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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by 곰곰곰곰 2020. 8. 18.

★ 나의 한줄평: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자리, 그럼에도 계속할 수밖에

 

시국이 시국인지라 흥미롭게 집어든 작품.

처음 원인 모를 이유로 쥐들이 죽어나가고, 페스트 균이 숨죽여 퍼지고, 의사 리유는 이 병의 정체가 페스트임을 가장 먼저 알아챈다.

환자들의 고통과 봉쇄되어 갇힌 시민들의 박탈감, 도시를 점령한 무력함과 근거없는 맹신, 어린아이들까지 집어삼키는 병의 잔혹함과 그 안에서 묵묵히 싸우는 사람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축축하고 퀴퀴한 병실 한복판에,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소각장 한 가운데, 황량하고 수상스런 침묵이 감도는 도시 거리거리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기약 없는 페스트와의 전쟁에서 인물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서로 어떻게 의지하고, 반목하는지, 어떤 기분을 느끼고 무엇을 하는지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마음이 쓰리고, 뭉클하고, 감동 받기도 했다.

 

처음으로 '페스트'라는 말이 이제 막 사람들의 입 밖에 나왔다.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왔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가지는 않겠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란 없다.

인간은 생각보다 더 무지하다. 재앙은 우리의 무지와 둔감함을 지적하며 불쑥 집을 점거하는 불청객과 같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페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명명하는지에는 관심없다. 그는 눈 앞의 병을 헤쳐나갈 뿐이다. 그런 단호함과 결단력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으로 해서 그들은 그 수렁과 절정의 중간거리에 좌초하여, 갈 바 없는그날그날과 메마른 추억 속에 버림받은 채, 고통의 대지 속에 뿌리박기를 수락하지 않고서는 힘을 얻을 수 없는, 방황하는 망령으로,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들 각자는 그날그날 하늘만 마주 보며 고독하게 살아가기를 감수해야만 했다. 즉, 그들은 까닭 없이 괴로워하거나 까닭 없이 희망을 품는 것이었다.

 

페스트로 시가 봉쇄되고, 항구는 막히고, 모든 차편도 끊기고 말았다. 시민들은 완전한 고립 상태에 들어갔고, 그저 추억을 떠도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람이 위기 속에서 천천히 일상을 포기하는 과정이 너무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유별났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 재빨리 이루어진 까닭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감상과 회상의 저 편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선생님은 추상적입니다.' 페스트가 더욱 성해져서 일주일에 사망환자 수가 평균 오백 명에달하고 있는 병원에서 보낸 그날들이 정말로 추상적이었을까?그렇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면이 있다. 그러나 추상이 우리를 죽이기 시작할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추상과 대결해야 한다.

동정이 아무 소용이 없다면 동정하는 것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추상과 싸우기 위해서는 추상을 약간은 닮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리유는 꾸준히, 그리고 새로운 각도에서, 개개인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그런 종류의 우울한 투쟁을, 그 기나긴 기간 동안에 걸쳐 우리 도시의 삶 전체를 지배했던 그 투쟁을 계속 추적할 수가 있었다.

 

살려달라는 비명, 팔을 붙드는 부탁의 말들, 눈물과 헛된 감정의 발작. 그 되풀이되는 저녁은 페스트라는 단조로운 추상 앞에서 리유를 '마음 속에 차 오르기 시작한 벅찬 무관심'으로 이끈다.

눈길을 끈 것은 직업인으로서 이 의사가 보여주는 태도다. 어떤 종류의 아픔이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 공감을 매일 실행하다보면 결국 누군가의 불행에 무심해지기 쉽다. 때로는 그저 표본을 추가하는 수집가가 된 것처럼 남의 상처에 무심하게 핀을 찔러넣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리유의 냉정함은 따뜻한 추상이다. 나보다는 남을 위한 추상이다. 자기연민이나 자기혐오가 들어설 공간은 없다. 그게 존경스럽다.

섣부른 열정이나 지나친 냉정은 자기연민과 자기혐오를 불러오기 쉽다. 나는 지금까지 열정과 냉정을 왔다갔다했다. 자기연민과 자기혐오도 달고 다녔다. 리유의 태도를 닮을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 있어서 진실인 것은 페스트에 있어서도 역시 진실입니다. 하기야 몇몇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구실도 하겠죠. 그러나 그 병으로 해서 겪는 비참함과 고통을 볼 때,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들의 태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당장에는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언제나 그렇죠.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물론 이유는 못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존재일지 상상이 갑니다."
"알아요." 리유가 말했다. "끝없는 패배지요."

 

교사생활도, 아픈 할머니를 돌보는 것도, 매일의 일상을 살아내는 것도 어찌보면 끝없이 반복되는 패배다. 나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더 악화되고, 현상유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허무함과 비참함의 지속 속에서 일시적인 승리만 있을 뿐이다. 보람과 기쁨은 영원하지 않다. 그래도 끝없는 패배를 할지언정 계속 싸우는 태도, 삶을 진정으로 살아내는 태도가 필요하다. 고통을 헤쳐온 사람에게 행복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리유의 '끝없는 패배'는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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