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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by 곰곰곰곰 2021. 1. 18.

★ 나의 한줄평: 너를 모른 척하며 살 수 있을까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쓰치가 불쌍했다가 답답했다가 안쓰럽고 위태롭고... 그냥 읽으면서 많이 화가 났다. 어린 소녀를 착취한 그 사람을 허공에다 대고라도 마구 때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삶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고통을 모른척해야 한다.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하물며 고통을 겪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글을 읽으며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이 책이 누군가의 눈물과 피, 고름, 진물로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쓸 수 없다. 
그 사실이 쓰리고 아팠다. 그가 느꼈을 고통의 모래알만큼도 안되겠지만 종이를 넘기는 손에 자꾸만 짭짤한 소금기가 배는 것 같았다.

 

나이가 어려서 제일 좋은 점은 아무도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류이팅은 생각했다.

 

이 책의 첫 구절이다. 글로 적으면 이토록 당연해 보이는데, 이 문장이 눌러 감추고 있는 의미는 너무나 슬프다. 우리는 왜 그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가?

 

입시교육의 고통, 잔혹함, 비정함을 밀어넣고, 등불을 들고 전쟁을 치르는 투지에 365일을 곱하고 다시 못생긴 아이들이 싸워 이겨야 하는 십수만 명을 곱해 아름다운 아이들 속으로 싹 다 욱여넣었다. 장렬한 정절, 서사시 같은 강간, 위대한 입시지옥이여!
그 후 20여 년 동안 리궈화는 자신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여학생들이 세상에 널렸다는 걸 알았다.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아리고 생각했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 어린 학생들은 온전히 걷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일어나 뛸 것을 강요당하는 어린 양이었다.

 


강간을 저지르는 건 남성이다. 강간을 방조하는 건 사회다. 그 속에서 여자들이 죽어간다. 모두가 그녀의 죽음을 묵인한다.
죽는 것은 그녀이지만, 죽이는 건 그녀를 제외한 모두다.

 

몇 년 동안 감금된 채 학대당한 사람은 탈출해서 살아남아도 편의점 단골손님이나 핑크색 마니아, 보통의 딸, 혹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영원히 '살아남은 자'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요? 어째서 피해자가 입 다무는 걸 교양이라고 해요? 어째서 남을 때린 사람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죠? 정말 실망스러워요. 요즘은 소설을 읽다가 인과응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울음이 나와요.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더 원망하는 게 뭔지 알아요? 차라리 내가 세속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차라리 내가 세상의 이면을 본 적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을 때 사실 나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 인생은 옷처럼 그렇게 쉽게 벗겨지는 것이다."

 

책장을 덮으면 나는 그럭저럭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픈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냐. 고통은 인간을 성장하게 할 수도 있어. 나도 그랬어, 위기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어쩌면 이런 말들에 2차, 3차로 찢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을 텐데. 협소한 시야로 얼마나 쉽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가늠도 안된다...

쓰치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이것은 피해자의 언어다. 죽은 자의 글이다. 그래서 구덩이를 파 글자를 넣고 흙을 떠 덮어버릴 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리궈화를 만나는 동안 샤오치는 자기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커서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어주어도 그들 모두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FBI에서는 일곱 명을 죽이면 도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일곱 명이 모두 자살하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자기 이전에 또 다른 여학생이 있었고 자기 이후에도 또 다른 여학생이 있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었다. 글을 다 쓰고 확인버튼을 클릭하며 그녀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이 일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것. 글이 올라가자마자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이 책에서 가장 적나라한 부분 중 하나다. 샤오치는 더이상은 안된다는 마음으로 리궈화를 고발하는 글을 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를 두 번 죽인다. 이팅이 쓰치의 일기를 읽고 리궈화를 고발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팅의 말을 듣고 경찰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 "원래 미친 애였어. 날 고발하겠다고? 무슨 근거로?" 네 번.

 

"넌 아직 열여덟 살이야. 선택할 수 있어. 이 세상에 소녀를 강간하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강간당한 소녀가 있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쓰치라는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부르주아의 평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어. 이 세상에 마카롱과 핸드드립 커피, 수입산 문구만 있는 척 살 수 있어. 하지만 넌 쓰치가 경험했던 모든 고통을 겪고, 쓰치가 그 고통에 저항하기 위해 쥐어짜낸 모든 노력을 따라 할 수도 있어. 넌 쓰치의 생각, 감정, 느낌, 기억, 환상, 사랑, 미움, 공포, 방황, 불안, 따뜻한 정, 욕망을 모두 경험하고 기억해야 해. 쓰치의 고통을 단단히 끌어안으면 쓰치가 될 수 있어. 그런 다음에 쓰치를 대신해서 쓰치의 몫까지 사는 거야."

"넌 선택할 수 있어.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동사들처럼 내려놓을 수도 있고, 뛰어넘을 수 있고, 벗어날 수도 있어. 하지만 넌 그걸 기억할 수도 있어. 네가 그걸 기억한다면, 그건 너그럽지 못해서가 아니야.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 이팅, 네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걸 영원히 잊어선 안 돼. 이팅, 분노를 표출하는 책을 써. 생각해봐. 네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운인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이 세상의 이면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언니는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어요?"
"아니. 우리니 앞으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없어. 정직한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없어."

쓰치와 이팅의 아파트는 여전히 휘황찬란하고 풍요로웠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쳐다보고는 헬멧 마스크를 올리고 뒤에 탄 친구나 가족에게 말했다. 이 아파트에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인생일 거라고....

 

여성의 눈으로 보고, 여성의 몸으로 겪고, 여성의 머리로 생각하고, 여성의 손으로 쓰고, 여성의 귀로 들을 때마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발을 담그면 다리를 강하게 휘저을수록 더 깊게 빠지는 늪과 같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멍청하고 순진한 행복을 깨뜨린 잔인한 목격자...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환상을 품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낫다. 어쩌면 고성이 오가는 집구석에서 엄마가 맞아죽지 않길 바라며 벌벌 떨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투명한 행복이란 없어. 불투명하게 행복하거나, 투명하게 절망적이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야.. 스스로 깨달아갔던 게 아닐까.

 

세상에는 기억해야 할 게 정말 많다.

그래도 나의 평온을 위해 남의 고통에 찬 목소리를 밀어내지는 말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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