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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by 곰곰곰곰 2020. 2. 20.

★ 나의 한줄평: 사랑이 뭐길래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궁금한 건 딱 하나였다.

 '사랑은 뭘까?'

퀴어의 지리학이건, 카일리건 상관없이 결국 작가는 그토록 지리멸렬한 사랑 이야기를 또, 또, 또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경한 삶의 표본을 처음 마주한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었지만 후루룩 넘기다 턱 막히는 부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랑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다 오지도 않은 마지막을 염려한다는 점에서 주인공과 닮아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끝을 미리 생각했다. 그리고 끝을 맞이한 내가 너무 좌절하지 않도록 그걸 빤히 바라봤다. 다시 없을 순간이라고, 이제 못 올 시간이라고 되뇌면 어쩐지 소중한 것을 하나도 잃지 않고 기억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잠시만 머물러있다가 곧 사라질 것이었으므로. 물론 이 방법은 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하는 임시방편의 꼼수다. 이게 꽤 애잔하고 멍청한 짓이란 걸 알게 된 이후로도 계속 그랬다. 그것은 추억을 박제하는 나의 방식이었다.  

 

반짝,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나는 감히 규호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설렘도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밤이 끝나는 시점과 해가 뜨는 시점은 이어져 있으니까. 지금 이렇게 설레는 감정이 이는 것은, 결국 우리가 완벽히 끝날 때가 되어 간다는 의미겠지. ... 그것은 내 탓일까 네 탓일까 아니면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걸까.

 

나는 멀어져가는 규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 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오직 다 식어버린 고로케만이 아직도 내 손에 들려있을 따름이었다.

아침마다 약과 물을 챙겨주고, 입술이 갈라지면 립밤을 건네주고, 내 방에 암막커튼도 달아주고, 간지러운 등도 긁어주고, 나보다 먼저 욕실에 들어가 공기를 데워놓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고, 그러니까 사실 나, 네가 엄청 필요해 규호야...

 

그때, 영원할 줄 알았던 나와 재희의 시절이 영영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 

 

 

 

때때로 그는 내게 있어서 사랑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게 규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규호의 실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랑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중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온갖 종류의 다른 방식으로 규호를 창조하고 덧씌우며 그와 나의 관계를, 우리의 시간들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했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규호라는 존재와 그때의 내 감정과는 점점 더 멀어져버리고야 만다. ... 그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모든 것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지난 시간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결국 나의 몸과 나의 마음과 내 일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더 여실히 깨달을 따름이었다.

 

 

 

삶을 사는 태도가 너무나 달라서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이고 지는 책임감이 그들에겐 없어보였기 때문일까, 한 번 사는 거 이렇게도 살아볼 걸 하는 질투였을까, 그도 아니면 우월의식을 섞어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근시안이었을까. 타인의 어떤 삶도 가볍지는 않을텐데.

 

처음에는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꼈다면, 시간이 지나고 나니 뭐, 다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돈이 써지는 대로, 인생이 남아날 때까지 이대로 버텨보자. 그렇게 방 안에만, 내 템퍼 베드 위에만 누워있으니 아, 정말 이것은 참으로 폭신하고도 완벽한 죽음의 상태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에 도달했고, 지겨움조차도 지겨울 수가 있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나....

 

- 우리 왜 이렇게 태어났냐.

- 모르지 나도.

 

그러나 축제가 끝나고,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파하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의 기분 같은 걸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것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다가 나도 모르는 새 밟게 되는 것이다. 과자를 찍어먹고 난 뒤 손가락에 남아 달라붙어 있는 부스러기 같은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규호도 내게서 등을 돌려 멀어졌는데, 나는 좀체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모든게 사라져버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뭔가 다 내 진짜 소원이 아닌 것 같아 빗금을 쳐서 지워버렸다. 아마도 그러는 사이 구멍이 나버린 것이겠지.

나는 결국 풍등에 두 글자만을 남겼다. 규호. 그게 내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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