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
인간에게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는 선이 있으며,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공개되었을 때 존엄성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왜 인간은 자신의 전부를 공개하지 않는가?
책에서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인간은 약점을 숨기고 싶어하며, 그것이 타의에 의해 공개되었을 때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약점, 즉 결함은 무엇인가? 결함은 가치가 개입된 것으로, 처음부터 아예 일어나지 않았거나 없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무엇이다. 또한 결함이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비롯되었을 때 그것은 존엄성에 더 큰 상처를 내는 과오가 된다.
둘째, 인간은 자신만 아는 내밀한 사실을 남겨 놓음으로써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만 아는 비밀을 가지기 때문에 타인과 자신을 경계짓고 독립된 개인이 될 수 있다.
결함이나 과오로 인해 수치스러워졌을 때, 인간은 두 가지 방법으로 그를 극복할 수 있다.
첫째는 자신에게 가해진 타인의 시선을 숙고하여 내면화된 타인의 평가로부터 벗어나는 것, 둘째는 후회를 통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어떤 학생이든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
너만 알라고 절친에게 일러줬던 비밀이 소문이 되어 따라다닐 때, 자신의 잘못으로 또래 집단에서 거부 당할 때, 여러 사람 앞에서 반복해서 실패하는 모습을 보일 때...
이런 점을 학급 운영에 반영한다면, 교사는 수치심을 느끼는 학생에게 긍정적인 자기평가의 기회를 주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또 학생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시도할 때 격려와 응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정말.... 나약하군..ㅎ
인간의 존엄은 자신의 사적 공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고와 감정의 가장 깊숙한 영역을 아무에게나 경솔하게 내보이지 않는 자세에 크게 좌우된다.
친밀한 관계를 귀중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 존중과 신뢰다. 거기다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아느냐 하는 면에서 양쪽이 어느 정도 대칭을 이뤄야 한다.
내밀한 관계는 타인의 배제라는 형태를 지닌다. 각 관계는 하나하나가 모두 다 다르며 하나의 관계가 다른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 속으로의 행보는 아슬아슬한 행위다. 내밀한 관계라는 것은 타인이 나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내가 가진 약점도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나를 휘두를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나는 그에 의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관계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관계가 지속되었을 때 알게 된 비밀을 무기 삼아 위협하거나 또는 실제로 여러 사람 앞에 폭로함으로써 굴욕을 주는 경우도 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성적 취향이나 사생활을 생각없이 까발리는 사람을 꺼리는 이유는 존엄성이 나와 타인 간의 간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할수록 자신에 대해 많이 알려주고 싶어하지만 선을 지키지 않으면 스스로에게도 상대에게도 결코 좋지 않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친밀한 관계일수록 서로를 많이 알지만 그만큼 상대에게서 상처받을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상대를 믿고 속 이야기를 털어놨는데 상대는 그러지 않는 경우, 또는 둘만의 비밀이 만천하에 폭로되었을 때도 우리는 상처 입는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참 황홀하고 잔인하다. 사랑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태양을 향해 다가가다 날개가 녹아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되어버리고 만다.
4. 진정성으로서의 존엄성
삶을 기만하는 거짓말은 우리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존엄성을 부식시킨다. 어떤 행위와 경험을 겪을 때 우리 자신이 진정한 존재가 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에는 결과가 따른다. 그중 하나는 내가 내 인생을 살지 못하고 타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남을 고통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를 변질시키며 또 쌍방의 존엄성을 훼손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직함과 진실함을 토대로 한 존엄성은 모든 결속된 관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가까운 사이란 자신이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것의 범위를 조금씩 줄여가는 사이다. 이것이 바로, 혹시 삶을 기만하는 거짓이 느껴진다고 생각될 때 상대방에게 대화를 청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갈 때 존엄하다. 거짓말은 자신을 망가뜨리고 관계를 해치는 행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때로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내가 하는 말에 스스로 속을수도 있고, 타인의 말을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어쩌면 진정성 또한 일종의 환상인지도 모르겠다.
지적 정직성의 결여(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거나 사실인 것을 거짓이라 말하는 행위), 거짓말, 미신, 허언이나 허풍은 진정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이다.
5. 자아 존중으로서의 존엄성
존엄성은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도 달려있다. 자아상은 '내가 나를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는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자아 존중의 측면에서 본 인간의 존엄성은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릴 줄 안다는 것과 관련을 가진다. 그가 어떤 특장한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아상과 맞지 않고 또 그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아 존중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삶에서 이러한 종류의 인과관계가 일치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다.
인생에서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보느냐에 따라 도덕적 한계선이 결정되고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자아상은 사회적 역할을 포함하고, 양육과 요육과 문화적 형성과정이 합쳐져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아 존중은 사회와 개인의 교류를 통해 변화한다.
진정성으로서의 존엄성과 비슷한데 자아를 존중할 때도 '동기'가 중요하다.
여기서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우슈비츠에서 독일군 장교의 군화를 핥는 장면이 나온다. 그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졌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어린 아들을 위해서이다.
구하려는 가치가 크면 희생의 크기와 희생하려는 의지가 상실의 크기를 상쇄한다. 즉, 존엄성의 희생은 존엄성의 상실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저자는 타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책임지고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책임지며, 회피하지 않고 갈등을 맞닥뜨리는 용기를 보일 때 존엄해진다. 정신적인 자아상은 언제나 달라지지만 그 또한 자신의 모습으로 이해할 필요도 있다.
우리가 어떤 동기로 행동하느냐가 인생에 참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는 왜 사는가?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평생동안 이런 질문을 던지며 학생들과도 공유해야 할 것이다.
6. 도덕적 진실성으로서의 존엄성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문제에 맞닥뜨린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 중 어느 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타인을 위해 자기 소망의 성취를 포기할 수 있는가? 이는 내 주도적 결정권이 침해된다는 말인가?
자기 주도적 결정권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만 존재한다. 내면의 압박에 굴복하느냐 하지 않느냐 결정하는 것,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감수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처음에 위의 구절이 잘 이해가 안 갔다. 우리는 선택을 할 때, 그동안 배운 것이나 '~해야만 한다'는 정언 명령에 이끌리기 쉽다.
콜버그의 인격 6단계 중 가장 높은 단계는 그저 하고 싶은대로 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성인의 상태이다.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해도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에 참여하며, 친밀해지고 연대감을 느낀다. 도덕책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를 했을 때 그것이 소중하고 행복하고 바람직한 삶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선택해야 한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방식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타인과 더불어 그의 욕구를 존중하고 내 행동을 그에 맞춤으로써 도덕적 존엄성이라고 불리는 특정한 형태의 존엄성을 획득한다는 뜻이다.
내 가치가 높아지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게 평가하니까 도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나 자문해본다. 완전히 그런 이유가 없다고 부정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책에서도 상황과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하나보다.
나는 교과를 처음으로 시작할 때, 왜 그 과목을 배우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다.
올해는 도덕을 내가 가르치지는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는 게 참 중요할 것 같다.
100명의 승객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납치당해 120명이 있는 빌딩으로 돌진할 예정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겠는가? 핵 발전소에 폭탄을 설치한 폭파범을 잔인하게 고문해 폭발을 막은 경찰관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겠는가?
7.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존엄성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7장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왜냐하면 이 장을 읽으면서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은 인간 존엄성의 한 면을 이룬다. 자신의 삶이 의미가 있는지를 경험하게 해주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일에 시간과 힘을 바치는 것은 자기가 누군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 중요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과 겉으로 보기에는 심각해 보이지만 곧 지나갈 중요성을 지닌 것의 차이를 인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삶의 의미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고 결정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저자는 말한다. 어떤 일의 노예가 되지 않고도 그것에 진심을 다할 수 있는 능력, 깊은 감정을 경험하지만 그 일의 의미를 무한대로 키우지 않고 일정선에서 멈출 수 있는 능력, 걱정과 근심에 거리를 두면서도 그것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교육이든 글쓰기든 페미니즘이든 환경이든 너무 깊게 빠져들어있을 때 나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생각이 많았다.
마음이 아프고 긴급하다고 느끼는 일일수록 더 그랬다. 고민이 생기면 그 문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느라 현재를 즐기지도 못하고 슬퍼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다고 문제가 더 잘 해결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되면 좋고 아님 경험이지'하고 여유를 가졌을 때 일이 잘 풀린 경우가 많았다.
무관심하고 무신경한 냉정과 고통에 골몰해 인생의 뿌리까지 흔들리는 열정 사이에서 우리는 줄타기를 해야 한다.
평상심을 유지해야 인생도 제대로 돌아간다.
결정적인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한 선수가 있다고 칩시다. 그는 매우 괴로울 겁니다. 반면에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저자는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거야, 하고 생각할 테죠. 그런데 페널티킥에 실패한 그 사건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다가 한 인간이 가진 자기 신뢰를 모조리 망가뜨린다면 어떨까요. 그건 정체성이 과다한 겁니다. 그러므로 존엄성 상실이라는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잡았던 것을 놓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데서 옵니다.
지금 당장 우리를 괴롭히는 것보다 더 크고 더 중대한 일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그런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내가 그리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조금의 실수도 견디지 못하거나 남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까봐 괴로워한다는 건 오히려 존엄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특별하지만 그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나 뭐 돼?'하는 생각을 적당히 하는 것도 참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 나아지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 시도나 도전에 거리낌이 없게 될테니 말이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의식을 기르기 위해 죽음을 앞둬야 할 필요는 물론 없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가보고 그 종말의 순간에 서서 지금까지 자신의 사물의 무게를 올바르게 쟀는지 물어보면 된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뭔지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이제 내 의식 안으로 새롭게 들어오는 욕구과 그 인생을 대비해보는 것이다.
물음의 과정은 개방적이고 살아 있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를 달라지게 할 것이다. 이것은 독립성을 가진 존엄성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8.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
마지막 장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요양원에 있는 우리 할머니가 많이 생각났다.
할머니의 의식은 지금 과거 어디쯤을 헤매다가 현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자신의 육체를 돌볼 수도 없고 미래를 계획하거나 현재에 대처할 수도 없는 상태다.
할머니의 마지막이 어때야 할까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병원 침대에 손을 결박당한 채 묶여있는 게 할머니가 원하는 마지막일까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정말 할머니를 위한 일일까? 할머니는 무엇을 원할까?
사람이 죽으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생명을 유지하는 육체 기능이 정지되고 경험 주체로서의 인간이 소멸된다.
고인에 대한 우리의 존엄성은 고인이 자신의 삶의 논리에 순응하며 살아온 방식과 고인의 유지를 존중해주는 데에 있다.
세네카는 말했다. 인간이 삶에 대해 불평하지 말아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삶이 그 누구도 붙잡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모든 것은 유한하다. 무한한 것은 없다.
할머니를 보고 올 때마다 나는 이 사실을 매번 아프게 깨닫는다.
존엄성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이런 저런 판단을 해볼 수 있어 좋았다.
존엄성은 참 쉽게 위태로워진다. 꾸준히, 주기적으로 묻지 않으면 잃어버리기 쉽다.
이래서 사람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느꼈고, '한번뿐이고 하나뿐인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좋은 시간이었다.