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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사랑

by 곰곰곰곰 2020. 12. 20.

★ 나의 한줄평: 마음을 써서 글을 쓰다.

 

읽는 내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던 책이었다.

겨울 밤, 따듯한 이부자리에 누워서 아무 걱정없이 읽을 수 있는 책.

손이 노래지도록 새콤한 귤을 까먹으면서 이슬아의 글방을 여행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많은 아이를 만났다. 

삐뚤한 글씨로 적힌 글을 읽을 때마다 문을 하나씩 여는 느낌이었다.

두근두근, 이 문을 열면 어떤 세계가 열릴까. 어떤 주인이 나와서 어디로 나를 데려가줄까.

책장을 펼칠 때마다 그런 기대로 마음이 설렜다. 

간질간질한 연애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했고, 차박차박 물장난하는 아이들의 땀내나는 그림일기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복잡하고 심난한 소녀와 소년들의 비밀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기도 했다.

 

교사는 글을 통해 아이와 만난다. 

일기를 통해 아무도 발 들이지 않은 어린이의 공간으로 초대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영광이다.

어리고 어려워 글쓴이 자신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한 기호들을 얼기설기 조합해 성장의 퍼즐을 맞추는 것도 선생님이기에 얻을 수 있는 기쁨이다. 

 

좋은 이야기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무언가를 내주어야만 그들도 소중한 것들을 나에게 내주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먼저 털어놓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나의 글쓰기 스승은 그런 글을 '손이 달구어진 사람의 글'이라고 말하곤 했다. 글은 사실 머리도 가슴도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쓰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한 손만이 안정적이고 탄탄한 문장을 써낸다고. 그건 마치 요리를 하도 여러 번 반복해서 몇 가지 기본양념쯤은 손쉽게 만드는 사람의 손과도 같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며 나는 알게 모르게 문학을 배운다. 이 공부는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밥 혹은 언어와 무관한 삶은 없기 때문이며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재능을 운명으로 연결해 가길"
 

 

1장에서 이슬아는 주로 부지런한 반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글은 독자가 이야기를 믿게 만든다.'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구체적인 장면이 눈 앞에 생생할 정도로 글을 쓰려면 아주 오랫동안 눈과 손을 단련시켜야 한다. 부지런히 보고 듣고 기억하고, 자기 안에 담아두었다가 종이 위에 풀어내야 한다. 깎이고 지우면서 쉬지않고 손을 놀려 써나가야 한다. 글쓰기와 요리, 어떤 분야든 부러울 정도로 해내는 사람들 뒤에는 절망과 찬탄을 반복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을 벼려온 시간들이 있다.

 

파도는 그리움을 설명하는 대신 그리운 이미지를 그저 보여주었다. 좋은 문장은 글자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이미지를 독자의 마음속에 그려낸다. 디테일한 묘사란 '부디 이렇게 상상해달라'는 요청과도 같다. 문장 속 디테일과 함께 우리는 과거와 미래로 드나든다. 

쉼보르스카는 말했다. 자기가 쓰는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이라고. 그리하여 돌아가야만 한다고.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일이 멀어지는 걸 보며 계속 살아가는 사람 아닐까. 멀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을 기록하며.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두며, 하지만 결코 디테일을 잊지 않으며 말이다.

 

요즘 나는 무엇을 반복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우물' 신화를 들었다. 한눈 팔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자가 성공한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곳을 계속 파내는 것은 고단하고 지루한 작업이다. 돌부리에 찍혀 다치기도 하고, 기대를 안고 팠는데 예상치 못한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찌됐든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오래오래 우물을 파려면 적어도 그 우물을 좋아해야 할 텐데.

이것저것 먹다가 나이까지 먹어버린 나는 아직 땅 구경이나 하러 다니고 있다. 어딜 파야 할까.

여기저기 기웃대면서 흙장난만 하는 것 같다.

 

내가 모르는 걸 가르쳐줘서 고마워. 몰랐던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고 써줘서 고마워. 어떤 건 내가 알 것 같은 이야기이기도 했어. 어떤 글에 피드백을 적기 위해서는 내 삶의 경험치를 총동원해야 했어. 그걸 다 동원해도 모르겠는 이야기도 있었어. 더 잘살아야 할 것 같았어. 

10대들 앞에 글쓰기 교사로 서는 건 마음놓아도 되는 어른이 되는 연습 같다. 아이들이 비밀과 죄책감을 쌓으며 어른이 되어갈 때 정서적으로 비빌 언덕 중 하나일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그건 어른이 되는 감각 같았다. 내 것 아닌 쇳덩이의 색깔과 모양과 무게도 알아보는 안목.

그래서 아이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보이면 헤아리게 되니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삶이라고, 태어나서 좋은 세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세상의 일부인 교사가 되고 싶다.

과거도 미래도 새삼 아득하게 느껴졌다. 걔네가 맞이할 어마어마하고도 찰나 같은 일들을 짐작하는데 왠지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흐른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이야기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이 한 이야기 때문에 달라지기도 한다. 때때로 글쓰기는 본인에 관한 농담과 거짓말을 지어내는 일이다. 과장하고 축소하고 생략하고 건너뛰고 덧붙이며 스스로를 위한 진실을 세공한다.

어딘이 수업에서 했던 말을 돌아서서 까먹었듯이, 나도 돌아서서 잊을 말을 너무 많이 한 기분이었다. 그중 어떤 말은 아이들이 10년 뒤에도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2장에서 나는 교사로서의 숙명 같은 것을 엿본다. 내가 이미 건너온 시간을 막 건너려하는 학생들을 본다. 그들의 얼굴에서 나를 본다.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꼭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어떤 때는 학생들의 귀를 빌려 듣는 듯하다. 내가 있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사이에 학생들이 존재한다.

말은 그들을 통과해 흡수되기도 하고, 그 중 일부는 다시 반사되어 나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그런 감각이 신기하다.

아이에서 탈피해 어른이 되어가는 존재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이렇듯 기묘한 빛의 이동이 벌어진다.

 

작년에 가르쳤던 예주가 생각난다. 그 아이를 보면 꼭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가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을 떼어내 그 아이의 것과 비교해본다면 어쩐지 비슷한 모양일 것만 같았다.

엄마, 아빠가 헤어질 것 같다고 울면서 말하던 예주에게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상투적인 말을 건넸다.

내가 내민 손이 너무 투명하고 볼품없어 그 애에게 깃털만큼의 위안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애는 씩씩하게 자라났다. 다행이었다. 그걸 보고 나는 어찌됐든 나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힘들겠지만 그게 니 잘못은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너도 이해하는 게 더 많아질거야. 어쩌면 지금 느끼는 슬픔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을 거야.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힘들면 언제든지 꼭 말해줘." 하는 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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