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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by 곰곰곰곰 2020. 7. 12.

★ 한줄평: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자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e북으로 읽을만한 너무 길지 않는 고전을 찾고 있던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라 골랐다. 작가 소개나 목차를 훑어봐도 별다른 정보는 없었다.

 

고심 끝에 읽기 시작했다. 저 먼 나라의 또 더 옛날 시대의 일들, 주인공 제롬과 친척이자 사랑의 대상이었던 알리사. 줄리에트와 그 밖의 가족들이 나온다.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제롬은 '좁은 문'에 관한 구절을 인용한다. 글의 제목이 되는 좁은 문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의 권선징악과 비슷한 걸까. 엄격한 교리를 수행하며 고결한 삶을 살라는 메세지는 이야기 막바지까지 인물들의 인생을 뒤흔든다.

 

목사는 먼저 전체 구절을 읽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러고 나서 주제를 명확하게 나눠 우선 넓은 길에 대해 말했다... 나는 꿈 속에 있는 듯 멍하니 외숙모의 방을 떠올렸다... 웃음과 쾌락의 의미 자체가 언짢고 모욕적인 것이 되었고 급기야 추악한 죄악의 과정으로 변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알리사와 제롬은 평생동안 애썼는데 결국 그렇게 애쓰느라 생명이 시들해져 버렸다. 제름은 절대적이며 고결한 환희를 상상했고, 알리사와 함께 좁은 문을 찾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알리사와 멀어짐으로써 결심을 시험할 시련을 자초했다.

 

처음 좁은 문에 관한 구절을 읽고 나는 인생의 이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길을 거쳐야만 한다고, 역시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해석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쾌락에 빠져 방탕한 인생을 사는 게으른 사람들과 부지런히 일상을 꾸리는 나를 대비시키며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어찌됐든 인생을 사는 자세와 연관시켰다.

그런데 이야기 전체를 읽고보니 위의 구절은 진정한 사랑이 뭔가에 대한 의문을 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부정하고 고뇌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 좁은 문이 알리사와 제롬을 눌러 죽여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들어가려는 좁은 문이 나를 순순히 들여보내줄까. 나도 좁은 문에 눌려 죽게 될까.

 

알리사는 복음서에서 말하는 값진 진주와 같았고, 나는 그 진주를 얻으려고 가진 것을 모두 팔아버리는 자였다.
이후에 내가 겪은 그 어떤 감정도 사랑이라는 이름에 더 어울려 보이는 것은 없었다. (중략) 나는 공부와 노력, 자선 등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알리사에게 바쳤다. 그리고 내가 알리사만을 위해서 한 일을 그녀가 모르도록 하는 것이 더 값지다는 극단적인 덕성까지 만들어냈다. 나는 일종의 지독한 절제에 마음이 쏠려있었던 것이다. 슬프게도 나 자신의 즐거움은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면 그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만큼의 덕성을 보일 수 있을까. 자신의 즐거움을 소거해버리면서까지 상대를 높이려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구절이 지금 나의 삶과 비슷했다. 그런데 내 삶에는 알리사 같은 이도 없다. 누구를 위해 이토록 발버둥치며 삶을 이어나가는 걸까.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너는 왜 주님이 아닌 다른 안내자를 찾으려는 거니...? 우리가 서로를 잊고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 서로에게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넌 하느님 안에서 결합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니?"
"물론 진심으로 그 말을 이해해. 네가 찬미하는걸 나도 찬미하는 것은 바로 너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야."
"너의 찬미는 도무지 순수하지가 않아."
"내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하느님 안에서 널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하느님이 다 무슨 소용이야."
(중략)
그때 우리가 몰두하고 '사유'라 부르던 것은 서로의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좀 더 난해한 일치감을 핑계로 사랑을 감추려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생각과 감정. 사랑을 끌고가는 두 축이다. 생각의 힘이 세지면 감정은 쪼그라든다. 제롬의 종교는 알리사를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알리사의 종교는 제롬에 대한 사랑이자 그녀의 인생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알리사가 제롬을 더 사랑했기에 그를 멀리하며 순수함의 영역에 남겨두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사랑의 언어가 달랐던 건가.

 

"그럼 오빠는 여행을 가고 싶어?"
"모든 곳을! 우리 삶 전체가 하나의 긴 여행이 아닐까. 알리사와 함께 책과 사람들 그리고 다른 고장들을 여행하는 것. 넌 '닻을 올린다'는 말의 뜻을 생각해본 적이 있니?"
(중략)
앞에서 말했듯 나는 내가 하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사랑이 아닌 다른 표현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사랑 외에는 다른 어떤 삶의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사랑에만 의지했으며, 내가 사랑하는 알리사한테서 오는 것 말고는 그 어느 것도 기대하지 않고 더는 기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좁은 문이 아니라 제롬의 사랑이 알리사를 죽인 걸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지만 각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제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알리사가 인용한 아래의 구절이 분명하게 그것을 말해준다.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도 결코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이 떠올랐다.

 

이 세상 그 어떤 승리자의 매력이 지금 나를 주께로 이끄는가?
사람들 위에 버팀목을 세우는 자는 불행하도다!

 

알리사는 제롬 위에 버팀목을 세우고 싶지 않았던 거다. 사람에게 의지한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 건지 알았기 때문에 신에게 사로잡혀 '결코 마르지 않는 풍족한' 사랑을 지속하고 싶었을 거다. 제롬이 아니라 신에게 가까이 간 것은 알리사가 제롬을 사랑하는 다른 방법이었다.

 

'형성'이란 언제나 정말 신비스럽고 놀라운 것이야! 우리가 더 자주 놀라지 않는 건 주의력이 부족한 탓이지. 나는 희망으로 가득 찬 작은 요람에 몸을 기대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몰라. 도대체 어떤 이기주의와 자기도취가 작용했기에, 아니면 얼마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성장이 그토록 빨리 멈춰버리고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과 그토록 멀어져 버리는 걸까? 오, 그럼에도 우리가 하느님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멋진 경쟁심일까!

 

뒷 이야기는 비극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언어로 쓰여진 사랑이야기는 일치되지 못하고 각자의 비극으로 끝날 뿐이다.

 

"제롬! 나는 네 곁에서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느끼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행복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야"
"행복보다 더 영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이야?"
알리사는 나직이 말했다.
"신성함이지......"
내 모든 행복이 날개를 펴고 내게서 벗어나 저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네가 없이 나는 그곳에 다다르지 못할 거야."
나는 알리사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슬픔이 아닌 사랑에 북받쳐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말했다.
"너 없이는 안 돼, 너 없인 안 돼!"

 

제롬은 끝까지 사랑을 붙잡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일거야." 수없이 알리사에게 고백하면서. 알리사는 이미 제롬을 신에게 바치기로 작정했다. 제롬을 신에게 양보하는 게 알리사의 사랑이었다. 괴로워하면서도 그녀는 결국 끝까지 사랑을 지켰다.

이렇게 보니 왜 이리 삽질을 하나 싶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삽질을 한다. 자기 무덤을 파면서.

 

주여, 더는 절 사랑하지 않도록 그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제 가치보다 무한히 더 훌륭한 그의 가치를 주님께 바칠 수 있도록... 오늘 제 영혼이 그를 잃게 되어 흐느껴 운다 해도 그것은 훗날 당신의 품 안에서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함이 아니겠나이까.... 오 주여! 말씀하소서. 어떤 영혼이 그의 영혼 이상으로 당신께 꼭 알맞은 적이 있었습니까? 그는 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려고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그가 저를 향한 발걸음을 멈춘다면 제가 그를 더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과감해질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행복 속에서는 얼마나 위축되어버리는 것인지요....!

주여! 제롬과 저, 저희 둘이 서로에게 인도되어 당신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소서. "형제여, 힘들거든 내게 기대라"하고 이따금 한 사람이 말하면 "내 곁에 네가 있음을 느끼는 걸로 충분해..."라고 대답하는 두 순례자처럼 나란히 인생의 여정을 걸어가게 해주소서. 아니옵니다! 주여, 당신께서 저희에게 가르쳐주신 길은 좁은 길, 둘이서 함께 걸을 수 없는 좁은 길이옵니다.

 

아... 정말. 알리사의 인생은 좁은 문에 유린당했다. 알리사는 진짜 모든 것을 바쳐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제롬을 사랑하는 알리사의 방식이자 그녀가 평생을 바쳐 선택과 행동을 했던 불문율의 지침이었다.

 

알리사는 행복할까? 그녀의 믿음이 스스로를 앗아가고, 제롬을 고통 속에 빠뜨렸는데도. 어찌하지 못하고 울면서도 결국 그녀가 정한 길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려진다. 알리사는 제롬에게 썼던 편지를 찢어버린다. 부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나 혼자라는 사실을 또다시 깨닫기 전에 지금 빨리 세상을 떠나고 싶다.'

 

신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줬을까, 아니면 그녀를 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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