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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by 곰곰곰곰 2020. 7. 30.

★ 한줄평: 운명 앞의 인간들

 

에밀리 브론테의 고전작. 황폐한 언덕 위에서 부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위태롭게 서 있는 워더링 하이츠가 떠오른다.

나는 이 책이 운명 앞에 선 인간들을 그려낸다고 해석했다.

나무가 뿌리를 드러내고 비바람을 맞으며 세차게 흔들리듯이 책 속의 모든 인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폭풍 같은 운명에 휩싸인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광기, 오해, 장난, 자기파괴, 증오, 사랑, 공동체, 질투가 모두 한데섞여 폐허를 만든다.

 

인간이란 허황한 풍향계 같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존재인가!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린튼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야, 이 녀석아, 이제 너는 내 거야! 나무가 휠 정도로 강한 바람을 똑같이 맞고도 이 나무가 다른 나무처럼 구부러지지 않고 자랄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자!"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는 운명에 지고 만다. 히스클리프의 저 대사가 그의 고통스러운 인생과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의 삶의 함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공지영이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에서도 똑같은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넌 운명이란 것을 믿니? 어느 날 운전면허 시험의 한 과정처럼 돌발 상황이라는 것이 생의 급브레이크를 밟게 하고, 우리가 믿었던 질서들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며 이성을 무력화시키고 상식을 비웃으며 단 한 번뿐인 우리 생의 모든 것을 똥창에 거꾸로 처박아버릴 수 있는 난데없고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류가 생긴 이래로 그 운명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그친 적이 없어. 여기 푸른 별 지구 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과 서에서."

 

그런 운명 앞에 결국 인물들은 영혼의 파멸을 외치며 독주로 만든 성배를 드는 것이다.

 

"나는 싫어! 그 반대로 나는 내 영혼을 만든 조물주를 처벌하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쯤은 기꺼이 지옥에 보낼 용의가 있어."하고 그 신을 모독한 사람은 소리쳤습니다. "내 영혼의 완전한 파멸을 위해서 축배를!"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에드거 린튼의 애정상대다. 그녀는 두 남자를 모두 사랑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결코 스스로를, 또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 사랑으로 시작해 파멸로 뛰어들게 만드는 그 운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아직 세상을 모르는 나는 망연할 뿐이다.

 

두 사람은 황량한 언덕배기 탄광지대를 본 다음에 아름답고 기름진 골짜기에 들어서는 것과 같이 대조적이었습니다.

'아, 정말 할 수 없는 사람이로군'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의 운명은 정해졌고, 파멸로 뛰어드는 거지!' 과연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는 알아서는 안 돼.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듯이, 서리가 불과 다르듯이 전혀 다른 거야."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그를 버리지 않아, 엘렌. 히스클리프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내게 소중할 거야! 넬리는 나를 지독히 이기적인 계집애라고 생각하겠지만만약 히스클리프와 내가 결혼한다면 우린 거지꼴이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러나 내가 린튼과 결혼한다면 히스클리프가 오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가 있어."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는 영혼의 쌍둥이었다. 한 몸에 달린 두 개의 머리처럼. 둘은 하나의 영혼으로 삶의 감각들을 공유하는 동시에 서로에게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어 고통스러운 올가미 같은 존재다. 반면 에드거는 자신을 초월한 이상향 같은 존재다. 캐서린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라고 말한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뿌리자 땅이다. 린튼에 대한 사랑이 잎사귀처럼 계절마다 모양을 바꿔도 히스클리프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깊게 뿌리 박혀 뽑아낼 수 없다.

 

"만약 모든 것이 없어져도 그만 남는다면 나는 역시 살아갈 거야. 그러나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없어진다면 이 우주는 아주 낯선 곳이 될 거야."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필연적인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내 자신이 내 기쁨 이상인 것처럼, 그도 단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내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내 영혼과도 같은 사람, 나무가 뿌리를 벗어나 살 수 없듯 뗄 수 없이 곧 나 자신인 사람, 히스클리프.

그리고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애정을 풍성하게 매달고 안식처가 되어주는 사람, 에드거.

 

둘 중 어느 곳에도 완전히 서지 못한 채 방황하다 요절해버린 캐서린은 언덕 위의 흔들리는 나무 같다.

이야기 속 록우드가 되어 비극을 관찰하면서 결국 나 또한 비슷한 폭풍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조용히 관조하고 마는 것이다. 인생은 비바람 속의 나무와 같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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