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줄평: 그녀의 인생은 책이 된다. 그녀의 눈물은 이야기가 된다.
공지영의 탁월함은 그녀의 굴곡과 그 굴곡을 풀어내는 솜씨에 있다. 절절하고 고통스러운 몸부림조차도 글로 승화시켜 읽는 이를 자신만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재주에 감탄했다.
언제쯤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런 길이 되어야 한다.
살자리인 줄 알고 도망친 곳이 죽을 자리였고, 죽겠다고 도망친 곳이 때로는 살자리였다. 그러나 나는 오직 그 사실을 알 뿐, 그것의 법칙은 알지 못했다. 내게는 이제 목숨을 더 걸 여력도 없어서, 생이 늘 살얼음판을 걷는 듯 버거웠다.
자신의 본질과 이질적인 것은 상흔을 남긴다. 그리고 그 상흔으로 인해, 그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아픔의 힘으로 우리는 생의 모퉁이를 돌기도 한다. 블라인드 포인트라고, 산을 오르던 친구는 말했다.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 무슨 죽음과 무슨 삶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는 험악한 등정에서 산악인들은 언제나 그 블라인드 포인트를 돌아야 한다고.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그것은 대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고통을 준다고. 거기서 주저앉는 사람이 참 많이도 있다고. 그러나 그 공포를 이겨낸 자에게만 산은 그 정상을 허락한다고.
삶과 죽음이 오가는 경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돌아보면 인생은 빛이 들어왔다 곧 꺼지고 마는 긴 터널 같기도 하다. 영영 주저앉고 말 것 같은 칠흑 같은 밤 속에서도 결국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 새벽이 오고 아침이 왔다. 아침이 왔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냥 하루가 이어질 뿐이다. 그래도 그렇게 밤을 지나오면 나는 조금 더 자라있었다.
공지영은 안젤름 그륀의 책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비난하는 심술궂은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늘 피고석에 앉아 자신의 행위가 무죄라는 변명을 끝없이 늘어놓고 싶은 강박을 가지고 있다.
또 그녀는 에픽테토스의 책 한 구절을 들고 온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표상이다.
열심히 살아도 인생이 나를 넘어뜨리고, 희롱하고, 짓밟아 무릎 꿇리던 때, '나를 위로할 방법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죽고 싶었다'고 쓴 적이 있다. 나는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여겼고, 내가 열심히 살았는데 또 그런 일이 생긴다고 생각했고, 인생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라고, 더 나아질 게 없을 거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삶이 나를 넘어뜨린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넘어뜨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힘들긴 했고, 충분히 슬퍼하면서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 기운을 내기도 했으니까. 다만 어떤 일을 해석하기 전에, 그 해석을 잠시 바라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보며 단지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이 나를 부르면 그것이 공평하든 그렇지 않든,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우리 삶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며 우리 삶의 비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끝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 가장 아프게 읽었던 것은 '맨발로 글목을 돌다'였다. 그는 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책을 영화화한 감독과 함께 인터뷰했던 당시를 소설로 썼다. 번역을 맡은 것은 일본에서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일본인, 그리고 그녀가 겪은 가정폭력과 일본군에 끌려간 순이 이야기가 섞여 든다. 그들의 삶은 서로에게 '끼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운명에 휩쓸렸던 그 지점에서, 운명이 불쑥 끼어들어 삶을 치고 지나간 순간부터.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왜 착한 사람들에게만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H를 만나고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에게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들만이, 선의를 가진 그들만이 자신에 대한 진정한 긍지로 운명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지요."
"넌 운명이란 것을 믿니? 어느 날 운전면허 시험의 한 과정처럼 돌발 상황이라는 것이 생의 급브레이크를 밟게 하고, 우리가 믿었던 질서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며 이성을 무력화시키고 상식을 비웃으며 단 한 번뿐인 우리 생의 모든 것을 똥창에 거꾸러 처박아버릴 수 있는 난데없고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류가 생긴 이래로 그 운명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그친 적이 없어. 여기 푸른 별 지구 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과 서에서."
나는 그녀에게 프리모 레비, 빅터 프랭클같이 어느 날 갑자기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이들과 어느 날 갑자기 부두에서 끌려가 성노예로 짓밟히는 순이, 혹은 가시와자키 해변에서 북한으로 끌려가 이십사 년 만에 일본에 돌아온 H 같은 사람의 이름을 굳이 거론하지는 않았다.
운명에 손발이 묶인 채로, 점령당해버리는 일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일어날 수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나도 그래왔고, 나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풍진 세상을 살다간 모든 여자들이 그러했고 또 외면 받은 사람들이 그러했고, 아무튼 모든 인간은 각기 얻어맞은 뺨을 감싸쥐고 또 계속 길을 걷는 것 같다. 그 때, 운명에 지지 않는 방법은 그냥 그 얼얼한 볼을 잡고 일어나 걷는 것이다.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도 걷고 또 걷는다.
공지영은 쓴다.
희망이 절망적인 유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희망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풍랑을 만난 배가 물결을 헤치고 그저 앞으로 갈 수밖에 없듯이 온몸으로, 온몸으로 물결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아무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행이라는 것이 생의 한 속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운명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들 앞으로 너무도 다양한 방식의 불행을 동원해, 잔혹하고도 정확한 조준을 하며 각개 약진해오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운명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냥 부르니까 가보겠다고, 모든 희망을 버리고 답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시비를 걸고, 그녀를 정신병자로 만들고, 그녀를 속이고, 그녀를 유린한 거짓말 같은 운명을 쓴다. 그것이 운명에 답하는 그녀의 방식이다. 곧, 이 책은 운명에 대한 그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목구멍에 뭔가 울컥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고 나니 나는 나대로 생각이 많아졌다.
길거리 한복판에 삶과 함께 내던져진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얼굴을 가리고 줄줄 나는 눈물을 감추며 순순히 욕심을 버리고, 믿음을 내 놓았다. 그래도 내 할 일을 해왔다. 결국 사람은 삶으로 답하게 된다고 그냥 나를 다독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