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무거운 인생을 가볍게 사는 법
글을 날렸다. 짜증이 솟구친다. 전환에는 신경을 거스르는 이런 거스러미도 필요한 법이다.
작가는 스스로 창조한 인물들을 사랑한다. 소설 속의 인물은 작가를 닮았고, 작가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닮았고, 작가가 될 뻔했던 사람들을 닮았다. 내 인생을 소설로 쓴다면 나는 어떤 인물을 창조해낼 것인가, 그의 인생은 얼마나 무겁고 또 얼만큼 가벼울 것인가. 글의 말미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심판도 내릴 수 없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까지 인생을 무겁게 살아왔다. 내가 한 모든 결정과 행동, 판단은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이미 지나간 선택지들을 따져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자책과 반성은 삶을 사는 꽤 괜찮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선택은 오직 한 번뿐이다. 그것은 처음 안 순간 끝나버린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아예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옳은 선택을 했다고 자신할 필요도 없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 선택인지 나누는 것도 불필요하다. 하수구에 쏟아버리거나 갖고 있다가 썩혀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 만 한다.
사랑도 삶도 우연에 의해 일어난 일일뿐이라는 걸 안다면 조금 더 담담해질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내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다면, 두 사람이 그 시간에 거기에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걸 가지고 울고 짤지, 행복에 겨울지도 전부 우연이다. 그래서 쿤데라는 우리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있다고 했다보다.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우연들을 경험하기 위해 사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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