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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2

by 곰곰곰곰 2020. 8. 19.
훌륭한 행동에다 너무나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다 보면 결국에 가서는 악의 힘에 대해 간접적이며 강렬한 찬사를 바치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세계의 악은 거의가 무지에서 오는 것이며, 또 성의도 총명한 지혜 없이는 악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수가 있는 법이다.

인간은 악하기보다는 차라리 선량한 존재지만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은 다소간 무지한 법이고 그것은 곧 미덕 또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절망적인 악덕은 자기가 모든것을 다 알고 있다고 믿고서, 그러니까 자기는 사람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의 악덕인 것이다.
살인자의 넋은 맹목적인 것이며, 가능한 한의 총명을 다하지 않으면 참된 선도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 법이다.

 

그랑이 보이는 '매일매일의 사소한 노력'에 대비되는 라디오 방송의 목소리는 '사람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없으면 어떤 고통을 참으로 나눌 수 없다는 저 가공할 무력감'을 증명한다. 타루와 그랑은 매일 출근하는 것처럼 보건대에서 통계작업을 하고 왕진을 돕고, 환자를 이송하고, 보조작업을 통솔한다. 리유는 '꾸준한 헌신과 조용한 미덕'이라는 말로 그들을 묘사한다. 우스꽝스럽고 보잘 것 없는 일상에 들이는 노력... 머릿속에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평범한 노력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일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관념이 아닙니다, 랑베르"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리유는 이들이 영웅주의나 보상, 처벌에 기대 싸우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랑베르는 이 대화를 통해 보건대에 합류한다. 선한 행동에 대한 과도한 찬양은 오히려 악에 대한 정열적인 칭송이라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선량함이다.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는 것.

좋은 교사, 좋은 딸, 좋은 동료, 좋은 친구로 인정 받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날들이 떠올랐다. 평판이나 칭찬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에 도취되거나 집착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야말로 나의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바로 그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다만, 이제 다시는 페스트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평화가 아니라면 적어도 떳떳한 죽음을 바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 유행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팔요하단 말입니다.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알베르 카뮈는 타루의 입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간접적으로 인간 수천 명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필연적으로 그러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행위나 원칙들을 선이라고 인정함으로써 나 자신이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일단 한번 양보하면 끝도 없이 양보를 해야 한다고, 달리 어쩔 도리 없이 몯가 살인에 미친 듯이 열중해있다고.

 

페스트가 착실한 관리처럼 매일 정확하고 규칙적으로 모두를 죽이고 있을 때, 우리는 과연 페스트 환자가 아니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버스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광고하고, 매일 고통과 사건, 사고로 넘치는 뉴스를 보면서도 이제 아무렇지 않은 내 자신이 좀 기묘할 때가 있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 정도로 생각해 버리면서 정작 내 고통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서러운 모순이다. 이것이 내 안의 페스트일까. 아니면, 어쨌든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 몰려오는 피로를 견디는 게 우리 안의 페스트일까.

 

그리고 페스트가 물러간 다음, 무엇이 남았나.

어떤 사건이나 사고, 재앙 속에서 교훈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도 영웅주의의 일종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자연에는 교훈이나 의미 따위가 없다. 이유도 없다. '그냥 그때 그 자리에 일어났을 뿐' 물어도 답이 없다.

 

그러나 그 자신, 리유가 이긴 것은 무엇이었던가? 단지 페스트를 겪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진다는 것, 우정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진다는 것, 애정을 알게 되었으며 언젠가는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같게 되리라는 것, 그것만이 오로지 그가 얻은 점이었다.
인간이 페스트나 인생의 노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에 관한 인식과 추억뿐이다.

인간이 언제나 욕구를 느끼며, 가끔씩은 손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대로, 인간을 초월해, 자기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던 사람들은 결국엔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다.
리유는 그랑과 코타르가 사는 거리로 접어들면서, 적어도 가끔씩은 기쁨이라는 게 찾아와서 인간만으로, 인간의 가난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사랑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람을 주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인간들은 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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