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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by 곰곰곰곰 2020. 1. 19.

★ 나의 한줄평: 해바라기 씨앗을 거부하고 들어간 어린 시절의 감옥, 우리는 진희처럼 어른이 된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그러므로 내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돼왔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거리 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한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주인공 진희는 자아를 분리함으로써 '진짜 나'를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인생 전반에 강하게 작동하는 이 방어기제는 삶의 불합리를 깨닫고 그녀가 움켜쥔 선택의 결과다. 그리고 얄궂게도 그녀의 삶을 잡아먹어 잠식해 버린다.

인간은 모두 사람들이 원하는 '보여지는 나'를 일부분 꾸며낸다. 나는 어떤가? 나는 어떤 작위를 언제 택해왔는가?

장군이를 골탕 먹이고, 어른들의 비밀을 관찰하며 영악하게 구는 진희를 비난할 수 없는 까닭도 그에 있지 않나?

 

나는 봉희처럼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하는 어린애들을 경원한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것처럼 스스로 이런애임을 드러내 보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린애답게 보이는 것이다.

 

엄마 구두에 발을 넣어보고, 몰래 립스틱을 꺼내 발라보고, 귀걸이 따위의 장신구를 만지작 거리면서 나는 어떻게 어른 흉내를 냈는가? 그러다가 더이상 어린애를 졸업하게 된 시점은 어디쯤일까?

어른흉내를 그만두는 순간 진짜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의 아이러니함.

 

버스가 아줌마 앞에 섰을 때 아마 아줌마는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 버스에 한 발을 올려놓는 것으로 아줌마의 인생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 순간 아줌마가 느꼈을 복잡한 갈등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스몄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건만 아줌마는 자기 인생에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어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특히 여자의 경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배후에는 '팔자소관'이라는 체념관이 강하게 작용한다.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체념은 여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연히 닥쳐온 불행을 이겨내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만듦으로써 더 많은 불행을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광진테라 아줌마, 순분씨의 일생. 그리고 과거와 현대 여성들의 삶이 답답하고 아프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스톡홀롬 증후군을 떠올렸고, 순분씨가 인생의 불합리를 체념하고 묵인할 수밖에 없게 만든 가부장제의 지독함을 또다시 실감했다. 그녀가 박광진에게 맞고 숨죽여 울때조차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한 집에 사는 여자들조차 그놈의 팔자탓을 하며 버스 타는 것을 말렸지. 와중에 남편에게 미운정이 들어버렸고 결국 아줌마는 주저앉았다.

이름없는 순분씨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무책임한 박광진은 어떻고.

나 또한 삶이 부리는 횡포를 견디고, 묵인하고, 회피하고, 직시하고 고치면서 많은 날들을 살겠지.

 

사랑이 아무리 집요해도 그것이 스러진 뒤에는 그 자리에 오는 다른 사랑에 의해 완전히 배척당한다.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갖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기대와 두려움이 사라지면 편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만큼의 슬픈 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진희는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기보다 스스로 관찰하고 실험하고 경험한 것을 숙고해 삶의 속성을 발견한다. 그건 열두살 아이는 상상하기 힘들고, 웬만큼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도 힘든 일이다.

타인을 이용해 삶의 실험을 자행하고 남의 불행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는 진희는 분명 병들어 있다. 그래서 자꾸만 달갑지 않은 선물로, 어린 시절의 감옥으로 돌아가는 형벌을 받은 게 아닐까.  

그러나 삶의 속성을 온전히 스스로 연구해내는 이런 자세는 분명히 본받을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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