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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곰곰 2020. 11. 9.

★ 나의 한줄평: 무엇으로 사람의 상처를 덮을 수 있는가?

담담하고 아름다운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계속 어리둥절했다.
해석이 안 되는 텍스트. 짐작가지 않는 의도. 알 수 없는 의미.
한강의 글은 크레바스와도 같아서 글자와 글자 사이에 끝도 없이 흐르는 세계가 있다. 나는 그곳의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 지면 위 실낱 같은 균열 아래로 엄청나게 오래된 슬픔도 있고, 믿을 수 없게 고요한 질문들도 있다. 멀리서 물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해저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온전히 이 책을 소화하려면 나도 더 깊어져야 할 것 같다.

 

처음 '흰'을 끝마치고 나서 내게 남겨진 건 의뭉스러움과 혼란이 버무려진 가벼운 감상뿐이었다.
그런데 평론을 읽고나서는 감상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졌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들고 있는 게 퍼즐의 조각인지도 몰랐는데 다른 사람의 완성작을 보고 이게 퍼즐이란 걸 알게 된 느낌.
평소에는 건너뛰기 일쑤였는데, 권희철의 평론은 '평론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평론이 이렇게 가치있는 거였구나' 생각하게 했다. 그는 한강의 작품과 그 안에 담긴 질문을 이어가며 정말로 멋진 작품을 직조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정말로 작아졌다. 지금까지 별다른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독후감을 남기던 걸 반성하게 됐다. 한참 멀었구나, 아직.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단어들을 들여다보는 일엔?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건 흘러나올 것이다.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상처로부터 도망가 영원히 몸을 숨길 수 있는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다. '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결국 산다는 것은, 더럽고 구질한 상처를 질리도록 들여다보는 것이기에, 진물이 나고 딱지가 앉을 때까지 시간을 덧바르는 일이기에. (진짜 그럴까?) 

그렇다면 한강에게 흰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차피 인간이 상처를 안고 살아갈 운명이라면 연고며 거즈가 다 무슨 소용인가. 날카로운 절망 속에서 시간을 견디는 사람은 스스로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한번 죽었었던 낯선 도시에서 그녀는 자신과 만난다. 

평생 함께했으나 한번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상처. (내 안에는, 사람들 안에는 그런 상처가 얼마나 많을까? 익숙한 일상 한쪽으로 치운 채 버려둔 상처가...) 그것은 안개 속에서 오히려 또렷하다. 어둠에 잠겨 눈을 떴을 때야 비로소 보이는 얼굴. 배내옷을 입은 채 죽은 달떡 같은 아기. 자신에게 삶을 건네고, 흰 것들을 주고, 어둠이 되어 타오른 사람..  

 

 

그 사람에 대해 처음 생각한 것은 그날이었다.
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떤 사람. 한차례 죽었거나 파괴되었던 사람. 그을린 잔해들 위에 끈덕지게 스스로를 복원한 사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해독할 수 없는 사랑과 고통의 목소리를 향해, 희끗한 빛과 체온이 있는 쪽을 향해, 어둠 속에서 나도 그렇게 눈을 뜨고 바라봤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녀가 나 대신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리만큼 친숙한, 자신의 삶과 죽음을 닮은 도시로.

 

다음 장에서 그녀는 눈 내리는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과 만난다. 

(나는 '상처 입다'는 말을 생각한다. '상처 받다'와는 다르다. 자기 안의 상처를 벗을 수 없을 때, 깨끗이 거둬 던져내 버리지 못하는 경우에 사람들은 상처를 입게 된다.)

더럽게도 하얀 눈을 보며 인생을 곱씹는 사람들, 눈송이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수그린 채 걷는 행인들, 설산에서 아버지를 영영 잃어버린 남자, 개는 개인데 짖지 않는 개, 휘몰아치는 눈송이 같은 것. 차갑고 적대적이며 동시에 연약하게 사라지는 것, 그러나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 삶을 본다. 

 

외투를 꺼내 입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뒷모습에, 무엇인가 견디기 시작한 사람들의 묵묵한 예감이 배어 있다.

어떤 소리도 없이, 아무런 기쁨도 슬픔도 없이 성근 눈이 흩어질 때, 이윽고 수천 수만의 눈송이들이 침묵하며 거리를 지워갈 때, 더이상 그걸 지켜보지 않고 얼굴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부서지는 순간마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의 반짝임이 거기 있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이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그리고 깨닫는다.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서는 소금처럼 베인 자리를 찌르는 아픔에 맨발을 대어야 한다는 걸.

깨지는 고통, 질척이는 두려움, 수치스러운 슬픔 속으로 향해야 한다는 걸.

사라질-사라지고 있는-아름다움을, 묵묵히 통과해야 한다는 걸.

그러다보면 어느 새 굽이진 삶의 모퉁이를 돌아 새로운 땅에 접어들 거라는 걸. 

더 무성해지기 위해 위로, 허공으로, 밝은 쪽으로 타오르고 있다는 걸.

 

그것들에게서 돌아서기 전에 그녀는 묻는다.
더 나아가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라고 떨면서 스스로에게 답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어떤 대답도 유보한 채 그녀는 걷는다.

 

부서져본 적 없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여기까지 걸어왔다. 꿰매지 않은 자리마다 깨끗한 장막을 덧대 가렸다. 결별과 애도는 생략했다. 부서지지 않았다고 믿으면 더이상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몇 가지 일이 그녀에게 남아 있다:
거짓말을 그만둘 것.
(눈을 뜨고) 장막을 걷을 것.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자신의 것을 포함해-초를 밝힐 것.

 

이 책을 통해 한강은 말한다.

삶은 반짝이는 고통의 파편으로 이뤄져있고, 한 번도 앓지 않고 겨울을 보낼 수는 없다고. 그러니 고통 안에 정수리까지 푹 담그고 깊이 가라앉아야 한다고. 

침묵과 정적 속에 뒤척이며 밤을 지새우자고, 죽어가는 이에게 하얀 수의를 입혀 보내자고.

추위에 손이 곱아져도 다시 백지에 꾹꾹 눌러쓰자고.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하는 말들을.

당신은 귀한 사람이라고. 당신의 잠은 깨끗하고 당신이 살아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이 길고 복잡해도 죽지 말고 살아가자고.

 

이미 죽어버렸거나, 지금 죽어가는 것들은 늘 나를 닥치게 한다.

혹자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살라고 했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나. 나는 흉터에서 태어났다.

 

너는 그렇게도 살고 싶니? 이렇게까지 해서 꼭 살아야 겠니? 살아남은 게 왜 다른 누군가가 아니고 네가 되어야 하니? 왜 죽으면 안되니?...

 

어떤 답도 할 수 없어 그냥 입을 다문다. 잠 안 오는 밤과 새벽의 사이에서 혼자 축축하게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고, 꿈 속을 헤매고, 현실을 미루고, 이내 다 포기하거나 영원히 모두를 속이고 싶어진다. 양쪽 가슴 한가운데 꾹 다물린 흉터를 보면서 결국 이게 아무 것도 아닐까봐 두려워진다. 삶을 깊게 그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봐 무서워진다.

 

타인을 대신해 죽은 사람, 아니면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 지금 죽어가는 사람, 이미 없어져 버린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상처 입은 채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러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면 삶 전체가 장례식이 되어버린다.  

당신의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은 한번도 울어본 적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둠에 잠겨있는 사람만이 밝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상처는 오직 상처로만 덮을 수 있다. 상처 입은 사람만이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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