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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존경 1

by 곰곰곰곰 2020. 10. 30.

★ 나의 한줄평: 깨끗한 존경, 과분한 사랑

 

인터뷰집은 처음이다. 눈 앞에 형형한 대화가 나타났다. 말이 문장이 되어 쌓인다. 팔랑대는 눈이 쌓이면 단단해지듯, 그들이 나눈 말들도 무게를 갖고 내 옆에 앉는다. 마음이 기분 좋게 묵직해졌다.

인터뷰만으로 사람을 아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이 되는 불가능도 있다. 내가 들여다 본 그들의 일부가 참 아름답고 생생했다. 그래서 가까이 가 닿은 것처럼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누가 나에게 이상형을 물으면 막연히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요."라고 대답했다. 존경 앞에 '깨끗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앞으로는 깨끗하게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해야 겠다, 생각했다.

 

 

이슬아가 만난 네 사람

정혜윤 

 

혼신의 힘을 다 하고 나서 발 뻗고 자는 느낌을 아느냐고 그가 물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정혜윤이다.

정: 라디오의 속성상 릴테이프는 한 번 돌면 끝이에요. 그래서 생긴 감수성이 있어요.  
기회는 한 번이라는 감수성. 인생은 마치 릴테이프가 한 바퀴 도는 것처럼 한 번이구나. 다시 오지 않는구나. 그래서 덧없이 사라지는 것보다 조금 더 긴 거, 조금만 더 긴 게 뭘까? 조금만 더 오래 가게 살려두고 싶은 게 뭘까? 고민했지요.

유족들이 입 밖에 절대로 내지 않는 말이 있어요. "너도 한 번 당해봐"라는 말이에요. 자신의 윤리로는 할 수 없는 말이라서요. 그 이유는 자기가 겪고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에요. 그 분들은 '당신도 당해 봐라'가 아니라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요. 저는 이것보다 숭고한 인간의 마음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사람들이 슬프고 외로운 날에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나보다 슬픈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나보다 더 슬픈데, 그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지요. 용기를 말하는 거예요. 

고민이 될 때 이렇게 물어요. 어느 쪽이 변화의 편이야? 어느 쪽이 더 나은 변화의 편이야? 그리고 변화의 편에 서요.

자신한테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 같아요. 인생에 일어난 의미 있는 수많은 일들은 '확장'과 관련있어요.

글쓰기는 흔히들 자아표현이라고 하는데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저한테 글쓰기는 자아 형성, 자아 해방, 자아 이동인 듯해요. 누가 나보다 나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게 얼마나 좋은 생각인지 감탄하게 되고 동시에 저한테는 절망하지요. 감탄과 절망, 이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면서 새로운 내가 만들어지는 듯도 해요.

 

정혜윤은 라디오 피디다. 그녀는 주로 슬픈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더 많은 슬픔을 담기 위해 그는 자신을 비웠다. 내면에 머무르던 시선을 돌려 자신의 고통으로 타인을 위로하는 사람들을 본다. 깨끗한 존경으로, 진정한 사랑으로 이야기를 담는다. 세상에 더 슬픈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정: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게 나뿐이라면 곤란할 것 같아요. 뻔히 아는 내가 있는데, 나의 별로인 모습을 내가 다 아는데 온 세계가 나 하나로 축소되면 안 되잖아요. 

깨끗이 존경하는 거예요. 그들은 슬프기는 하지만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너무 슬프지만, 사람이 저렇게까지 용감할 수 있구나, 저렇게까지 깊을 수 있구나, 하는 존경과 감탄이 저를 움직이는 거예요. 

저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해요. 닮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찾고 싶고요. 

 

처음 순서의 인터뷰이자, 제일 좋았던 인터뷰. 글을 읽는 동안 부끄러워졌다. 이 작은 자아를 빙빙 맴돌면서 나를 미워했다가, 위로했다가, 몰아댔다가 달랬다가 했던 많은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나로만 채워진 것 같다.

그러나 더 나은, 더 오래 멀리 가는 것을 채우려면 비워야 한다. 내가 작아질수록, 내가 넓어진다. 귀중한 배움이다.

 

 

이슬아가 만난 네 사람

김한민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Monday
me.
Tuesday
me.
Wednesday
me.
Thursday
me.

한국의 작가 김한민은 이 문장들을 짚으며 최고의 소설 오프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나였음을, 그저 나이기만 했음을 직시하게 만든다고.

이: 이 시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무엇을 안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가능성들이 있으니까요. 정혜윤 피디가 언젠가 카뮈의 말을 전했는데, 천재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거래요. 아무튼 이 시대에서는 누구나 절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택지와 가능성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스스로 능동적으로 절제하는 거요.

문제는 좋은 작품이라는 게 뭔가 핵심에 다가가는 거라면, 나를 중심에 두고 각색하며 쓰는 이야기는 핵심을 피해가는 연습이 될 위험이 있다는 거죠. 나를 들여다보면 결국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생겨나요.

페소아의 [불안의 책]에 "접촉 면적을 줄이고 그 면적의 분석을 깊게 하라"는 말이 있어요. 철학은 크게 보면 세 가지잖아요. 형이상학과 논리학과 윤리학. 한 주제를 가지고도 세 가지 관점에서 써볼 수 있는 거죠. 위 세 가지 중 적으도 하나의 과정은 거쳐서 나온 게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처럼, '너는 나잖아.' 그게 타인이든 동물이든 키우는 개든 도살장의 돼지든... 타자가 나랑 다를 바없어지면서 나는 '많은 나'가 되는 거죠.

쉬운 공감 말고 어려운 공감을 찾아가야 해요.

 

신기하게도 김한민 역시 '내가 너무 나인 것'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그는 얼굴을 가진 '또 다른 나'를 찾아 내 안에 '많은 나'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서로의 차이를 알아가는 접근은 어렵고 지루하다. 어차피 세상은 안 변하니 구태여 애쓸 필요 없다고 믿기는 쉽다. 내가 나만 보면, 더욱 그렇게 된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할지, 무엇을 외면하고 무엇에 반응할지 선택하는 순간에 작아지는 내가 있다. '여유도 없는데 누굴 챙겨, 내 한 몸이나 잘 건사해야지, 상황이 나았다면 이걸 안 골랐을텐데 어쩔 수 없지' 궁색하게 고개를 돌리는 내가 있다. 이제 좀, 그만 나여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까지 너무 나였으니까 앞으로는 좀 덜 나여도 되지 않을까.

연습이 필요하다. 혼신의 힘을 다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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