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이제 절벽 끝에 선 우리에게
알면서 모르는 척 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인간은 죄책감을 얼마나 쉽게 털어버리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무감해지는지 책장을 넘기며 체감할 수 있었다.
이슬아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김한민은 우리 사회에 가장 팽배한 말이 "그래서 뭐? 나 하나 애쓴다고 달라질 게 있겠어?"라고 했다. 한강의 책 '흰'에서 저자는 인간성에 대해 질문한다. 그것은 결국 자기의 생(삶)을 위해 다른 존재들의 사(죽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거나 최소한 묵인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우리는 언젠가부터 살기 위해 다른 것들을 깔고 앉아왔다. 내 무게에 짓눌린 것들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 소, 돼지, 닭, 메추리, 양, 뱀, 말, 라쿤, 오리, 거위, 악어, 나무, 풀, 토끼, 원숭이, 쥐, 햄스터, 부엉이, 고양이, 강아지, 이끼, 청개구리, 청설모....
타일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문제점을 지적한다.
나, 우리집, 직장, 사회라는 작은 상자는 자연이라는 더 큰 상자 속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점점 큰 상자를 잊어가고 있다. 우리가 갇힌 인공이라는 상자 바깥을 전혀 상상하려 하지도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떠오른다. 바깥에는 눈폭풍이 몰아치지만 기차 안에는 따뜻한 온실이 펼쳐져 있다.
생존한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비닐하우스 같은 기차 안에서 산다. 진짜와 비슷한 가짜를 만들면서, 그리고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지 구분하지 않으면서, 가짜를 진짜라고 믿으면서.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인간이 현존하는 생물 중 지구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변수라고 했다. 다른 것들을 싸그리 치워버리고 오직 혼자 무대에 선 배우와도 같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는 스스로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어디에서도 그런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환경문제의 핵심이다. 경제 활동의 외부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어떤 일이 유발하는 환경오염과 그것을 회복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말이다.
가격에는 '값'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틀린 '가격'이 우리에게 비싼 값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출현했고, 많은 나라의 국토가 물에 잠기고 있고 앞으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난민과 식량위기로 인한 분쟁 또한 심화될 것이다. 생태계는 이제 우리에게 밀린 빚을 청구하고 있다. 계속 모른 척 외면하는 동안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기후위기는 국경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해자, 동조자, 관찰자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피해자가 될 뿐.
환경문제는 너무 크고, 너무 절박하고 너무 막막하니까 조금이라도 앞으로 갈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완벽한 것도 필요 없다. 다만 깨어있고 그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 땅이 물에 잠기고 숲이 불타며 동식물이 멸종해 결국 우리 숨통을 조이는 현실을 방조하고 있다. 어떡할 줄 몰랐다고 해도 방조한 것이고, 범행을 돕는 줄 몰랐다고 해도 이미 동조한 것이다.
우리는 잘못을 퍼센티지로 따지면서 발을 빼고 싶어하지만 잘못은 있거나 없거나 하는 문제이다. 죄는 유무의 문제이며, 정도를 따지는 건 형을 선포할 때나 필요한 것이다.
타일러는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분노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가 초래한 이 상황에 대해 화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빼앗긴 권리를 되찾고 주체적으로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며 기후위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제 뭐라도 해야한다는 것을 느낀다.
육식을 줄이고, 질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고, 재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함부로 버리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식품과 물건을 소비하고, 일회용품 사용은 줄인다.
선택과 결정을 하고, 물건을 살 때마다 핑계를 갖다붙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게 더 싸니까, 이번 한 번만,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어쩔 수 없으니까, 너무 불편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타일러는 정확하게 지적한다. 이제 누구도 그런 변명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시스템적인 사고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앞에 머그잔이 있다고 하면 이 머그잔이 무엇에 연결되어 있는지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며 관계망을 그리는 것이다. 머그잔을 만드는 데 사용한 흙, 도자기를 굽는 데 사용한 나무, 나무가 자란 숲... 이렇게 조금씩 관계망을 그리다 보면 나중에는 머그잔이 단순한 머그잔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볼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이 와버렸다. 그 연결을 볼 수 없다면 기후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다. 우리 존재, 우리가 만든 모든 문명은 자연 안에 있기에 자연의 질병은 반드시 인류의 파멸로 돌아온다. 자연은 '공존'을 말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살펴야 할 우리의 보금자리이다.
살다보면 우리는 전체 안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전체를 주무르는 것처럼 행동했고, 실제로 근대의 인간들은 인본주의를 신봉하며 그렇게 해 왔다. 우리 외에 다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틱낫한 스님이 말한 인드라의 그물이 떠오른다. 우리도 다만 전 지구 생태계 그물 안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무수히 많고, 그들이 사회를 이루며, 그 사회는 또다시 수많은 생물들이 함께사는 생태계 속에 존재한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한 사람의 무게는 미생물의 무게와 동등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욕심과 경쟁으로 무게를 더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물이 찢어지기 직전에서야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없다는 걸 발견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그물이 끊어지지 않고 튼튼하게 우리를 지탱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설득하지 말고 납득하게 하라 (0) | 2021.02.25 |
|---|---|
| Orange is the new black과 실재하는 타인 (0) | 2021.02.20 |
| 나라 없는 나라 (0) | 2021.02.01 |
| 보건교사 안은영 (0) | 2021.01.21 |
|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0) | 2021.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