 변화들을 겪어내면서 사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다. 그 보편성과 장애라는 고유성 사이에 일어나는 복합적인 삶의 모습을 설명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경순은 쉽지 않았다.
다음 세대를 살아갈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서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나의 상상 속 미래의 그들은 어떤 몸과 얼굴을 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세대를 걸쳐 삶의 방식을 이어가면서도 해당 시대의 사회 문화와 관계를 맺고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오랫동안 우리는 다음 세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해오지 않았다. 다음 세대의 한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지금 세대에 장애인이 평등한 시민을서 살아가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책에는 샤르코 마리 투스를 안고 두 딸을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경순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장애를 가진 엄마가 똑같은 장애를 가진 딸을 혼자서 키운다고? 얼핏 들어도 상상이 잘 안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같은 시민으로서 장애여성을 잘 그려내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풍경 속에는 그들이 없다.
이렇게 빈곤한 의식으로 장애인을 대하다보니 결과는 참혹하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다. 대부분 불행을 극복한 위대한 드라마 주인공이나 동정과 안타까움으로 도와줘야 할 불쌍한 엑스트라라고 여기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사회와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경순인가, 일차원적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