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가 만난 네 사람
유진목
최후의 나에게 유진목 작가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유: 어떤 확신이 들었어요. 이걸 쓸 때 내가 너무 슬펐기 때문에 읽는 이도 아마 슬프겠구나, 하는 자신감이요. 슬픔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슬픔이 너무 드물잖아요.
삶이라는 게 얼마 안 되었어요. 제가 제 삶을 살기 시작한 지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저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요. 남들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걸 늘 염두에 두죠. 그렇기 때문에 늘 조심해요. 저 역시 다른 사람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잖아요.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는 일에 대해 나는 자꾸 생각했다. 우리 각자에게는 아주 작은 전지전능함이 있다. 겨우 그것만 있거나, 무려 그것이 있다. 선생님이 소심한 전지전능이라고도 말했던 그것.
인터뷰집에는 유진목이 쓴 '반송'이라는 시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엄마는 내가 제일 처음 떠나 온 주소입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시에는 마침표가 없다. 그게 왠지 마음에 걸린다.
내가 제일 처음 떠나온 주소는 어디일까? 내가 반송한 크고 작은 것들이 떠오른다. 수치심과 죄책감, 자기혐오, 분노, 원망, 우울 같은 게 봉투에 엉겨있다. 이건 내 앞으로 온 게 아니야, 더 이상 내 삶에 이런 걸 들이지 않겠어. 그 때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유진목은 잘 살기 위해, 오롯이 유진목으로 살기 위해 떠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자기 스스로의 신을 만들고 있다.
이슬아가 만난 네 사람
김원영
이 강렬한 연극의 주인공은 김원영이다.
김: 하지만 삶이 되게 달라요. 권리를 옹호받는 집단과 옹호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다른 거에요. 공적인 자리에서는 우리가 모두 동등하고 평등하고 같이 싸우자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쇼가 끝나고 집에 가면 전혀 다른 거죠. 공적인 자리에서 토론하고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늘 느꼈어요. 그 지점이 뭘까 생각해보면, 저의 경우는 그거였던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인가, 차별적인 존재인가.
저한테는 몸이 되게 중요했어요. 제가 이십 대 때 가장 듣고 싶었던 칭찬은 '네가 세상을 바꾸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이런 말 아니고 그냥, '나는 네 왼쪽 어깨가 좋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신체요.
이 아름다움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우리는 모두, 너의 '신체'와 함께하고 싶다는 말에 크고 작은 구원을 받기도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질문했다. 신체에 대한 혐오야말로 그 존재에 대한 진정한 부정이고, 그에 대한 무심함이야말로 그 존재에 대한 완전한 무시가 아닐까? 누군가와 친구가 되라는 명령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저 사람을 사랑하라는 도덕적 의무를 지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종종 무대에 오른다.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숨죽이고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다. 한 사람이 몹시 선명한 존재가 되어가는 시간이다.
요즘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크게 아프지 않고 기능하는 신체, 매일 일할 수 있는 직장, 충분한 음식, 따뜻한 집,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과 돈과 물건에 대해. 사람에 대해, 애정에 대해, 호의에 대해. 많은 것들의 당연하지 않은 조합이 하루를 채운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나를 이룬다. 조금 더 질문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