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우리의 죽음에 대하여.
두 책 모두 이끌리듯 읽게 됐다. 어디선가 접하게 된 책들과 말들로 죽음에 대한 내 인식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이었고, 이 책들도 내 뇌 속 '죽음' 폴더의 일부로 저장될 것 같다. 법의학자인 유성호 교수가 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는 제목이 눈에 띄었고,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는 여행지에서 묘지를 보는 내가 생각난다며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었다. 흥미로웠다.
얼마 전, 화장지를 빌리겠다며 불쑥 찾아오신 선생님이 주선한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30살에, 보험공단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적당히 생각 없는 자세로 나간 자리에서 그 사람은 '서른이 되니 예전보다 모든 것에 감흥이 덜하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생각해보라고 대답했다. 유성호 교수의 책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죽음이요?"
미묘한 떨떠름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표정으로 '그걸 왜...(굳이 생각해야 하냐)'고 되묻는 그에게 이것저것 갖다 붙였다.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초면에 듣기에는 낯선 단어여서였을까. 그럭저럭 호감을 내비친 사람이었지만 재미없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더니 동생이 미쳤냐는 투로 되물었다. 누가 소개팅 자리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냐며... 그렇지만 중요하다. '죽음이라는 새를 어깨 위에 올려두고' 사는 것은.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우리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할 수 없다. 그러면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 우리는 비참함과 슬픔에 사로잡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도 감정의 둔마를 겪게 되고 더 나아가서 무관심하게 될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두 책 다, 내 예상보다는 그저 그랬다. 엄청난 느낌은 없었고 읽으면서 그렇지, 하는 순간이 몇 번 있었던 보통의 책이었다. 오히려 내게 죽음은 텍스트로는, 말로는 못 담는 기억들로 감각되어 왔다. 어린 시절 장의차를 보고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 그 안의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 작은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 밤에 숨죽여 울던 할머니의 모습이나 쓰러질 것 같은 상태의 작은 어머니가 낸 한 서린 곡소리... 그리고 시험을 보다가 문득 '나도 죽을까?'하고 두려워졌던 느낌, 흑백사진으로 접해 그나마 덜 끔찍했던 시신의 사진과 죽은 자들이 바꾼 세상, 5.18과 베트남 전쟁박물관, 망월동 공동묘지. 여행지에서 봤던 묘지나 무덤. 그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죽음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것을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상상하고, 체험했다. 죽음을 머릿속에 각인시킬 때마다 내가 자란 것 같았다. 그래야만 자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사가 된 후에는 서준호 선생님의 연수를 바탕으로 몇 년 째 아이들과 죽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얼싸안고 울기도 했고, 진지한 분위기를 만드려고 애먹기도 했지만 처음 만났던 제자들 앞에서 예를 든다며 유언장을 읽을 때 눈물을 흘렸던 순간이나, 친구 손을 잡고 얼굴이 빨개져 유언장을 대신 읽는 아이들 모습, 그 후에 뜨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같은 것들이 장례식 수업을 계속하게 한다.
여성의 생리 주기에서 마지막 월경이 있은 후 대개 2주뒤에 배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때 남녀가 사랑을 나누면 남성의 정자가 여성의 난자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예전에는 이때 무수한 정자 중에서 행동이 빠르고 힘센, 즉 1등하는 정자가 난자와 결함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 정자는 일종의 팀을 짜서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다. 즉 다른 무수한 정자의 희생으로 하나의 정자가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여성의 난관, 나팔관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는데 그 후 수정된 난자와 정자가 다시 자궁 쪽으로 돌아가는 데 대략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수정된 정자와 난자는 일주일을 두고 자궁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2개, 4개, 8개, 이렇게 반반씩 쪼개지면서 수정란이 되고 그다음에 자궁에 딱 붙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자궁벽에 잘 붙지 못하고 그냥 쓰러지는 수정란이 절반이 넘는다.
이렇듯 임신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수정이 되어 자궁에 붙은 후에도 임신 초기에 자궁벽에서 떨어져 그냥 쓸려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임신 8주 정도까지는 유산 가능성이 높아서 여성 스스로도 임신한 줄 모르고 있다가 유산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생명은 사실상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 것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엄청난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태어난 생명이며, 그렇기에 굉장히 신비로운 존재다.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1. 고대 메소포타미아: 실질적인 삶의 끝. 죽음 후는 '알랄루', 감정 없는 어두운 세계
2. 고대 이집트: 나일강의 범람이 비옥한 토지로 바뀌듯이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줌
3. 고대 그리스: 영혼 불멸론(소크라테스, 플라톤, 에픽테토스)과 영혼 필멸론(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 에픽테토스)의 대립. 에피쿠로스는 죽음 이후에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고 생각함
4. 중세 초기, 전성기: 종교적인 부활의 믿음을 근거로 죽음을 제례화함. 인간을 독립된 개인보다 생산 공동체의 일부로 봄. 영혼 불멸론의 우세. 로마의 경우, 시신을 도시 안에서 매장하거나 태울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있었음
5. 중세 전성기, 르네상스 이전: 인권의식의 상승으로 개인의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봄. 죽음은 심판이나 영생
6. 영혼과 육체의 분리, 혼과 백의 해체. 천국과 지옥, 해탈과 윤회
8. 르네상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호기심, 슬픔. 순수로의 회귀, 아름다운 죽음. 과학, 의학 발달로 죽음과 신이 아니라 죽음과 대자연의 관계가 부각됨
9. 현대: 죽음은 의학의 대상. 실존주의나 쾌락주의의 대두. 죽음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정의. 안락사나 존엄사, 자살, 생명의 자기결정권, 연명의료 등의 문제 대두
죽음의 과학적 정의: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의 작용으로 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던 생체가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나면 평형 상태가 깨짐. 그리고 생명활동은 완전한 정지를 향해 불가역적인 변화를 시작함.
즉 자극에 대한 반응과 운동성이 감소하고 약해져 대사 기능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1. 중립적 수용: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끝. 자연의 마지막 질서이자 내 이야기의 종결
2. 접근적 수용: 행복한 내세에 대한 믿음. 신이 나를 기다리고 나는 소임을 다하고 돌아간다
3. 탈출적 수용: 죽음은 고통스러운 삶에서 탈출하는 것
죽음의 5단계(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1. 부정
2. 분노
3. 협상
4. 절망
5. 수용
6. 승화 혹은 초월
모두가 한 사람 개인으로서의 죽음이지만 이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어떤 죽음은 그 죽음으로써 사회적인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렇듯 여러 양상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 다만 그것이 어떤 죽음이든, 사회적 파장을 가져오는 죽음이든 그렇지 않은 죽음이든,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숙고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갖는 의미의 지평은 훨씬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다들 자신의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내일 오든, 몇 십년 후에 오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러한 물질적, 심리적 정리는 삶의 정리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내 인생의 마지막은 반드시 내가 종결지어야 한다...죽음을 떠올리는 것을 재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지금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처럼 찬란한 칭송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갖는다.
살아있는 동안 앞으로도 죽음에 대한 나의 탐구는 계속될 것 같다. 삶을 멋지게, 후회 없이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않으면서 가뿐하게 맞고 싶다. 나에게는 어떤 이의 죽음도 쉽지 않다. 삶이 그렇듯이. 아마도 내가 죽음이라는 동굴을 그토록 집착적으로 파내는 까닭은 삶을 그만큼 더 잘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잘 살고 있는지 고민될 때마다 죽음을 꺼내볼 것이다. 죽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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