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전형화, 단순화.
남의 손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곳에서 홀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사실 우리 곁에는 생활하는 데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꽤 많다.
아이, 노인, 임산부, 환자 등...
그리고 사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산다. 일상이 늘 그렇다.
"뭐지?" "왜 웃지?"라고 반문해왔듯 조화영은 경찰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들이 쓴 모자를 가리켜 "그 모자 내가 만든 거다!"라고 외쳤던 조화영의 말 한 마디는 활동가들 사이에서 어떤 구호보다도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것은 일하는 발달장애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한국 사회를 향한 일갈이었다. 아무리 지워도 나는 존재한다고, 내가 하는 일에 기대어 당신도 존재한다고 내질렀던 것이다. 조화영은 자신이 존재하는 일상의 자리를 인식하고 사회와 만나는 접점을 포착했다.
제도나 정책으로 지원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분류하고 단순화시킨다.
모든 이들의 욕구와 취향을 살피는 것은 어렵고 복잡하고 피곤한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삶은 다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고, 위험하다고, 비용이 부족하다고 미뤄놓는 사이 그들을 덮쳤던 파도는 어느새 우리에게로 올 것이다.
활동보조를 받는 상희씨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중증 장애인에게도 제도 밖에서 숨쉴 수 있는 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선 살 수 없는 몸이 아니라 제도 밖으로 튕겨져 나와도 괜찮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중증 장애를 가신 사람의 삶을 단순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단순화된 삶은 그 자리에 멈춰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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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른 삶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첫번째로 우리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한번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더 주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한번도 한 인격체로서 무엇을 계획하고 이끌고 표현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던 지원씨는 극단 활동을 하며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 과정들이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춤추는 허리'가 그 자신과 배우들에게 '리허설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좋다고 한다.
'리허설이 가능한 곳'이라는 말이 참 좋다. 학교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아이가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배움의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사실 배우는 과정은 계속 실수하고 삐끗하고 그러면서 답을 찾아나가는 행위의 반복으로 이뤄진다. 완성된 공연이 있을 수 없다. 발전된 공연이 있을 뿐이다.
두번째로 우리는 서로 소통해야 한다. 그 과정이 아프고 쓰릴지라도 말이다.
차이를 인정하며 일하자는 선언이 일상에 자리 잡으려면 수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장애여성공감이란 공간이 갈등에 유독 강한 것도 아니지만, 이 공간은 특이하게도 갈등을 직면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서로를 단련시킨다. 회피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하는 방식은 힘들고 독특한 문화다. 이 힘든 과정을 장애여성공감은 '저주받은 세라피'로 부르거나 '직면의 과정'이라 불러왔다.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기 입장을 드러내도록 독려하는 것은 존중의 방식이지만, 많은 경우 힘든 도전이다. 솔직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공동 작업에서 필요한 과정이지만, 어떤 이는 상처받았고 어떤 이는 더 많이 말해야 하는 책임에 괴로웠다. 서로를 잘 안다는 건, 그만큼 관계의 책임을 동반하기도 했다.
나는 주민번호나 장애인등록증이라는 제도적 구분에 갇히지 않으며 동료로서 이름과 얼굴이 있는 만남을 원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만큼 정체성을 의심하고 재구성하려는 변주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 갈등을 예고하는 공동 작업을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고, 실패의 연속선을 이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 공간에 남아있다.
발달장애여성을 존중하는 관계 맺기와 동정하는 봐주기식 소통이나 통제적 말하기는 한 끝 차이란 걸 종종 느낀다. 대화의 목표가 어디냐에 따라 통제를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누구냐에 따라, 도전과 변화가 누구에게 더 많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차이는 생겨난다. 장애여성공감도 여전히 그 주도권과 실행력은 비발달장애인에게 더 있다. 다만 주도권과 실행력이 발휘되는 방식과 속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끝없이 배분하고 평가하면서 조금씩 다르게 해보는 방법을 멈추지 않는다.
답 안 나오는 질문을 끝까지 던지고 매해 답을 실천하는 사람들. 끝에서 달리는, 그래서 방향을 바꾸면 그곳이 시작인 이 공간. 미련하게 말하고, 쓰고, 움직이며 실패를 통하여 살아가는 이 몸들과 함께 있는 한, 무엇도 당연하지 않고,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이진희 활동가의 마지막 글이 참 무겁게 와닿았다.
실패와 상처 속에서 서로의 입장 차를 직면하고, 결론이 안 나는 피곤한 논의를 이어가고, 의욕적인 실천 끝에 좌절을 마주하는 것은 아마 모두가 되도록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의 귀한 무언가를, 함께 부딪히며 일구어낸 끝에야 찾을 수 있는 가치를 장애여성공감은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이상한 몸들이 어우러져 살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