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우정의 조건
이 장을 읽으며 우정이라는 특별한 개념을 고찰할 수 있어 좋았다.
학창시절부터 넓은 교우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관계를 맺어왔고, 누군가 친구가 되는 걸 어려워했기 때문에 더 공감이 됐다. 친구 만들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고. (어떤 관계가 안 그러랴만은)
친구와 연인은 정말 다르다. 둘 다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관계가 시작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연인은 이해하는 것을 친구는 이해하지 않는다. 친구는 순수한 교감으로만 나와 맺어진 사람이다. 같이 쌓은 시간과 그로 인해 얻은 공통의 기억(우리가 추억이라고 부르는)이 없다면, 또 그 과정에서 정신적, 물질적 교류와 감정의 공유가 없다면 우정은 훨씬 더 쉽게 깨진다. 서류나 법으로 묶여있지 않아서일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연인은 시간이 갈수록 친구와 비슷한 모습을 띌 것이다.
우정은 연애처럼 안전한 정박지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우정을 지탱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억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정을 순수한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다.
우정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우정이 주고받음에 의지하면서도, 그러한 주고받음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조건에 대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순수한 우정의 관념은 순수한 선물의 관념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자아 이미지는 그리고 자기에 대한 감각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주면서 동시에 동등하게 만들어주는 이런 소유물들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순수한 선물을 내밀지 못하는 처지의 사람들을 간과한다.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다루는데, 하나는 그들을 범주화해 최소한의 생존을 지원하며 관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효도나 돌봄 같은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족에게 짐을 떠넘기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 또한 피부양자가 부양자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도록 함으로써 '사람에 토대를 둔 가족'이 출현하기 힘든 구조이다. 가족 구성원들은 우정보다는 경제적 의존과 종속적 위계로 엮여있다.
과연 진정한 우정을 기초로 한 공동체는 존재하는가?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의 사적 공간을 존중하면서도 사회 안에 각자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절대적 환대를 행할 수 있다. 더 나은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과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은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김현경이 말하는 절대적 환대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2.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
3. 복수하지 않는 환대
6장. 절대적 환대
타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안에 넣은 채 그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 타자는 사회 안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우리의 몸짓과 말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되고, 도덕적 주체가 된다.
이 구절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타인을 한번이라도 절대적으로 환대한 적 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어쩌면 교실에서 가장 필요한 건 가치를 가린 환대일수도 있겠다. 무지의 베일처럼. 상대방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지를 괄호에 넣고 환대하는 것. 재고 따지는 게 많아진 지금 무조건적인 환대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절대적 환대는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이다. 환대가 사회 안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행위라면, 환대에 보답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왔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를 맞이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찰은 환대가 면책 혹은 망각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부모는 아이가 자기들로부터 나왔고, 한때 자기들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부모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 자기들이고, 그들이 아이를 죽일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환대를 받고 나서 어떤 형태로든 그것에 보답해야 한다면, 환대는 조건적일 것이다.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다 아프신 어머니께 먹였다는 류의 인신공양 효도 설화가 상징하는 것은 그 사회의 성원권이 어떤 형태로든 받을 것을 보답하는 사람에게 조건적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환대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환대이다.
그러므로 환대란 어떤 사람이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행위, 그가 사람으로서 사회 속에 현상하고 있음을 몸짓과 말로써 확인해주는 행위라고 말하기로 하자.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는 개인에게 복수하지 않는다.
다시 교실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위의 규칙은 다음과 같은 익숙한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문제행동을 지도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할 필요는 있으나 학교 안에서 아이의 존재를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도 참 쉽지 않다. 화가 나는 순간마다 끊임없이 기로에 서는 것 같다. '얘만 없었으면 평화로웠을 텐데, 걔가 안 나오니까 참 조용하다, 네가 문제다...'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추방시켜서는 안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이 인상깊다. 교실은 또한 작은 사회고 공동체기에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무겁고 아름답다.
'누군가는 우리가 한번도 그런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현재 속에 그런 사회는 언제나 이미 도래해 있다.'
모든 아이가 각자의 자리를 가지고,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교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 않고, 존재를 지우지 않는 무조건적인 환대가 있는 교실.
그런 교실을 꿈꾸고 그것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어느 새 원하던 곳에 당도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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