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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안온한 날들

by 곰곰곰곰 2020. 10. 24.

★나의 한줄평: 죽음과 삶 사이 잠깐의 안온함에 기대어

 

저자의 이름 앞에는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꽤 특별한 수식이 따라 붙는다. 처음 눈길을 끈 것 역시 그의 직업이었다.

표지에 '당신에게 전하는 60편의 사랑이야기'라는 말이 있어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감성에세이인가 싶었는데, 또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고. 결과적으로는 직업인으로서의 수필과 감성적인 에세이가 적당히 짬뽕된 느낌이다.

 

다 읽고 나니 남궁인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꽤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완전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가끔 먹기에는 나쁘지 않은 이국적인 요리 같다. 자신과 타인, 세상과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낭만적이고 섬세하다. 별 하나를 뺀 건... 맨날 먹기에는 느끼하기 때문에.

 

그래서 돌아오는 길, 영원히 한 인간에게 남아버리는 슬픔을 생각했다. 슬픔의 원인은 이미 굳어지고 고착화되어 오히려 저 멀리에 있다. 대신 한 인간에게는 그때 당신이 얼마나 슬픔에 차서 방황했는지 알려주는 증거만이 잔존한다. 영원히 그 사람에게만 남는 슬픔. 당신이 누구이건 간에 당신을 확인해야 하는 슬픔. (인간에게 남아버리는 슬픔)

사랑은 왜 이렇게 슬픈 것이 되어버렸을까.
군중 속에서 우리를 사랑에 빠져들게 한, 단 한 사람이 꽃가마를 타고 벼락처럼 들어왔던 예민한 순간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스포트라이트)

 

작가가 옛 연인을 우연히 마주치고 애써 피해 나오는 길에 비슷한 뒷모습을 확인하고 다가가려다 놀라는 에피소드, '인간에게 남아버리는 슬픔'에서 나온 구절을 읽고 나에게 남아버린 슬픔을 생각했다. 결코 닿을 수 없었던 사람과 닿아있다 곧 떠나버린 사람과 지금은 닿아있지만 떨어져 나갈 (것을 알고 있는) 사람과... 사람 안에 거대한 물탱크가 있어서 슬픔이 계속 저장되는 걸까. 어떤 슬픔의 찌꺼기들은 눈물이 다 빠져나가도 바닥에 가라앉아 영원히 굳어져 버린다.

 

우리는 주저앉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슬픔을 안고 당당하게,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병원을 나간 사람들은 시련을 극복하고 때로는 미소를 지으며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일방적으로 불행하지 않다. 서글한 한 가족이 그날 그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내게 알려주었다. (희망)

"전 인류의 최대 다수에게 고통을 주고 이들이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건 그런 병이나 질환이 아닙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입을 것이 없어서, 살 곳이 없어서 인간들은 죽어갑니다. 그런 병이 있는지도 모르고 죽는단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진단명을 일생 쓸 일이 없더라도,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수의 고통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됩니다." (진단명)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밤은 깊어져만 갔고, 우리는 기억해야 할 죽음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에 지쳐 우리의 죽음도 언젠가 다가올 것만 같았다.

 

다양하고 복잡한 죽음 앞에서도 그는 희망을 말한다. 삶과 죽음, 가난과 고통이 지나간다. 싸우고 울고, 기억하면서 감내한다. 배우고 사랑하고 먹고 잔다. 나에게 일어나면 폭풍과 파도가 되는 일들도 적어놓고 보면 너무 무심하고 한적한 풍경화 같다. 그게 좀 이상하다. 인생이 별 거 없다는 게. 별 일 아닌게 실은 너무나 별 일이고, 또 그다지 별 것도 아니라는 게.

 

조용히 활자를 읽는 강의실은 어쩌다 책날에 손가락을 베이는 통증만이 있는 단순하고 평화로운 정보 공유의 장이었다. 우리는 그 강의실에서 한 질환이 인간에게 어떻게 고통을 가하다 인간을 어떻게 죽이는지 배웠고, 다음날은 또다른 질환이 어떻게 또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지 배웠다. 

"그것 말고요, MDS는 예후가 안 좋잖아요. 환자는 아직 서른 살인데 2년밖에 못 살지 않습니까...." 치프 선생님은 학계에서 처음으로 발표되는 논문을 듣는 것처럼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그게 왜? 치료받으면서 살다가 죽는 거지."

나는 죽음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외에 누군가에게 더 알려줄 사실은 없다.
많은 사람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순순히 남은 몫의 인생까지 살다 간다. 그러지 않으면 또 어덯게 하겠는가? 어차피 누구든 본질적으로 죽음에 항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 슬픔으로 인해 이 세계는 온종일 마비될 것이다.

죽음은 내가 있는 공간에서 순리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당신이 더 희망차게 혹은 더 절망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거나, 거꾸로 삶의 의미를 비추는 무언가가 되지는 못한다.  죽음이 자신에게 오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먼저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은 낭비다. 삶의 의미는 나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죽음은 있다. (울지 않는 환자)

 

가장 인상 깊었던 '울지 않는 환자'.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다 온갖 것들이 쏟아지는 교실로 온 햇병아리 선생님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강의실은, 그런 공간이다. 어떤 소음들이 소거된 채 착실하게 흘러가는 공간. 그래서 학교는 바깥과는 정말 다른 세계라고 생각한다. 어떤 교재도, 어떤 교사도 세상을 완전무결하게 정확히 그려낼 수 없다. 진짜를 담고 있는 가짜. 진실을 구현하려는 거짓. 선생은 거짓말쟁이다. 

그러다가 학교를 나서면 진짜가 펼쳐지는 거고.

 

지금까지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고, 슬퍼했고, 아쉬워했다. 목적을 찾고, 의미를 얻고 교훈을 깨닫고 싶어 했다. 

무수히 많은 죽음을 목격한 의사는 말한다.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하지만 삶과 죽음은 존재한다고.

 

"당신이 잠드는 일은 몇 개의 인생을 사라지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문장을 누가 언제 썼는지 생각하다 곧 포기했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짐작하고 싶지도 않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가령 친구를 트럭으로 타고 넘어가는 느낌 같은. 그리고 간밤의 이야기는 누구든 다시 똑같이는 들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의사 한 사람의 인생은 백 사람의 인생과 마찬가지다. 그걸 견뎌내지 못하면 의사가 될 수 없다." 이 문장은 또 누가 말했더라. 나는 정말로 용기가 없었는데. 두려웠는데.

버스는 무엇인가를 평범하게 밟아내며 나아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평범하게 같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평범한 차바퀴, 평범한 선량함, 평범한 슬픔, 그리고 평범하게 우리가 밟는 것들... 나는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매일같이 바꾸어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았다. (동료)

 

교사도 그런 것 같다. 만나는 아이들의 인생을 마음에 품고, 매일 일정부분 그들이 되어간다. 거대한 물탱크나 커다란 어항이 떠오른다. 찰랑찰랑 흘러든다. 아이들은 너무 쉽게 나에게 마음을 쏟는다. 어쩌려고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자신을 쏟아낸다. 그게 벅차도록 기쁘고, 때로는 바닥으로 꺼지고 싶을 정도로 버겁다. 그냥 그렇다. 나의 안온한 날들.

꽤 안온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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