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한줄평: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마음이 심란해서 읽을 걸 찾다가 도서관 책장에서 발견한 책.
지은이는 사노 요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읽어본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사는 게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지치고 힘들까. 사는 게 뭐 대단하다고 나는 이렇게 애를 쓰는 걸까.
그럭저럭 삶이 이어지는 게 신기하다.
"뭐 해?" "아무것도 안해. 근데 나 정말 치매인가 봐. 어제 카드 명세서가 왔는데 전자제품 매장에서 12만 엔 썼더라고. 뭘 샀는지 진짜 기억이 안 나는 거 있지. 자질구레한 걸 많이 샀나? 심각하지?" 나는 어젯밤부터 찝찝했던 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너 그거, 냉장고!" 친구가 냉큼 대답했다. 아, 맞다. 머릿속의 뭉게구름이 말끔히 개었다.
"난 말이야. 통장을 봤더니 65만 엔이나 인출했더라 어디에다 썼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나는 곧바로 말했다. "너 그거, 부동산취득세." "앗, 맞다."
저자는 치매를 앞둔 노인이다. 아침마다 식당에서 밥을 사먹으면서 똑같이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할머니들을 걱정한다. 밥도 못 해먹는 사람들은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앞으로는 혼자 은행에서 돈도 못 빼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토토코 씨가 집에 간 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린 시절 먹었던 귤 우무가 너무도 선명한 색상으로, 비현실적일 정도로 또렷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눈앞에 있는 귤보다도 생생하게 핫, 핫.
아, 무섭다. 이건 혹시 내가 노인이 된 증거가 아닐가? 늙으면 어제 먹은 음식은 까먹어도 어릴 적 기억은 갈수록 선명해 진다던데.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읽은 긴긴밤에서 주인공 노든이 한 말이 기억난다.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고. 자신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노인이 되면 더이상 오늘 하루에 기대할 것이 없으니 자꾸만 옛일을 되새기는 걸까. 그래서 매일 아침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하며 눈떴던 어린시절을 현재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는 걸까.
멀쩡한 할머니가 섣달그믐에 비디오를 대여섯개씩 빌린다면 불쌍한 할머니, 황량한 풍경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건 싫다.
나는 체면 때문에 비디오 대여점 방문을 포기했다. 가게의 회색 비닐봉지 한가득 비디오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오우메카이도를 지나가는 섣달그믐의 내 모습이, 꼭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상상되었다.
나의 체면이란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 것인가. 흠. 하지만 체면도 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세간이 되지 않으려고 평생토록 무던히 애써왔다. 하지만 내 안에도 세간이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곤란하다. 내 의지는 세간에 졌다. 나는 머리를 푹 숙이고 골목길을 걸었다.
저자는 남들에게 불쌍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나보다. 할머니와 같이 여행을 가서 쿠킹클래스를 들었던 게 기억난다.
할머니는 무척 부끄러워했다. 나는 할머니랑 같이 새로운 요리를 해보면 좋겠다 싶어 신청했는데 할머니는 요리하는 걸 거부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화를 냈다. 손녀와 함께 여행을 와서조차도 밥을 하고 있는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던 걸까.
평생동안 세간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왔는데 자기 안에서 세간을 발견했다는 구절도 인상 깊었다. 내가 하는 생각이랑 비슷하다. 어제는 결혼식이 있었고 나는 최를 기다리면서 결혼식장을 오가는 하객들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가방이 눈에 띄였고, 나도 최한테 가방을 사달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엄마가 가방 사주겠다는 걸 거절한 나인데. 사치나 명품에 연연하지 않고 있는 걸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이만큼 부자라는 걸 가방으로 과시한다는 게 꼴사납다고 생각하지만, 잘 꾸민 여자들이 하나씩 가방을 들고다니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내 가방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현명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면서도 진짜로 남들과 다른 부분을 발견하면 그게 흠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내가 좀 더 나이 들면 그때의 할머니 마음을 이해하게 될까?
오빠, 이 세상에서 오빠를 기억하는 사람은 예순다섯 먹은 나밖에 없어. 나 혼자뿐ㅇ야. 내가 죽으면 오빠를 추억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남지 않게 돼.
오빠, 오빠는 모르는 채 죽었지만 사는 것도 정말로 고단해.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도 몇 번이나 있었는데 사는 동안은 죽을 수가 없어.
시험 삼아 해보았더니 아직 다리로 커튼을 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병석에 드러눕기라도 하면 다리로 커튼을 열 수 있는 지금의 건강을 얼마나 눈물겹게 그리워하게 될까? 그런 상상이 멈추지 않는다.
나는 매일 아침 몹시 겸허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변한다. 작고 여린 나뭇잎을 기특해하다 보면 이윽고 우주까지도 기특하게 여겨졌다. 제아무리 마음이 언짢을 때라도 창밖을 보노라면 상쾌한 기분이 얼굴을 쏙 내민다.
하지만 사람이란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지. 창문을 닫으면 또다시 금방 겉도 속도 누추한 할머니로 되돌아와 일상을 살아간다. 자신의 기분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계절이 아리송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전화벨이 울렸다.
자신의 기분조차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다. 그러면서도 어떤 때의 나는 우주의 진리를 다 깨달은 사람 같다.
어제도 결혼식에 갔다가 거의 졸면서 전주에 왔다. 씻고 나니 기절할 정도로 피곤했다. 눈을 뜰 때마다 위에 주름이 잡혔다. 그리고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울적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흔하게도 왜 울적한지 이유를 파악할 수 없었다.
정말 어렵다.
상쾌했다가 누추해지고, 현명하다가도 먹통이 되는 마음. 이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옛말이 틀리지 않다고,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암에 걸렸으면서도 태연자약하고, 한류에 빠져 드라마를 보다 턱이 돌아간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할머니. 사람은 어린이로 세상에 왔다가 나이를 먹고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나보다. 우리 할머니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할머니는 완전히 누워서 콧줄로 삶을 연명하는 태아가 되어버렸다.
세월은 꿈처럼, 혹은 악몽처럼 흘러 일흔 가까이 먹은 내가 예전의 그 거대한 절을 이따금씩 차로 지나간다. 나는 두 번이나 이혼했으면서도 웅장한 절의 담장을 달리며 생각한다. '아깝다, 이 절에 시집갔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이혼을 세 번 했을지도 모르겠다.
뻔히 질 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도망치는 인생은 비겁하다. 혹시 마작이 도중에 그만둘 수 없는 게임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프로는 먼 곳을 바라본다. 패 건너편의 희망을. 인생은 도중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눈앞의 욕망에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먼 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꽤 위로가 되는 구절이다. 결말이 어떨지 모르지만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 교직을 떠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달리 갈 데가 없기도 하고.
나 역시 젊은 시절, 마음만은 화사했다.
나도 모르게, 정말로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순이 넘었다. 화사한 생명 같은 건 완전히 잊었다. 이 나이가 되니 마음이 화사해지지 않아서 오히려 편하다.
젊을 때는 그렇게 서로에게 넋을 잃어도 괜찮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광기의 시간을 신이 마련해주니까. 그런 착각 없이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맺어질 수 있겠는가. 젊은이여, 병에 단단히 걸리기를. 병은 깊을수록 번민은 많고 쾌락은 강할 테니.
생활은 수수하고 시시한 일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일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세월만이 길러낼 수 있는 신뢰, 꽃도 태풍도 뛰어넘어 망중한을 즐길 날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마음을 한 컵에 담긴 물처럼 공유한다.
여러분, 한류 열풍의 정체를 아시겠지요. 한류 열풍은 허구의 화사함에 의해 일어났다.
화사하다는 말을 어떻게 이렇게 썼을까? 표현이 너무 싱그러워서 놀랐다.
그러고보면 나도 화사한 생명의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걸까?
서로의 화사함에 속아서 결혼하고, 그러다가 시시해지고, 그러다가 또 너밖에 없었지, 우리 잘 살았지 하며 죽는 걸까.
요코는 죽을 날을 앞두고도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알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고.
나 자신이 죽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까운 친구는 절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죽음은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찾아올 때 의미를 가진다.
내가 너무도 건강하고 쾌활하니까 "요코가 제일 오래 살 것 같아"라는 말도 가끔씩 듣는다. 그럴 때면 죽을 자신이 없어져서 곤란하다.
사람은 태평스러운 존재다. 그간 실수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는 나조차도 '내 인생은 썩 괜찮았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로 나뿐일까?
가까운 사람이 죽어도 나의 삶은 이어진다.
누군가의 삶은 끝나도 내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건 뼈아프지만 중요하다. 너의 죽음을 딛고 선 자리에 나의 오늘이 서 있다는 사실.
그렇다고 나의 삶이 확 바뀌는 건 아니지만 발밑을 다시 보게 되지는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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