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나를 찾아줘
원고를 쓰기 위해 아이들 동화를 좀 읽어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나 심리학 책을 자주 읽다보니 동화 봤던 기억이 잘 안났다.
고른 것은 '시간가게'와 '도둑맞은 김소연'.
시간가게는 주인공 윤아가 이상한 시간가게에서 10분씩 시간을 살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싱글맘인 엄마와 함께 사는 윤아는 학원과 성적에 민감한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느라 허덕인다. 어느날, 학원에 늦은 윤아의 얼굴 위로 시간가게 포스터가 날아와 붙는다. 속는 셈 치고 시계를 가져온 윤아. 행복한 기억을 댓가로 10분의 시간을 산다. 그리고 시험을 볼 때, 준비물을 안 가져왔을 때, 계속 시간을 산다. 행복한 기억을 잃은 윤아는 다시 시간가게로 가고, 이번에는 시간을 팔아 기억을 사기로 한다. 그런데 윤아에게는 다른 사람의 기억이 들어오고 곧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된다. 윤아는 시간가게로 달려가 시계를 풀어 깨 버린다.
기억과 시간이라는 소재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주말에도 영어숙제를 해서 차라리 토요일에는 학교에 오고 싶다던 우리반 가윤이가 생각났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그렇게까지 분 단위를 쪼개 공부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시간에 쫓기며 행복을 유예하는 입장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힘들게 일하는 엄마를 위해 꾹 참고 모든 것을 견뎌내는 윤아가 안쓰럽기도 했다. 할머니와의 따뜻한 기억이 나온 부분은 정감이 갔고.
'행복'을 주제로 한 글을 쓸 때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부분도 낯익다.
뒷부분에 다른 사람의 기억이 섞여 혼란을 겪는 장면에서는 플롯이 약간 헷갈렸다. 왜 기억이 섞이는 거지? 영훈의 기억이 윤아한테 들어온건가? 그럼 영훈이도 시간을 산건가? 잘 정리가 안됐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떨지 궁금하다. 어른인 나는 작가의 '어른스러운' 묘사나 표현, 교훈적인? 의미있는 구절들이 먼저 눈에 띈다.
무리에 섞여 걷다 보면 마치 내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으로 최상의 제품을 찍어 내는 것처럼, 나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 절대로 불량품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아무 소리라도 듣고 싶어 텔레비전을 켰다. 코미디 프로였다. 하나도 안 웃긴데 방청객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행복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앗싸! 난 다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할아버지가 시계를 몇 번 만지더니 내게 내밀었다.
나는 원래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책 읽는 것마저도 간섭하면서 싫어졌다. 책장을 덮자마자 느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식은땀이 났다.
엄마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엄마의 주문을 받을수록 나 '이윤아'가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았다. 아니 처음부터 난 텅 비어있는 아이 같았다. 지금껏 나는 '나'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내 시간을 내가 주인이 되어 써야 할 것이다.
밑줄 그은 부분은 애들이 쓸 것 같은 부분이고, 나머지는 어른이 쓴 느낌이 난다.
도둑 맞은 김소연은 평범한 소연이 반에 삐까번쩍한 전학생 또다른 김소연이 등장하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동화다. 소재가 흥미롭고 실재로 동명이인이어서 있을 법하고, 거기가 나와 비교되는 잘난 사람이어서 극적이기까지 하니 '시간가게'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읽혔다.
소연이가 단짝 주희와 함께 처음에는 전학생을 꼴보기 싫어하다가 전학생과 약간 친해지면서 그 무리에 들기 위해 애를 쓰는 흐름도 아이들 사이에 많이 보이기에 현실적이었다. 소연은 전학생 소연과 친해지면서 화장을 하게 되고, 생일선물을 주기 위해 무리하기도 한다. 주희에게는 거짓말을 하느라 들켜 절교를 한다. 생일파티가 끝난 후 비밀얘기를 나눈 소연이는 소연이와 더 친해졌다고 생각하지만, 글쓰기 대회에서 소연이 이야기를 훔쳐 쓴 잘난 김소연은 상을 타고 소연이 자신을 친구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무시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주희와 울면서 화해한 소연이는 전학생 무리와는 연을 끊고, 회장선거 날 밝혀진 진실 탓에 전학생 김소연은 아이들의 지탄을 받지만 곧 SNS를 시작해 금방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인물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주인공의 반성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사건을 묘사하며 자연스레 읽는이가 주제의식을 느끼게끔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더 좋았다.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니, 모양 빠지게"
집에 가는 길이면 학교에서 참아 왔던 것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전학생의 그런 부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남들에게 얘기하지 않는 것을 나에게만 얘기하다니, 좀 더 특별한 사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김쏘'라고 부를 때 전학생의 말투는 무척이나 은근해서,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우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긴 했다. 넷이서 팔짱을 끼고 일렬로 걷다 보면 복도가 비좁을 지경이었다.
"알지? 내가 초대한 게 아니라, 네가 부른 거로 하는 거. 초대 못 받은 애들이 서운해하면 안되잖아."
"너네 그 얘기 들었어?"
우리는 종업원들이 주의를 줄 때까지 한마음이 되어 떠들어 댔다. 전학생의 제안으로 누구를 좋아하는지 털어놓는 진실게임을 하기도 했다.
"김쏘 너는 좋아하는 애 정말 없어?"
"너 진짜 웃긴다. 너한테만 그런 일이 있으란 법 있어? 왜 기껏 네 얘기 들어준 사람 이상하게 만들어?"
"아니, 내가 지 글을 베껴 썼다잖아. 난 얘가 쓴 글 본 적도 없는데."
"그래서, 뭐? 그게 어쨌다는 건데. 어쩌라는 거냐고?"
'난 안 가. 그리고 내 이름은 김소연이야.'
전학생 무리는 본격적으로 나를, 아니 '김쏘'를 헐뜯고 다녔다.
나서서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누구 말을 믿을지 알 수 없었다. 전학생은 몰라도, 주희를 배신한 건 사실이니까.
자기들끼리 무언가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전학생의 마음은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을 거야. 아님 그냥 텅 비어 있거나.'
"김소연, 김소연이 이런 걸 잘했던 것 같다. 소연이가 한번 발표해 볼래? 몇 번 소연이냐면...."
나와 전학생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전학생이 나를 거만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 눈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를 말하는 거야, 네가 아니라.'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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