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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좋은 일

by 곰곰곰곰 2020. 12. 6.

★ 나의 한줄평: 고통으로 만드는 뜻밖의 좋은 일

 

이슬아의 인터뷰집에서 가장 관심 갔던 사람이 정혜윤이었다.

어쩐지 히피스러운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그 뒤의 진중함은 곱절로 매력적이었다. 이 사람이 쓴 글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 사람의 아우라가, 주변 공기를 압도하는 분위기가 책 밖으로 풍겨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만연체의 문장이 잘 읽히지 않았다. 그런데 정혜윤은 마치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친구 같았다.

건네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따뜻하고 진실된 것들을 전해주려고 엄청나게 애쓰는 착한 친구. 무슨 말인지 잘 정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냥 그런 마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친구.

 

어쩐지 어린 시절에 헤어졌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혜윤이 말한다.

 

혼자서 책을 읽는 당신에게 말할 필요도 없이 기쁜 뜻밖의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
그런 일이 생길 재료는 이미 우리에게 풍부하다. 빠스깔 끼냐르의 말을 빌리자면 고독 없이, 시간의 시련 없이, 침묵에 대한 열정 없이, 두려움에 떨며 비틀거려본 적 없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무엇 안에서 방황해본 적 없이, 우울함 없이, 우울해서 외톨이가 된 느낌 없이 기쁨이란 없다. 

그래서 마르께스는 상처 입은 사람의 눈에는 별이 두배로 보인다고 한 것이겠지요?
빛이 제일 잘 보일 때는 우리가 어둠속에 있을 때라고 해요. 우리 마음은 늘 우리 마음이 닮고 싶은 것을 찾아냅니다. 당신이 약해지지 않기를 바라요. 더 강해지길 바라요.

 

위기를 겪는 인간에게는 고통스러움과 함께 신비로운 표지들이 찾아온다. 무심히 지나쳤던 길가의 낙엽도, 지구 반대편 사랑을 잃은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도, 무심코 집어든 책의 한 구절도 모두 뭔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요즘 내 손에는 자꾸 베인 상처가 생긴다.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를 하다가 쓰려서 보면 생채기가 나 있다. 어떻게 생긴 건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아무튼 얼마간의 찌릿함을 견디고 나면 상처는 또 낫는다.

길가다가 얼굴을 잃고 죽은 고양이를 보았다. 죽은 자의 유품을 정리하는 사람의 인터뷰도 들었다.

인생은 외국어이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잘못 발음한다. 얼마 전에는 안 쓰는 수첩에서 이런 문구를 찾아냈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듣기 위해 애쓴다. 나는 아직 내가 모르는 언어를 배우는 중이다.

 

윤은 힘들고 외로울 때, 무기가 필요했던 이유를 말한다. 그녀도 나처럼 많이 헤맸나보다.

 

첫번째 이유는 나 자신의 초라함 때문이었다.
나에 관한 진실은 내가 입으로 뭘 주장하는가가 아니라 무심코 하는 말, 무의식적으로 하는 동작에 담겨있다. 자기 자신을, 세상에 대해 느끼는 불만과 괴로움과 욕망과 경험과 삶에 원하는 것을 자신의 언어와 목소리로 진실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건가?

두번째 이유는 삶의 무거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종 초인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을 견뎌야 한다. 삶은 상상만큼 빛나지 않는다. 우리 인생 중간에는 세상이 엉망진창이라는 당혹감을 처리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환상 없이 보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세번째 이유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내 꿈은 간단했다. 꼭 필요한 곳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사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기간만 연장된다면 난처한 뉴스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책을 무기로 삼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이빨 사이에 깨물 수 있는 희망, 인생의 지표로 움켜쥘 한 문장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는 헉과 오오에가 책의 문장을 되뇌면서 인생의 방향성을 정한 것을 보고, 자신도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도 삶이 그렇다. 아픔은 오래 앓고, 기쁨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뜻밖의 좋은 일을 더 오래 기억하고, 마음 속 깊이 품고 싶다. 고통은 충분히 겪었으니 이제는 인생에서 좋은 것들을 찾아 오래 누리고 싶다. 나의 진리를 찾고 그것을 따라 살고 싶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우리를 닮고 우리의 삶은 우리 내면을 따라 흘러간다. 
질문이 없다면 대답도 없고, 질문이 있다면 더 나은 대답은 가능하다는 것 또한 안다. 

강한 사람은 누가 봐도 지치고 쓰러질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장 훌륭한 생각을 해낸다.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내면에서 더 나은 인간을 끌어낼 줄 안다.
자신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단련하고 자신을 바꾸는 싸움에서 영웅적이다.
감정적이지 않고 연민과 동정에 기대지 않고 고통에 호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기다리는 날이 오지 않을 가능성까지 받아들이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려고 한다.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에 슬픔이 너무 많아서 단 한번의 기쁨이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극복된 좌절감, 극복된 두려움, 극복된 우울. 모든 극복된 것들은 삶을 기쁜 마음으로 살게 돕는다.

 

이런 구절들을 읽고 다시 밝고 깊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인생이 모순이니까 그 모순을 품고 살아가 보자고.

나만 아는 상처를 안고 슬퍼하는 일은 그만두자고. 조금 더 깊어진 눈으로 세상의 다른 아픔을 살펴보자고. 

강처럼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자고. 

행복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어휴, 매번 마음만 먹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처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진으로 찍고, 가슴에 남기고, 훌륭해지기 위해 조금더 배우면 되는 걸까. 사소한 것에 한껏 기뻐하고, 지금 해야 할 일을 공들여 하고, 혼돈 속에서 끙끙대며 고민하고, 질문을 갖고 살면 되는 걸까. 수많은 신호가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을 해석하고 실행하는 것은 내 몫이다.

 

존 버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각자 현재를 구원하기 바랐다. "어떻게요?"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사소한' 구원이라고 답할 것이다. 보르헤스는 무한한 우주는 사건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필요로 하고 사랑하고 걷고 죽는 아주 사소한 행위야말로 아주 중요하고도 영원하다고 했다. 

삶의 본질은 사소한 사건들에서 더 잘 드러나고,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이 특별한 이유, 어느 평범한 날이 빛나는 날로 바뀌는 것, 진실한 마음으로 사소하게라도 뭔가를 변화시켜서이다.

로베스터 발저는 삶에 불쾌한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아침이 제공하는 수천가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고 갖가지 절망도 알지만 갖가지 행복감도 알고 있었다.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업적이나 성과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인생의 목표라고 버릇처럼 되뇌던 시절이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의 삶은 풀풀 흩날리는 먼지와 같다는 걸.

겨울철의 입김처럼 후 불면 금세 사라진다. 찬 공기가 훈훈한 숨결을 먹어치우듯 시간은 삶을 먹어치운다. 허겁지겁 남김없이 삼킨다.

 

사소한 것들을 떠올린다.

마음을 조금 더 써야 하는 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도 더 기울여서 하는 일을.

애써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 쌓여도 티끌밖에 안 될 것 같은 것들.

그런 일을 매일 묵묵히 하는 사람들도 떠올린다. 무심한 얼굴로 자판을 두드리거나 조금 지친 얼굴로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누군가 그들의 머리 위로 한숨 짓는다면 그 무게로 몸이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가버릴 것이다. 

 

진실이나 진정이라는 단어는 종종 내장을 마구잡이로 구겨놓는다. 상대의 빈틈을 발견한 권투선수처럼 훅 들어와서 속을 일그러뜨린다. 그만큼의 무게이다. 진심을 발휘하는 건 온 힘을 써야만 가능한 일이다.

"너 진정으로 최선을 다했어? 진실하게 살고 있어? 지금 진심인 거 맞아?"

주로 이런 질문들에 나는 K.O 당하고 만다.

 

지금 나에게 가능한 건 매일 조금씩 발을 떼는 것뿐이다.

1도씩 몸을 기울이고, 손톱만큼 마음을 더 쓰는 일뿐이다. 하루를 담담히 견뎌나가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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