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우리는 모두모두 자란다
'랩 걸(Lab Girl)'이라는 제목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가 아주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무수하게 가지를 뻗는 식물들과 난관을 뚫고 뿌리를 내려 과학자로 자란 소녀와 온갖 잡동사니들, 수만 km의 이동, 수만 장의 보고서와 실험실의 건조한 공기 같은 것을 대리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어떤 직업이든 고달프지 않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살고 일하고 사랑하며 자신만의 드라마를 써내려갈 것이다. 호프 자런이라는 사람의 역사는 이런 모습이구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누군가의 세계에 초대받아 살짝 발을 담근 기분이다.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아침 8시는 어김없이 닥쳐온다. 화학 약품들을 다시 채워넣고, 월급을 정산하고, 비행기표를 사야 할 때가 다시 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목에 차오르는 고통과 자부심, 후회, 두려움, 사랑, 갈구를 내뱉지 못하고 삼키며 책상에 코를 박고 또 하나의 과학 논문을 완성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간결하고 완전한 형태로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을 본다. 그 뒤의 역사는 온전히 당사자만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진땀 빼는 순간과 알 수 없는 오류와 계획에 없던 좌절의 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 자주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모든 성취를 당연하게 여기므로. 아무도 나뭇가지에 나뭇잎이 매달려 있다고 신기해하지 않는 것처럼.
머리 위로 솟은 자작나무 한 그루당 매년 적어도 25만 개의 씨앗이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숲에 남긴 우리의 발자국 아래에는 수백 개의 씨앗이 살아서 싹 트기를 기다리고 있다.
씨앗은 온도와 습도, 토양과 대기를 가늠하며 모든 것을 쏟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이파리들은 단 하나의 목적, 당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첫 뿌리가 감수하는 위험만큼 더 두려운 것은 없다. 닻을 내려 떡잎을 한곳에 고정시키는 순간부터 그때까지 누리던 수동적인 이동생활에 영원히 종지부를 찍게 된다. 뿌리를 내리는 작업은 씨 안에 들어 있던 마지막 양분을 모두 소진시킨다. 모든 것을 건 도박이고, 거기서 실패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과학자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장 위험한 부분은 진정한 과학자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불안한 첫걸음을 떼서 오솔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진정한 과학자는 이미 정해진 실험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만의 실험을 개발하고,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낸다. 지시받은 일을 하는 단계와 스스로 무엇을 할지 정하는 단계 사이의 이행은 일반적으로 논문을 쓰는 중간 시점 정도에 일어난다. 여러 면에서 그것은 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할 의사가 없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박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사실 식물처럼 인간도 그렇다. 내가 가는 길이, 또는 내가 몸을 틀어 향하는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알았다고 자부할 수도 있고 대부분의 경우처럼 영원히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모험을 하는 건 신기하지 않은가? 어떤 힘에 이끌려 선택을 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사람들. 내면의 목소리나 의지는 철없는 환상이나 신기루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오솔길을 도로로, 도로를 고속도로로 닦아내는 것은 모든 창의적인 사람들이 거치는 용감한 도전이다. 진정한 과학자는 정해진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실험실에서 하는 실험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실험은 별짓을 해도 잘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프를 보면서 나는 한 시간 전만 해도 완전히 미지의 사실이었던 것을 이제 내가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와 함께 이제 막 내 인생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실감나기 시작했다.
이 가루가 오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는 이 우주에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작고 부족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나는 나만의 독특하고 별난 유전자들이 모여서 생긴 존재일 뿐 아니라 창조에 관해 내가 알게 된 그 작은 진실 덕분에, 그리고 내가 보고 이해한 그 진실 덕분에 실존적으로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 그것이 알 가치가 있는 지식인지 아닌지는 오늘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느꼈다.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 순간 나는 서서 그 사실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인생에는 뜻대로 안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이제는 그다지 특별한 발견도 아니지만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태연하게 넘어가기란 힘들다. 그와 같은 실패와 당황스러움, 기약없는 시도 끝에 호프자런이 처음 그녀의 과학적 발견을 하던 순간이 인상 깊다.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광대한 공간을 그려보자. 그 속에서 작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유일한 존재가 된 기분일 것이다. 아주아주 막막한 어둠을 밝히는 깨알같은 빛이 된 기분 아닐까.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어쩌면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의 입장이 되어보면 식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식물의 세계에 절대 정착할 수 없는 이방인 입장에서 나는 얼마나 그들의 내부에 접근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식물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환경 과학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 진짜 내 첫 이파리였다. 세상의 모든 대담한 씨앗들처럼 나도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거기 맞는 해결책을 찾아가며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의 입장에서 식물을 연구한다는 생각이 놀라웠다. 진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비과학적'일 위험을 감수하는.
어쩌면 나 또한 너무 '교사' 입장에 갇혀있었는지 모른다. 입으로는 학생, 학생하지만 학생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수업을 바라보고, 학교를 연구한다는 것은 매우 생경하다. '학생'의 입장,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 역시 (어른인 나로서는) 매우 비효율적이며, 비과학적이고, 피곤하며 다소 터무니 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니까.
'굳이'의 영역에 포함되는 일이 늘어갈수록 우리는 타인의 세계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진짜 용감하고 위대한 발견은 아이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 거기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우리 반 준석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승원이의 눈으로, 가윤이, 혜윤이, 가현이의 눈으로, 소정이의 눈으로... 아이들은 식물 같다. 아득하고, 생기 넘치고, 다음날 보면 어제보다 눈부시게 자라있는.
우리는 아마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그들의 눈으로 세상 사는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그네들을 사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요즘 읽고 있는 '경애의 마음'에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그와 함께 떨어져내리는 일'이라는 구절도 함께 떠오르네.
처음부터 완벽한 지도를 그리려고 애쓰는 건 새싹만으로 식물이 자랐을 때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일일 것이다. 자런은 식물에게서 얻은 힌트를 속삭인다. 용감하게, 유연하게 적응하며 나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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