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친한 지인 신혼여행 썰 듣는 기분
가볍게 읽을 책 찾다가 제목과 작가 이름에 이끌려 골라든 책.
'한국이 싫어서'로 등단한 작가 장강명이 결혼 후 5년 만에 보라카이로 신혼여행 가서 경험한 것과 느낀 점들을 고소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도서관에서 고르다가 문득 작가에게는 필명도 참 중요하겠다, 눈에 띄면서 어감이 좋은 이름들(예를 들면 김꽃비, 정세랑, 루리)이나 독특하고 개성 강한 이름들(이를테면 한강, 장강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강명은 받침에 'ㅇ'이 다 들어가네,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서관을 나왔다.
HJ는 2008년에 귀국했고, 이후에 나와 1년 좀 넘게 동거했다. 그리고 2009년 여름에 결혼했다.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내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HJ 역시 우리 부모님에 대해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인격자, 리더, 세계사의 위인들, 일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면, 그런 갈등 상황에서 주위를 보듬고 다듬으며 양측을 설득해 화합을 끌어내고야 말 테지. 하지만 나는 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었으므로 그냥 간단하게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작가는 대학생 시절 만난 '운명의 상대'를 4년 간 기다리고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고 어떻게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되었는지, 10년 간 성공적으로 언론사에서 일하다가 왜 소설가가 되었는지가 나왔다.
회사를 그만뒀을 때는 이미 소설가로 등단을 한 상태였다. HJ에게는 딱 1년 반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만 1년 동안 장편소설을 다섯 편 썼지만, 단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았다. 돈은 30만 원쯤 벌었다.
인격자, 리더, 세계사의 위인들, 일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난 할 수 있다'며 결의를 다지겠지. 나는 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었으므로 끊임없이 번민했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도망치는' 삶이었다고 표현했는데 헤매면서 탐구하다 결국 정박한 게 멋졌다. (스스로는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만 1년에 돈을 30만원밖에 못 버는데도 소설 쓰기에 골몰한 부분이 이미 비범하다.)
그와 별개로 그가 하는 고민은, 또 고민하면서 느낀 아이러니함은 지금 나도 겪고 있기에 매우 공감됐다. 어쩌면 질문에는 끝이 없고 평생을 정체성과 진로로 고민해야 하는 건지도...
이 정도까지 읽고 작가가 HJ를 쓸 때, 어떻게 글자를 입력했을지 잠깐 궁금해졌다. 매번 영타로 바꿔서 쳤을까, 아니면 복사 붙여넣기 했을까? 몹시 귀찮은 일을 해내다니 이 부분도 대단하다.
HJ가 이런 진단에 펄쩍 뛸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우리 부모님은 두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상징으로 다고오는 듯했다. 그녀를 구속하려는 한국적인 것들. 성차별, 출산과 육아, 유교, 대한민국 그 자체.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과 HJ를 설득해서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 내 인생 3년을 그런 쓸모없는 일에, LPG 가스통과 화기를 서로 친하게 만드는 작업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내 부모님과 HJ가 왜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명절에 싫다는 아내를 자기 부모님 댁으로 굳이 데리고 가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걸까. 보기 싫은 친지들을 만나러 큰집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모를 것이다. 그냥 막연히 명절에는 가족이 다 모여야 한다고 하니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 관습의 압력에 맞설 용기가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동기가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런 사례에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살고 싶은 인생의 방식이 있다. (중략) 그러나 부모님과 HJ가 내 동생 부부와 조카가 나란히 서서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마지막 장면 같은 분위기로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 같은 건 그 그림에 애초에 없다.
자기 이야기를 굉장히 솔직하게 한다.
브런치 글을 쓰면서 나도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솔직하게 써야 읽는 사람이 명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 알고 있어서 생략해도 독자는 모르니까 그냥 감정만 적어놓거나 깨달음만 써 놓으면 어떤 뉘앙스인지 이해가 안될 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인생 모습을 서술하며 가족드라마 같은 장면은 없다고 썼을 때 웃겼다. 그치, 한국에는 하하호호- 웃으며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사이좋게 가족사진을 찍는 대가족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것 같다. 보편적인 것 같지만 알고보면 몹시 드물다.
신혼여행을 보라카이로 가기로 정하고 두 사람은 외교부 여행경보제도를 살펴본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 제도에 빗대어 자연스럽게 한국 부모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자식이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지 않을 때, 거기에 부모가 반대할 권리는 없다. 반대는 할 수 있어도, 모욕할 권리는 없다.
사실 이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다. 자식들의 인생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런 폭력의 원인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건 사는 게 아니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깊었다.
우리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줬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케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내가 나름 모범생 소리 깨나 듣는 아이였기 때문에 말썽은 안 부리겠거니 하고 나를 믿어서 그런 걸수도 있다.
아무튼 든든한 지원이라던가, 안락한 보호 같은 것이 소거된 댓가로 나는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한때는 그런 게 부모님의 사랑이고, 왜 두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을까 의심한 적도 있지만 지나고 보니 할 수 있는 선에서 나를 지원하고 챙겨주면서 나름대로 날 사랑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서로 싸우다가 인생과 겨루느라 나나 동생의 반항 같은 건 눈에 안 들어왔을수도 있다.)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해 집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해준 덕분에 여행도 원없이 다녔다.
인생을 걸고 도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을 탐구하고, 그걸 바탕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받아드는 게 중요하단 건 안다. 요즘 보는 유튜버도 떠올랐다. 안 맞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여행하고, 외국어 공부하고, 자유롭게 사는 게 참 용감하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 때는 나가라고 해도 못 나갔을텐데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면서 삶을 다채롭게 꾸려나가는 모습이 멋져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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